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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화 Oct 04. 2024

올빼미의 무한루프

딴짓전문가, 불량엄마의 틈새공략

 ‘오전 6시. 어제 분명 5시 반에 알람을 맞춰놓고 잤는데, 못 듣고 계속 잤나 보다. 아, 일기 써야 하는데 늦게 일어났다. 빨리 거실로 나가 어제 다 못쓴 일기를 써야겠다. 엄마는 아직도 자고 있나 보다. 엄마는 또 어제 몇 시에 주무신 걸까. 매일 우리가 자러 들어가면 안 자고 할 게 있다고 하던데, 아침마다 피곤해서 눈도 못 뜨면서 그걸 꼭 안 자고 해야 하는지. 왜 우리 몰래 밤에만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우리가 자러 가면 혼자 몰래 맛있는 걸 먹는 게 분명하다. 6시 10분 두 번째 알람이 울린다. 일부러 천천히 움직여 알람을 끈다. 제법 시끄러웠을 텐데도 안방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슬쩍 문을 열어 어두컴컴한 침대 위를 봤다. 이불을 돌돌 말고 자는 엄마의 모습이 마치 번데기처럼 보인다. 다시 거실로 나와 일기를 마저 쓴다. 이것만 다 쓰고 엄마를 깨워야겠다.’     


 화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뽀송뽀송한 얼굴로, 레이스가 달린 에이프런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릎과 목이 늘어나지 않은 티셔츠라도 입고서 웃는 얼굴로 하루를 열어주면 얼마나 멋진 엄마일까.  전날 맞춘 알람소리에 겨우 눈을 뜬다. 손을 더듬거려 머리맡에 놓아둔 핸드폰을 아 알람소리부터 재빨리 끈다. 꽁꽁 싸매고 잔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는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이불을 돌돌 말아 누워버리고 싶지만 거실서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마음을 고쳐먹는다. 무겁디 무거운 몸을 일으켜 거실로 터덜터덜 걸어 나갔다. 커피콩처럼 부은 눈을 하고선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첫째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고 싱긋 웃는다.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의 입꼬리가 눈치채고 재빨리 올라갔다. 밀려 올라간 광대뼈가 이번엔 눈두덩이를  밀어올려  더 두텁게 만든다. 커피콩이 더 통통해졌다. “한번 안아보자.” 꼭 껴안고 서로 등을 토닥이며 아침 인사를 한다. “잘 잤어? 엄마?” “잘났니? 일찍도 일어났다. 배고프지 밥 줄게.” 아침의 시작이 목이 늘어난 티셔츠처럼 느껴졌을까 괜스레 미안했다. 내일은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조금 단정한 얼굴로 아침을 열어줘야지 하고 다짐을 한다.  

    

 모든 일과가 끝난 한 밤중이 되면 아침에 했던 그 다짐들은 사라져 버리거나 변색되어 있다. 그나마 최근 몇 개월동안은 육아휴직 중인 남편의 분담으로 훨씬 수월한 아침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다시 주말부부가 되었고 아이들의 케어는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핑계지만 야행성 올빼미 습관은 참 바꾸기가 힘들다. 정신력의 문제다라고 치부하면 할 말이 없다. 그래서 핑계라고 얍삽하게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다. 30대 초반까지, 첫째 아이를 낳고 나서도 수업에 나갔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11시가 넘었다. 고3 수업이라도 있는 날이면 12시에 가까운 시간에 들어와 하루를 정리했으니, 생활패턴이 이미 야행성으로 고착화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무엇을 한다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차라리 늦은 시각까지 모든 걸 다 해놓고 자는 편이 나에게는 더 효율적이고 불안하지 않았다.      


“아 키우는 애미가 그리 아침잠이 많으면 우짜노?”

“아니, 엄마. 애도 키우지만 나도 키우고 있다고! 나를 위해 투자할 시간은 있어야지. 애들 아빠 있어서 겨우 살만했는데, 이제 가버리면 나는 정말 어찌 적응하나 싶다니까.”

“사람은 다 적응한다. 게을러서 안 하니까 그렇지. 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정서방 봐라. 새벽에 잘 일어난다며?”

“정서방은 초저녁부터 자는 사람이니까 그렇지. 나랑 패턴이 정말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고.”

“핑계다, 핑계! 애 엄마가 그리 게으르면 쓰나.”     


