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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a Apr 14. 2024

04 불안함의 첫 시그널, ‘캐리어’를 로마에 버리다

이탈리아가 첫 방문이라면...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같이, 때론 혼자 이탈리아 ✈ 외국어를 몰라도 당당한 중년의 이탈리아 여행법

2. 이탈리아가 첫 방문이라면...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04 불안함의 첫 시그널, ‘캐리어’를 로마에 버리다

      


불안함의 첫 시그널, ‘캐리어’를 로마에 버리다 


        

추의 캐리어는 과연 무사할까?



“너무 아름다워.” 

곧 착륙한다는 방송이 나오자 비행기 창밖을 바라보던 심이 탄성을 지른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간. 마을임을 짐작하게 하는 불빛들이 반짝 반짝 대지를 수놓고 있다. 

드디어 다시 로마구나.’ 

내가 처음 로마를 찾은 것은 1999년.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로마를 다시 찾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이다. 트레비 분수는 25년 만에 나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짐을 찾으러 가며 잠시 잊고 있었던 추의 캐리어가 생각났다. 추의 캐리어가 과연 무사할까? 접히지 않는 손잡이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날지 온갖 상상을 하며 캐리어를 기다린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캐리어. 손잡이는 덕지덕지 붙여놓은 테이프 덕분인지 무사하다. 대신 바퀴 한 쪽이 박살이 난 채 추에게 돌아왔다. 바퀴가 덜렁덜렁~~ 이 상태로라면 바퀴가 빠지는 건 시간 문제다. 나는 이 캐리어와는 더 이상 함께 여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손잡이가 고장난 것은 어떻게 해볼 수 있지만... 바퀴 쪽이 부러진 것은 답이 없네. 추... 캐리어 싼 걸로 하나 사자.”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긴 했으나 내 머릿속은 복잡하다. 내일은 2023년의 마지막 날이자 일요일, 그 다음 날은 1월 1일. 내가 알고 있는 유럽에 대한 상식으로는 이런 날은 대부분 문을 열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에 가야 캐리어를 살 수 있을까? 바퀴까지 망가진 28㎏의 캐리어를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캐리어는 저 혼자 사러 갈게요. 두 분은 계획대로 일정 소화하세요.” 

자신으로 인해 여행 일정이 틀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추가 내뱉은 말이다. 그렇다고 어떻게 여행 첫날부터 추만 혼자 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 

숙소로 가는 택시 안에서 우리는 긴급 회의를 한다. 그리고 얻은 결론... 내일 오전에는 나 혼자 성베드로 광에 가서 교황님 집전 테데움 입장 티켓을 수령하고, 심과 추는 캐리어를 살 수 있는 곳을 검색해 캐리어를 구입하기로 한다. 내일까지 구입하지 못 하면 사망 선고 진단을 받은 이 캐리어를 끌고 베네치아까지 가야 한다. 그건 생각만 해도 버거운 일이다. 나는 비장하게 심과 추에게 어떻게 해서든 새 캐리어를 구해오라는 미션을 준다.



불안함의 첫 시그널, ‘캐리어’를 로마에 버리다


우리 숙소는 테르미니역 주변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근처인데 보다시피 캐리어가 박살이 난 상태. 원래 택시는 테르미니역까지 정찰제로 50유로인데, 숙소까지 50유로에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가능하다고 한다. 친절한 택시 기사님 덕분에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박살난 캐리어와 함께 숙소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숙소 루프트탑에서 보이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우리가 로마에서 사흘 동안 머무를 숙소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수도원 숙소로 테르미니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이자,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이 바로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는 짐을 풀자마자 테르미니역 안에 있는 수퍼마켓에 물과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러 길을 나섰다. 그런데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지나 테르미니역으로 가는 길에 접어든 순간, 우리들 앞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양 옆으로 온통 캐리어를 파는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닌가...ㅋㅋ 

“조금 전 택시 안에서 우리는 대체 무슨 회의를 한 거니? 집 근처에 캐리어 파는 곳이 이렇게 많은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이렇게 캐리어를 파는 곳이 많은 것도 한편 이해가 되었다. 울퉁불퉁 돌길로 유명한 로마. 전 세계 여행객이 몰리는 여행 1번지인 로마에 오며 “유럽, 그중에서도 로마는 돌길이 많아 바퀴가 튼튼한 캐리어를 준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 나 역시 심과 추에게 이 말을 강조하며 만약 캐리어를 새로 구입한다면 튼튼한 바퀴를 제 일 순위로 검토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추처럼 비행기로 오면서 바퀴가 부러진 사람도 있을 거고, 특히 울퉁불퉁 돌길로 유명한 로마에서 바퀴가 박살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으면 이렇게 테르미니역 근처 상점이 온통 캐리어로 가득할까...

