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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a Apr 28. 2024

06 (때론 혼자 로마) 깊은 인연, 성바오로대성당

이탈리아가 첫 방문이라면...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같이, 때론 혼자 이탈리아 ✈ 외국어를 몰라도 당당한 중년의 이탈리아 여행법

2. 이탈리아가 첫 방문이라면...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06 (때론 혼자 로마) ✈ 깊은 인연, 성바오로대성당  

        

         


2023년의 마지막 날을 교황님과 함께

   


앞서 언급한 대로 내가 이 여행의 첫 출발지를 로마로 잡은 것은 2023년의 마지막 날과 2024년의 새해를 교황님 집전 미사를 드리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하지만 로마를 방문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 교황님이 집전하시는 미사를 참례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나 한 사람 뿐이겠는가? 교황님 집전 미사를 참례하기 위해선 바티칸 홈페이지에서 미사 참례 신청을 한 후 티켓을 발급 받은 사람에 한 해 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티켓을 받기가 만만치 않다. 아무 때나 신청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바티칸 홈페이지에서 교황님 일정이 공개되어야 신청할 수 있는 창이 뜬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교황님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로마를 찾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티켓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하늘에 별따기... 나는 이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3개월 전부터 공을 들였다. 수시로 바티칸 홈페이지에 들어가 교황님 일정이 공개되기를 기다리며... 그런데 이런 나의 노력이 허망하게도 교황님 일정이 공개되자마자 바로 미사 참례 신청을 했건만 나에게 돌아온 답변은 슬픈 거절이었다.