 이런 흐름의 대화로 끝나면 묘한 억울함과 묘한 죄책감이 동시에 일었다. 올빼미의 피해의식.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늦게 일어나는 새는 벌레도 못 잡아먹는다. 이런 통념은 미라클모닝을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그 반대는 게으르다는 인식을 조장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너는 매일 늦게 자니까 늦게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냐’라는 자기혐오의 질책. 아이에게 교육적으로 모범을 보야야 할 어른이 아이에게는 ‘너는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닐 때의 그 모순적인 생각과 행동들. 언행 불일치의 삶을 몸소 보여주는 내가 참 꼴 보기 싫어질 때가 있기도 했다. 사실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비주류인 올빼미의 피해의식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냥 모난 돌이었다. ‘미라클 모닝’이라는 말에 괜스레 주눅이 든 것도 다 그 통념에 따른 스스로의 피해의식 때문이었으리라. ‘그냥 다른 생활 패턴이야’라는 변명도 해보지만, 누군가를 이해시키기에는 내 영역 밖의 일이었고 그 조차도 피곤했다. 게으름이라는 말이 주는 억울함과 죄책감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물어 오전 내도록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덜 피곤하면 이리도 억울하지 않을 텐데.  

   

 식탁 위에 간소하게 아침밥을 차리고 아이와 마주 앉았다. 부스스한 얼굴과 한컷 잠긴 목소리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도 왜 이리 일찍 일어났어? 학교에 일찍 가야 해?”

“응, 어제 일기도 못 썼고, 색종이도 접고 싶고, 어제 다 못한 거 하려고 일찍 일어났어.”

“안 힘들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거 좋아, 엄마, 그런데 엄마는 어제, 아니 새벽에 몇 시에 잤어? 또 글 쓰다가 잔 거야?”

“응, 한 두시 반쯤?”

“헉, 피곤하겠다. 그럼 다 쓰고 잔 거야?”

“응, 당연하지! 엄마는 다 못하면 잠이 잘 안 와. 모든 걸 다 해놓고 누우면 금방 잠들어버려.”

“와... 나랑 완전 반대네? 나는 못해도 그냥 자고, 일찍 일어나서 하잖아? 엄마랑 나랑은 다르구나.”

“그래, 우리는 참 다르네. 어서 먹어 원이 깨우러 가야겠다.”

“응 엄마. 그런데 원이는 엄마를 좀 닮았나 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잖아.”

“그렇네. 흐흐.”

억울함과 죄책감은 미안함과 고마움에 자리를 내어주었고, 피해의식으로 쩔었던 올빼미는 어쩐지 아이에게 면죄부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의 물통을 챙겨주기 위해 일어났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크게 기지개를 켰다.      


 시간은 한정적이고 처리해야 할 일들, 정리해야 할 일들, 챙겨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 언제나 그렇듯 끝도 없이 밀려오는 하루하루를 살며, 마치 나는 오로지 이 반복되는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다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같은 자리만 맴도는 기분. 끝없이 처리해도 다시 쌓이고 채워지는 일들의 목록. 빠져나올 수 없는 거대한 무한 루프 안에 갇힌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딴짓을 해왔다.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잠깐이나마 나를 위한 시간을 내어 진짜 나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 책을 읽든 글을 쓰든 아니면 다른 공부를 하든, 똑같은 일상 속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면 최선을 다해서 딴짓을 해야 했다. 가끔은 딴짓이라고 부르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위해 나 말고도 우리 가족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때가 있지만, 아침마다 커피콩 눈을 한 불량엄마일지라도, 부스스한 머리 질끈 묶고 목 늘어진 티셔츠로 아침인사를 하는 엄마일지라도 나에게 잠시라도 숨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놓치고 싶지 않기에 조금은 이기적인 엄마가 되어버렸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 순간이 없었다면, 나는 그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 속에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12시를 넘어가는 고요한 이 시간, 나는 잠시 오늘의 무한루프에서 내려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피로가 몰려와 관자놀이가 지끈거리지만, 키보드의 또각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진짜 내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내일 7시, 또 똑같은 알람 소리에 눈을 힘겹게 뜰 것이고, 다시 무한 루프 속으로 들어갈 것을 알기에 불량엄마의 죄책감일랑은 접어두고,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여 ‘딴짓’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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