2023년 12월 31일 오후 추는 손잡이와 바퀴가 부러진 자신의 낡은 캐리어를 숙소 근처 쓰레기 수거 장소에 버리고 새 캐리어에 자신의 짐을 담았다. 그리고 우리는 버려진 캐리어를 로마를 떠나는 1월 2일 아침까지 보았다.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는 손잡이와 바퀴 하나가 빠져 기우뚱하게 서 있는 캐리어... 이 길을 몇 번이나 지나치며 나는 이 캐리어에 이상하게 눈길이 갔다.    

처연하게 서 있는 캐리어

  

“아직 수거해 가지 않았네.”

          ......

“아직도 그대로 있네...”     


2023년 12월 31일, 추가 버린 캐리어는 2024년 1월 2일 오후 로마에서의 체크아웃 후 집을 나설 때 비로소 사라졌다. 로마에 머무는 동안 내내 처연하게 서 있던 캐리어가 드디어 수거되어 어딘가에 가서 파기될 것이다. 내 안에선 이중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애잔한 감정과 시원섭섭한 감정의 교차... 내 캐리어도 아닌데 왜 이 캐리어에 애잔한 감정이 들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추와의 이야기를 나누며 감정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때론 혼자’ 추에게 직접 듣는 캐리어 이야기  


불안한 내 마음이 시그널로 드러난 캐리어 사건


캐리어는 여행 전 나의 불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시그널로 나타난 사건이었다. 막상 여행을 함께 가자고는 했지만 서서히 여행일이 다가오며 내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3주간의 여행은 나에게 있어 너무나 장기간의 여행이었다. ‘내가 왜 간다고 했을까? 지금이라도 안 간다고 하면 알라가 화내겠지?’ 나의 마음은 갈팡질팡했다. 이 불안한 마음은 출발 당일 집을 나서는 순간 캐리어의 손잡이가 빠지는 사건으로 표현되었다.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안고 내가 이 여행을 가는 게 맞나?’ 하는 마음이 손잡이가 ‘퍽’ 하고 터지는 시그널로 드러난 것이다.

또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은 게... 그 당시 나는 공항까지 가는 동해남부선 전차 시간에 온통 마음이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캐리어를 바꿔 20인치 두 개로 나눠 담고 택시로 이동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 한 채 전차 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만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 안에 크게 자리한 불안함도 이 사건처럼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을 하나의 생각에 매몰된 결과물은 아닐까?’ 


이 캐리어 사건은 여행 내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금석이 되어 주었다.



나의 불안함의 무게는 28㎏


처음에는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싫었다. 알라가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강조한 ‘무게를 분산해야 하니 화장품과 충전기 등 공용물품은 내(알라)가 챙겨갈테니 챙겨오지 마라...’ 등의 준비사항을 어기고 나는 이 모든 것을 따로 다 나의 캐리어 안에 담았다. 

‘알라가 챙겨온 화장품이 나에게 맞지 않아 트러블을 일으키면 어쩌지? 알라가 준비한 어뎁터가 고장 났으면 어쩌지?’ 등의 불안함은 고스란히 28㎏라는 무게로 반영되었다. 28의 무게만큼 이 여행은 나에게 버겁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 내가 불안함으로 가득했던 헌 캐리어를 새 캐리어로 바꾸고, 나의 무거운 마음으로 가지고 간 낡은 옷과 함께 하나 둘씩 버리며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자그마치 10㎏를 버리고 18㎏로 돌아올 수 있었다. 캐리어 무게가 서서히 줄어들 듯 나의 불안한 마음도 하나 둘 버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내 안에서 ‘28㎏의 무게처럼 네가 그렇지. 네가 별 수 있나... 이 여행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불안한 마음이 컸으니 이렇게 드러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라고 생각했다면, 처음 도착한 로마에서 헌 캐리어를 버리고 새로운 캐리어에 나의 짐을 새로 담았다는 것이 나에게는 상징처럼 다가왔다. 특히 처음 갈 때보다 자그마치 10㎏나 짐을 줄여서 한국으로 돌아오며 나에게 있어서는 이 10㎏가 내 안에 있는 근심 걱정처럼 느껴졌다. 이 근심 걱정을 이번 여행을 통해 헌 캐리어와 함께 버리고 와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여행자가 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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