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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화 Oct 01. 2024

관계의 표면장력

프롤로그

 눈앞에 ‘관계’라는 작은 잔이 놓여있다. ‘감정’이라는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진다. 가까운 물방울들은 서로를 잡아당기며 조금 더 큰 물방울을 만든다. 어느새 잔을 채우기 시작하여 잔의 입구까지 차오른다. 물방울들은 흘러내리지 않기 위해 서로의 물분자들을 잡아당긴다. 표면장력은  잔입구의 가장자리에서 봉긋한 물무덤을 만들어낸다. 단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금방이라도 흘러 넘칠 것 같다. 그런 줄도 모르고 기어이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결국 관계라는 틀 안에서 감정이 흘러넘쳐버린다. 장력이 끊어지는 건 찰나였다. 그전에 비워내야 했을까.      


 사실 물방울은 ‘감정’이 될 수도 있고 ‘인간관계’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과도함도 결국 흘러넘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어려움, 외부의 충격들은 물방울을 흔드는 바람이나 물결과 같다. 적당한 흔들림은 관계를 성숙하게 하고 서로의 결속을 더 단단히 만들 수 있지만, 너무 많은 충격은 물을 흘러넘치게 한다. 감정도 인간관계도 균형이 필요하다. 팽팽하게 긴장되는 관계는 터지기 마련이고, 느슨한 관계는 쉽게 흘러가 사라진다. 관계에도 감정에도 적당한 힘과 균형 안에서 안정감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때로는 하나의 큰 물방울을 만들어가면서 말이다.    

  

 물컵을 흔드는 것처럼 방황은 삶의 어느 순간에나 존재했다. 그것은 연속적일 수도 있고 어느 순간 나타났다가 어려운 수학문제가 풀리는 것과 같이 답을 탁 내어놓고 증발해 버릴 때도 있었다. 불혹의 의미가 무색하게 나는 여전히 별것도 아닌 것들에 미혹되어 갈피를 못 잡고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렸다. 왜일까. 마음에 사랑이 부족한 걸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욕심쟁이라 그런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때, 늘 그랬듯 ‘방황’이라는 것이 얼굴을 쏙 내밀고 나를 흔들었다. 표면 위의 봉긋한 감정들을 출렁이게 만들었다. 방황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두려움도 가져왔다. 마음도 몸도 편치 않는 그늘과 같은 어두운 감정도 가져왔다. 그럴 바에는 잔을 비워버리자. 나는 잔을 들고 그 안에 채워진 물을 쏟아부어버렸다. 다시 채우자.     


잔에 채워진 부정적인 감정과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는 마음을 모조리 비워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감정이 얽히고 엉켜 표면장력이 더 이상 관계를 지탱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그 관계를 비우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불필요한 무게를 덜어내고 새로운 공감과 신뢰로 채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허탈감, 상실감, 불안감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결국 안정적인 표면장력을 가진 관계로 나아갈 수 있기에 현명하게 이겨내는 수밖에. 사실 감정과 관계란 흘러가는 것이기에 내가 가진 잔으로 모든 걸 담을 수 없다. 그러니 적당히 흘려보내고 적당히 채워나가며 현명하게 살아가야할 것이다.


 그래서 써보고자 한다. 과거의 내가 미련하게 채웠던 것들, 흘러 넘 칠 걸 알면서도 한 방울씩 떨어뜨렸던 물방울들, 흘려보내지 못했던 것들, 정말로 채워야 하는 것들을 써보고자 한다.    

  

나의 관계의 표면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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