생각 채움
읽고 쓰고 풀며, 생각이 자라는 시간들
“쌤! 정말로 책이 필요 없는 세상이라니까요. 왜 답답하고 느리고 힘들게 책을 읽어요?”
“그래도 독서가 더 유익하지 않을까?”
“쌤, 생각해 보세요. 책도 누군가의 생각이고 영상도 마찬가지예요. 그걸 시간 들여 읽는 거랑 빨리 필요한 것만 읽는 거랑 둘 중에 어떤 경우가 더 유익한가요. 어차피 둘 다 그걸 만든 사람의 콘텐츠를 보는 거잖아요. 같은 내용이면 쉽게 정보를 얻는 게 훨씬 이득이죠. 영상이 비교도 안되게 더 재밌고요.”
“정보를 얻는 목적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렇지만 네가 말한 대로 영상은 보는 사람이 힘이 안 들고 말도 안 되게 재미가 있지. 우리가 교과서, 글로 된 걸로 공부하기가 그렇게 재미없고 짜증 나고 힘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고. 그 재미있고 쉬운 영상을 놔두고 이렇게나 딱딱한 어려운 글을 읽고, 이게 무슨 말인지 ‘생각’이라는 걸 해야 하니 말이다. 흐흐. 네 말대로 답답하고 느리고 힘들거든. 영상에 의존하고 영상에 길들여지면 글은 더 읽기 싫어질 수도 있겠다. 우리가 지금 여기 겨우 세 줄짜리 문장제 문제를 앞에다 두고 이런 썰전을 벌리고 있듯이 말이야. 자! 이제 이 문제 읽고 이해한 대로 설명해 봐.”
눈을 굴린다. 반박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모양이다. 애초에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풀이 영상을 한번 만들어보라고 할 걸 그랬나 보다. 영상은 영상대로 글은 글대로의 유용함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둘은 기를 쓰고 양극단의 가장자리에 앉아 시소를 타고 있다. 일단 내 쪽이 무겁다. 어떻게든 앞에 놓인 문장제 문제를 아이 스스로 읽고 생각해서 문제를 풀게 하는 것이 내가 아이 앞에 있는 이유니까. 대세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기존의 것만 고수하는 꼰대 같은 어른이 될지언정 내가 할 일은 해야 한다. 아이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 고정된다. 일격의 준비가 되었나 보다.
“쌤! 그럼 왜 쌤은 릴스(인트타 숏폼) 같은 거 해요? 숏츠 안 해요? 유튜브 아예 안 봐요? 티브이 안 봐요? 책만 봐요? 그거 아니잖아요.”
논리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아무리 옳고 바른 소리라도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싫어하고 잔소리로 듣는 이유 중 하나. ‘어른들은 우리 마음을 너무 몰라. 우리가 하는 건 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나 봐’라는 마음. 반박의 논리가 무너졌으니, 일단 공감을 먼저 해줘야겠다 싶었다.
“00아. 너희가 영상을 보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야. 나도 릴스 많이 봐. 만드는 것도 얼마나 재밌고 신기한데. 사실은 보는 게 훨씬 더 재밌긴 해. 내가 릴스 하나 만들려면 영상도 찍어야 하고, 메시지를 담은 글도 적어야 하고, 음악도 영상에 맞게 골라야 하고 음악과 영상과 글이 모두 어우러지게 편집도 해야 하거든. 겨우 10초짜리 영상 하나 만드는 데에 들이는 공이 어마어마하거든.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 10초인 그 영상도 길다고 엄지로 밀어 올린다? 자극적인 영상만 눈과 귀를 잡는 거야. 우리는 그 그물에 걸리는 거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잊은 채 시간을 작고 빨리 돌아가는 핸드폰이라는 세상에 고대로 빼앗기는 거고. 쌤이 말하고 싶은 건, 영상과 책을 읽어내는 과정에서 우리가 손해 보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거지. 적당히! 뭐든 적당히 알지? 책을 안 읽어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있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꼭 성공한다는 공식 같은 건 없어. 영상이든 책이든 다 도구일 뿐이야. 좋은 도구로 쓰는 건 우리 몫이고. 우리는 잘 모르니 그걸 조금 더 현명하게 쓰는 게 좋겠지? 네 말대로 쌤도 릴스 한번 빠지면 빠져나오기가 힘들 정도로 재미가 있어. 무슨 그런 세상이 다 있나 싶다.”
“거 봐요. 쌤도 릴스 보네요. 책도 읽고요. 저는 책 읽는 거 싫어요. 어려워요. 유튜브 볼 때는 시간이 금방 지나가는데……. 거기는 진짜 재미있는 세상이에요. 없는 게 없어요.”
