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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ingliz Jun 05. 2024

인간 관계, 조금은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기를.

나의 오랜 친구 A와 B에 대한 단상

인간 관계, 30대의 나에게도 여전히 어렵다.


유독 어느 때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다.

항상 내 곁에 있을 것만 같은 친구도 있다.

또,

친구 사이에서 가치관이 맞지 않아서 몇 번을 마음으로 부딪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가 정상 궤도에 기가 막히게 쉽게 올라버리는 경우도 있다.


요즈음 내 친구 관계 반추해 보면

고요하기보다는 파도를 타는 쪽에 가깝다.



나와 친구 간의 관계성


연인과의 관계 이야기를 꺼내면, 뭔가 목이 턱 막히는 것처럼 답답함을 주는 A라는 친구가 있었다.

사실 A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오랜 친구고, 다정하고 따뜻함이 기본값이었던 좋은 사람이었다.
의심과 편견으로 점철된 내 머릿속과는 너무나도 다른 친구였다. 회상해 보면 그 덕에 나는 그녀를 통해 누군가를 포용할 수 있는 법도, 사랑할 수 있는 법도 배워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연인 관계에서는 독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연인 관계에 놓이는 그 지점부터 '포용'이 대폭 확장되는 그녀였기에, 맺고 끊음이 비교적 명확했던 나는 A의 판단력을 의문을 품곤 했었다.

끙끙 앓으면서도 끊어내지 못하고 심지어는 관계에서 끌려다니는 A를 보았을 때,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본능적인 자신의 선택을 택했던 그녀였을 때, 일 년이 지나 축적된 시간이 꽤 길다고 느꼈을 때즈음, A의 곁에 있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오랜 시간 마음을 쏟아부었지만,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벅찬 마음을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나와 함께 해주었던 친구 B가 있었다.

서로 추구하는 삶도 너무나도 비슷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내리는 판단도, 선택도 많이 닮아있었던 우리였다.
서로가 판단력이 흐려질 때에는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 주기로 약속했던 사이였다. 

'내가 이런 마음으로 흔들린다면, 네가 꼭 나를 붙잡아줘.'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았던 사이.

즐거운 이야기를 깔깔 거리며 나누기도 하지만, B와 나는 인생에 대한 고민, 남들에겐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서로의 내면을 조금은 더 쉬이 드러낼 수 있었던 사이였다. 꽤나 깊은 우정이었기에 때론 가족 같기도, 연인 같기도 하며 내 인생에 큰 조각으로 자리 잡았고, 돌이켜보면 한때는 이 관계는 내 자부심이기도 했었다.



A와 B의 연애관 그리고 결혼관


A는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하던 로망이 있던 친구였다.

결혼상대자의 선택지가 줄어듦에 따른 불안도 우리에게 솔직하게 말해왔고, 연인 관계에서 생기는 상대의 잘못과 심지어는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드러냈다.

당시 A는 연인과 결혼까지 이어나가기엔 그 연인의 단점이 자신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함께 있을 때의 행복을 느끼게 하는 연인과 함께 '결혼이라는 자신의 로망'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며 결혼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A는 생각했다. 그리고 결단했다.

A는 현재 결혼한 상태다.


B는 비혼을 생각하고 있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만나고 싶어 했지만, 그녀에게 좋은 사람이란 꽤나 완벽한 기준에 가까웠다. 안정적인 배우자와 함께 미래를 그리는 것은 그녀 스스로도 좋은 일로 여겼지만, 안정적인 평형이 어느 요인으로든 기울어졌을 때, B는 단호했고, 관계를 끊어냈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채로 각자의 삶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이상적인 모습이 B가 그리는 모습이었고, B에게는 현재의 삶이 더 안정적인 모습이었기에 B는 비혼의 길에 더 가까이 서 있다고 스스로도 말한다.


  


결혼 이후

새로 쓰인 관계성


A는 행복한 신혼생활을 만끽하는 중이다. 연인과 서로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서 크게 싸웠던 연애 생활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신혼을 만끽하고 있다. 싸움의 빈도나 강도가 절대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다만,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상대의 부족함도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서일까, 상호 간에 채워줄 수 있는 관계로 보였다.

그리고 A는 관계에서 끌려다니지 않기 시작했다. 곁에서 보는 A는 굉장히 생그러워 보였고, 맺는 그 관계도 건강해 보였다. 건강치 못한 관계에서도 그녀는 줄곧 행복했던 긍정적인 친구이기에, 행복보다는 건강함이라는 기준에 더 주안점을 두고 보았는데, 지금의 A는 탁월했다.

