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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a Apr 21. 2024

05 더 이상 로마는 안 와도 될 것 같아...

이탈리아가 첫 방문이라면...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같이, 때론 혼자 이탈리아 ✈ 외국어를 몰라도 당당한 중년의 이탈리아 여행법

2. 이탈리아가 첫 방문이라면...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05 더 이상 로마는 안 와도 될 것 같아... 


         


다시 로마


25년 전 처음 로마를 찾았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첫 유럽 여행의 첫 시작이었던 로마. 나에게 있어 유럽 여행의 이유가 되어준 도시 로마. 그러나 막상 방문한 로마는 나에게 매력적인 곳이 되지 못 했다. 도착 다음날 이른 아침 찾은 바티칸 박물관은 시차로 인해 시작도 하기 전부터 이미 지친 상태였다. 잔뜩 기대를 가지고 바라본 <천지창조>와 화려한 천장화를 감상하면서도 ‘시차 때문에 너무 잠이 온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피곤하다.’라는 힘든 기억이 더 크게 남아 있는 장소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로마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3박을 잡긴 했으나 로마를 시작점으로 다시 잡은 이유는 한 가지였다. 2023년의 마지막 날을 교황님 미사로 마무리하고, 2024년 새해를 교황님 미사로 시작하고 싶다는 이유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는 절대 가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하지만 추와 심이 여행에 합류하며 나는 다시 관광객이 되어야 했다. 로마까지 왔는데 이들에게 바티칸 박물관과 콜로세움을 안 보여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 여행객 1위 로마의 명성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 콜로세오 지하철역



로마의 랜드마크인 콜로세움. 로마 추천 관광지 중 언제나 1, 2위를 다투는 곳이기도 한 콜로세움을 방문하기로 한다. 콜로세움은 홈페이지에서 한 달 전부터 예약할 수 있는데 인기가 너무 많아 가능한 시간대를 원한다면 늦지 않게 예약해야 하건만 내가 그만 깜박하고 만다. 그래도 다행히 오후 2시 타임을 예약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대기줄이 길지 않아 우리는 빠르게 입장했다. “여기는 가이드 설명은 들을 수 없어?” 심이 묻는다. “응, 가이드 신청은 별도로 하지 않았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기는 한데 한국어가 지원이 안돼.” “그래? 할 수 없지...” 학구파인 심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역력하다. 

각자 인터넷을 통해 콜로세움에 대한 간략한 정보만 확인 후 우리들은 층층으로 올라가며 콜로세움을 내려다 보았다. 겉에서 바라본 콜로세움 보다 막상 들어와서 보니 훨씬 더 규모가 웅장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 것처럼 나는 콜로세움에서 별 감흥을 얻지 못 했다. AD 80년경에 이런 엄청난 규모의 원형 경기장을 지었다는 것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될 만큼 뛰어난 기술을 갖춘 건축물이라는 것 따위로는 ‘와~’ 하는 감흥이 내겐 없다. 


대신 콜로세움을 보고 느낀 나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자면 ‘무거운 슬픔’이었다. 그리스도교 박해 당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검투사로 둔갑시켜 맹수와 싸우게 한 장소. 가이드들이 검투사와 맹수가 지하에서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짜안~~ 하고 올라와 검투를 벌이는 모습을 상상하면 얼마나 멋지냐며 AD 80년대에 오늘날의 엘리베이터와 유사한 기능을 설치한 원형 경기장의 기술에 감탄하며 극찬하는 설명을 내뱉지만... 나는 검투사들이 맹수와 싸우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그 몇 분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두려움의 시간이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에게 있어 이곳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기 위해 맹수와 싸우며 처절하게 죽어간 장소이자, 타인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투사와 맹수의 싸움을 환호하며 관람하는 인간의 잔인함이 느껴지는 잔혹한 여흥 장소일 뿐이었다. 