시소가 수평을 이룬다. 사실 책의 세상이 더 흥미롭고 그 세상에 들어가 나만의 글로 발자국을 남기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황홀한 경험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아이의 세상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흡사, 지구에 내려온 외계인 꼴이 될 것 같아 차마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이 말을 삼켰다.
‘너도 나중에 글을 쓴다면, 너의 세계를 만난다면 알 거야. 글로는 우주정복도 가능하다는 것을.’
‘독서를 많이 하면 무조건 최상위권을 보장할 수 있다’라는 말이 마치 다이어트약을 먹으면 ‘살이 쭉쭉 빠진다’ 같은 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다. 학령기의 자녀를 둔 엄마인 내가 ‘독서’와 ‘최상위’라는 키워드를 놓쳤을 리 만무하고 먹으면 살이 쭉쭉 빠진다는 카피 역시 팔랑거리는 내 귀가 놓쳤을 리가 없다. 관심 키워드에 대한 귀는 언제나 열려있으며 촉을 세우고 있으니. 실제로 지금 다이어트약은 아니고 체지방 분해를 돕는다고 하는 영양보조제를 먹고 있다. 실제로 체지방을 줄여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알약처럼 생긴 이 보조제는 먹는 것에 대한 죄책감만 줄여주었다. 심지어 이 보조식품이 내 지방을 처단하고 있다는 망각에, 먹는 것은 눈치 보지 말자는 말도 안 되는 안일함까지 장착하는 희한한 사고 논리가 펼쳐졌다. 건강한 몸을 만들려면 좋은 음식을 먹고 꾸준히 운동해야 함이 답이라는 것을 우리 집 열 살 꼬마도 알지 않을까. 영양보조제는 말 그대로 보조만 해줄 뿐. 움직이기는 귀찮고 시간이 없음을 좋은 핑계 삼으며, ‘스트레스를 푼다’라는 억지로 ‘힐링’을 외치며 맛집 투어로 연결하는 이 무논리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날씬은커녕 그 반대로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부지런히 몸을 쓰는 것보다 머리를 쓰는 걸 더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도 다 핑계일 뿐이다.
독서를 많이 한다고 성적이 높아질까.
독서를 많이 한다고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독서를 많이 한다고 지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독서를 많이 한다고 과연 인생이 풍요로워질까.
확률론에서 조건부 확률이 있다. 이미 일어난 어떤 사건을 기반으로 다른 사건이 일어날 확률.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쉬운 예를 들면, ‘오늘 비가 왔는데, 내일 비가 올 확률’이라든지, ‘특정 브랜드의 가방을 구매한 고객이 그 브랜드의 신발을 구매할 확률’이라거나 ‘특정 문구나 단어가 포함된 이메일을 스팸 메일로 판별하는 확률’, ‘리뷰가 좋은 맛집이 내 입맛에도 맞는 맛집일 확률’. ‘베스트셀러 작가의 다음 책도 베스트셀러가 될 확률’과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독서를 많이 하면 무조건 최상위권을 보장할 수 있다'라는 명제로 예를 들어보자.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조건부에 대해 일어날 사건의 경우의 수는 많다. 분명한 건 독서를 함으로써 일어나는 사건의 공통분모는 ‘변화’라는 것이다. 독서와 '어떠한 변화’가 종속관계를 가지는지는 사실 어느 누구도 단정 지으며 말할 수가 없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변화의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학생의 경우는 독해력, 문해력과 연결되어 정말로 성적이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으며,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경우도, 자기 계발을 통해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는 경우도, 마음의 평안을 위해, 그저 재미를 위해, 인생의 풍요를 바라는 경우도 '변화'와 '독서'의 종속관계는 성립한다. 이 모두가 가능성이기에 사실 답은 없다.
개인의 특수한 환경, 조건에 따라서도 변화에 대한 확률값은 달라진다. 어떤 주제에 대해 개인이 가진 이해도는 제한적일 수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이나 견해를 접할 때마다 그 주제에 대한 관점이나 결론이 바뀔 수도 혹은 생각이 확장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읽어내는 행위는 일종의 '생각의 업데이트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가능성(확률값)을 높이는 가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석 줄짜리 문장제 문제를 앞에다 두고 낑낑거리며 고뇌하고 있는 아이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넌 나날이 생각의 업데이트를 하고 있다고. 성적도, 경제적 자유도, 지적인 욕망도, 풍요로운 인생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짜증이 나도록 느리고 답답하고 힘든 이 ’ 글을 읽는 행위‘가 너의 가능성을 키우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