A와의 관계까지 오래도록 고민했던 나였지만, A가 안정된 결혼 생활을 바탕으로 나와의 관계까지 스르르 회복되어 버리니 좋으면서도 맥이 탁 풀렸다. 앓던 이가 빠졌다고 해야 하나, 그 자리에 더 단단한 이가 자라 버렸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임플란트를 했다고 해야 하나.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만나서, 서로를 보듬어주고 서로를 그 자체로 인정해 줄 수 있는 관계라는 건

그동안 A라는 친구에게 수없이 조언했던 나도 잘 해내지 못하는 것.

부끄러울 만큼 상황이 역전되었다고 느꼈다. 새로 쓰인 2막이 좋으면서도 참 인간관계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걸 새삼 의식했다.



B는 A의 변화에 당황했다. 그러며 대화중, 자신은 '다 큰 성인의 부족함을 내가 채워줘야 하는 그런 관계보단, 서로 독립적으로 각자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관계로 맺고 싶다'라고 했다. 그 말을 그 자리에서 들은 A는 '그런 관계'로 명명된 자신의 현재가 부정당한 느낌을 받았고, 나는 그 가치관이 정녕 옳은 것이며, 그것을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것이 옳은 행동인가 잠깐 멈칫했다. 은연중에 내 마음에 조금의 균열이 생겼다.



한 사건이 터지다


불편함을 감추고, B와의 대화를 이어나가다 우연히 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바로 B의 주변인이 바람직하지 못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


그걸 들은 나는 관계를 하루 바삐 정리해야 하며, 이로 인해 피해받았을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알리고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이상적인 해결책이 가까운 친구 관계에선 쉬이 얘기할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예상치 못하게 B는 그 친구가 들키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을 해줬다고 했다. 평상시 만남을 지속해 왔던 친구의 연인에게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면모,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고 얘기했다. 새로운 상대가 워낙 매력적이라 빠지지 않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연이어 당황하는 나에게 B는 자신의 주변인들도 결혼을 하게 된 이후에 한 사람과 계속 관계를 이어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며, 자신도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나에게 그 말을 덧붙였다.


혼란스러웠다.

많은 이야기를 공유해 왔지만, 단 한 번도 이런 부분에서 생각이 틀어질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런 대화에서 가장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던 친구이기에 당연히 이런 흐름으로 서로의 다름을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다.

B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나는 상대에게 갑작스럽게 너무나도 다른 가치관을 엿보게 되어 당황했고,

상대는 내가 자신에게 공감해주지 못하고 단호한 모습으로 보이니 당황했던 것 같다.

균열이 없었다가 한번 크게 폭풍우가 지나쳐갔다.





누군가에겐 작은 균열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이런 차이를 A친구와 나는 무수히 많이 경험했지 않았을까. 

하지만 B와는 항상 견고한 관계라고 자신해서일까. 이 차이가 너무나도 크고 상당하게 와닿았다. 

이 균열이 지금 현재 와장창 깨어버린 흔적처럼 여겨질 만큼.

그래서 나는 그 흔적 앞에서 그동안의 나를, 내가 맺은 관계를 돌이켜 본다.


#우리의 가치관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었는데,

내가 매일 조금씩 변해오는 과정에서 나의 선택도 판단도 달라지는 것은 필연적인데

그 변화만큼이나 관계의 유동성을 나는 생각지 못했구나.


#견고하다고 생각했던 관계 또한 가변적인데.

오랜 시간 축적된 대화들이 바탕이 되어 나 스소로 그렇게 믿게끔 했나 보다. 


#'A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A의 생각도 A의 태도도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며

사실 돌이켜 보니 A는 그만의 해답을 찾아 건강한 관계로 나아가고 있었음을.'


#'B와의 관계를 확신했으나, B의 생각도 B의 태도도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사실 돌이켜 보니 B는 나와는 조금씩 다른 선택과 판단을 내리고 있었음을.'


상황을 돌이켜 보는 이 가운데에서 발견하곤 한다.

무엇이든 단정 지을 수 없으며, 속단할 수 없음을 뼈아프게 깨닫고 만다.


그리하여 정답을 찾지 않으려고 한다. 관계의 깊이나 정도를 스스로 규정짓지 않으려 한다.

떠나보내야 할 인연도 있을 것이고, 나의 생각과 편견에 갇혀 가둬두어서는 안 되는 관계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은 가볍게 내려놓기. 비워두기 마음먹는다.

마음먹는 것과 그 마음이 되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 마음 한켠은 여전히 씁쓸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그게 내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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