나의 얕은 지식으로 인해 보지 못하는 것이 있는지는 모르나, 무거운 검은 빛의 구름이 콜로세움을 내리누르고 있는 오늘의 날씨처럼이날 나에게 다가온 콜로세움은 무거운 슬픔이란 감정으로 기억된다 


콜로세움에 이어 포로 로마노로 가려고 길을 나서는데 빗줄기가 점점 더 거세진다. 거기다 바람까지 불어 심의 우산 날이 하나 부러지기까지 했다. 우리는 더 이상 무리를 하지 않기로 한다. 남은 오후 일정을 접고 심과 추는 숙소에 가서 저녁 먹기 전까지 쉬고, 나는 성베드로대성당에서 열리는 교황님 집전 테데움 기도에 참례하기로 한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기 위해 콜로세오 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순식간에 헬(Hell)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리고 만다. 지하철 역사 안은 몸을 옆으로 움직이기조차 힘들 만큼 지하철을 타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내 앞에 유모차를 타고 있는 아이가 겁에 질린 듯 울고 있다. 한 마디로 난리법석이다. 이러다가 자칫 한 사람이 삐걱하면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순간 오싹함이 나를 짓눌렀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1일 교통권이 있어 10분 만에 지옥과도 같은 역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의지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떠밀려가는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순간 공포감이 밀려오더라.” 

무사히 승강장에 도착한 우리들은 난생 처음 겪은 인파에 다들 무서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만 이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니었구나.’ 이태원 참사의 트라우마가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지. 여기는 세계 여행객 1위의 로마였지.’ 

많은 인파가 몰리는 로마라는 명성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 이곳 콜로세오 지하철 역이다. 



더 이상 로마는 안 와도 될 것 같아...



콜로세오 지하철 역에 이어 많은 인파가 몰리는 로마를 느끼기에 충분했던 성베드로 광장. 

1월 1일은 성베드로대성당의 쿠폴라에 올라가 로마의 전경과 바티칸 시국을 보기로 한다. 그런데 줄이 어마무시하다. 오늘은 휴일이라 대부분의 관광지가 문을 닫아서인지, 아니면 검색대를 한 군데만 설치해서인지 어제보다 줄이 훨씬 더 길다. 우리는 또다시 길고 긴 줄의 대열에 합류한다. 한 시간 반 정도를 기다렸나...? 겨우 겨우 우리는 성베드로대성당 진입에 성공한다. 그러나 또다시 기다림의 줄은 이어진다. 쿠폴라 입장을 위한 티켓을 사기 위해 줄 서고, 또다시 엘리베이터 탑승을 위해 줄 서고... 이렇게 우리는 약 3시간 만에 성베드로대성당 쿠폴라 위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열쇠 모양을 닮은 성베드로 광장과 로마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좌측으로 돌아가니 바티칸 시국이 정갈한 모습을 드러낸다. 바티칸 시국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25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다시 찾은 로마... 이곳에 다시 오게 될 줄이야... 좋기는 좋네... 

25년 전에 본 바티칸 시국과 25년 후에 다시 와 바라본 바티칸 시국의 모습. 


서서히 날이 어두워지며 불빛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다. 심과 추가 내려가자고 했지만 나는 좀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곳 쿠폴라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쿠폴라에 오르려면 오로지 걸어서 551계단을 오르는 것과 일부 구간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머지 320계단을 걸어서 오르는 선택지가 있는데 우리는 물론 일부 구간을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머지 320계단을 걸어서 오르는데... 그동안 얼마나 운동을 안 했는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인지 숨이 헉헉 차며 몇 번을 쉬었다 올랐는지 모른다.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나이가 더 들면 더 이상 못 오겠지 하는 마음이 들자 급 우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더이상 로마를 올 것 같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25년 전의 로마가 그랬듯, 이번 3박 4일간의 로마 역시 나에게는 그리 매력적인 여행지가 되지 못 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 그래서 길고 긴 줄을 기다려야 하는 관광지에 불과했던 로마. 마치 숙제하듯 콜로세움을 보고,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던지고, 성베드로대성당을 찾았을 뿐이다. 그러기에 로마를 떠나며 나는 심과 추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다음에 이탈리아를 다시 여행하게 되더라도 로마는 더 이상 안 와도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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