사람들의 많은 요청으로 인해 좌석 수가 제한되어 있어 귀하의 요청을 수락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12월 31일에 교황님이 집전하시는 2023년 한 해 감사 저녁 기도 및 테데움에 참례할 수 있다는 답신을 받을 수 있었다. 12월 31일에는 교황님 집전 미사는 없고 저녁 기도만 공개되어 있었는데, 다행히 여기에는 참례할 수 있다는 초대를 받은 것이다. 물론 이 메일이 티켓을 대신하지는 못 하고 메일에 적힌 예약번호를 가지고 당일 오전까지 성베드로 광장에 있는 사도궁 청동문에 가서 실물 티켓을 수령한 후 이 실물 티켓을 보여줘야만 입장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성베드로 광장에 도착한 나는 메일에서 알려준 장소인 사도궁을 찾아 길을 나선다. 가는 길에 만나는 경호원들에게 길을 물었으나 의외로 사도궁의 위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메일에 의하면 성베드로 광장 오른쪽 열주에 있다고 했는데... 오른쪽 열주를 따라가다 보니 바리게이트가 쳐진 곳이 있고, 경호원이 서 있어 인쇄해간 메일을 보여주자 바리게이트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그러자 내 눈 앞에 계단 위로 3층 정도 높이의 웅장한 청동문이 나타난다. 그리고 거기에는 미켈란젤로가 손수 디자인한 근위복으로 더 유명해진 바티칸시국의 근위병이 느름하게 문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문 쪽으로 올라가자 이번에는 멋진 양복을 입은 신사가 나에게 다가온다. 내가 메일을 보여주자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데스크에서 봉투를 들고 나와 나에게 공손하게 건넨다. 겉 봉투에 나의 이름이 적혀 있다. 봉투를 건네 받은 나는 마치 귀한 파티에 초대받은 귀부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후 5시 기도인데 오전에 별도로 시간을 내서 티켓을 수령해야 한다는 것이 솔직히 처음에는 좀 번거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언제 또 내가 교황님이 집전하시는 전례에 참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티켓을 받으러 가면서도 속으로는 ‘그냥 이메일로 티켓을 대신하면 되지, 굳이 이런 번거로움이 너무 올드한 거 아냐?’라는 불만도 솔직히 있었다. 그런데 직접 티켓을 수령하며 내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나의 이름이 적힌 봉투를 보자 내 안에서 감동이 올라왔다. ‘내가 그 어느 귀한 파티보다 더 성스러운 교황님이 집전하시는 전례에 초대받은 거구나.’ 이 티켓을 받는 순간 오늘의 교황님 집전 저녁 기도 전례에 참례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 세 명의 티켓을 신청했는데, 심과 추는 시차도 잘 적응이 되지 않은 채 오후에 콜로세움까지 방문하는 바람에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 그냥 저녁 시간은 숙소에서 쉬기로 하고 나 혼자 다시 성베드로 대성당을 방문한다. 성당 안에 들어서니 많은 인파가 장난이 아니다. 제대를 중심으로 오전까지 없던 의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빠듯한 오후 일정으로 나는 간신히 전례 15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제대 중심에, 초대장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의자 밖 공간에 이미 너무 많은 인파가 교황님을 보기 위해 몰려 있었다. 언뜻 눈으로 봐도 앞 공간에는 빈 자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어렵게 구한 티켓인데 교황님의 모습을 제대로 알현하지 못 하는 뒤에 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앉을 한 자리는 있을 거야.’ 하는 희망을 가지고 과감히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자리가 없다. 이러다간 어렵게 이곳에 왔건만 교황님을 제대로 못 뵐지도 모른다고 실망하려는 순간 누군가 나를 손짓하며 부른다. 한국인 수녀님이다. 한국인이냐고 물으시더니 한 자리 비었으니 앉으라며 옆 자리를 내어주신다. 너무나 감사하다. 바로 기도가 시작되며 교황님 입장을 알리는 음악이 나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 했지만 이 수녀님은 정황상 이곳 로마에 공부를 하러 오신 듯해 보였다. 한국에 있는 많은 수도회에서는 성경을 비롯해 많은 신학 부문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로마에 공부를 하러 온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많이 있다. 먼 타국에서 만난 한국인 수녀님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 거리에서 교황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이 기도 테데움에서 나의 인상에 오래 남았던 장면은 비교적 앞자리에서 교황님 집전 기도 내내 양 손으로 초록 스카프를 휘날리는 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얼핏 보기에 광신도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얼핏 보기에 어딘가 정신이 아픈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 여인...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많이 거슬리게 다가왔다. 정면에 보이는 교황님과 한 프레임으로 잡혀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이 여인의 모습이 달갑게 보이지 않았다. ‘왜 저러는 거야?’ ‘좀 미친 사람 아냐?’ 등등... 동시에 이런 은혜로운 자리에서 자꾸만 부정적인 반응이 올라오게 만드는 저 여인의 행동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교황님 집전 테데움은 약 1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여인도 물론 1시간 동안 같은 행동, 즉 초록 스카프를 나부끼는 행동을 반복해서 했고...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그 여인에게서 베로니카의 모습을 보았다. 베로니카는 성경 외전에 등장하는 인물로, 가톨릭 전례 중 하나인 십자가의 길 중 6처인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을 힘겹게 오르시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 예수님은 하느님을 모독한 죄인으로 그 당시 최고의 형벌인 십자가형을 선고 받고 당신이 죽을 장소까지 십자가를 짊어지고 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다. 십자가형을 선고 받고 가시관을 머리에 쓰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예수님을 조롱하는 군중이었다. 여기서 아무리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함부로 예수님께 호의를 베풀 수 없는 상황. 자칫 예수님에게 우호적 태도를 보이다가는 자신도 어찌될 줄 모르는 포악한 군중 속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선뜻 나설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베로니카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예수님에게 다가가 가시관에 찔려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예수님의 얼굴을 자신의 수건으로 닦아준다.

왜 그 여인에게서 베로니카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을까?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교황님에 대한 존경심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 저 여인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이것저것 재지 않고 오직 자신의 믿음으로 행동하는 이 여인의 행동에 마음 불편해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점점 더 미지근해져가고 있는 나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었다.  

바르셀로나 사그라다파밀리아 성당에 있는 예수님 얼굴이 새겨져 있는 수건을 들고 있는 베로니카 조각상



깊은 인연, 성바오로대성당


유명한 성당과 유적지가 널려 있는 로마. 로마는 두 번째 방문이지만 두 번의 방문을 날로 계산하면 겨우 7박 8일 밖에 되지 않는 시간 안에서 내가 본 로마는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로마에서 가이드로 생활하며 몇 년을 이곳 로마에 살면서도 다 못 가본 곳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정도로 로마를 다 보겠다고 하는 것은 무리다. 나 역시 도장깨기 식으로 그렇게 하기도 싫고... 그렇다면 선택과 집중을 잘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로마 여행을 준비하며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나는 성바오로대성당(‘성문 밖의 성바오로대성당’이라고 불리기도 함.)을 꼽았다. 나와 성바오로대성당과의 인연 이야기는 이러하다.  

    

내가 처음 로마를 찾은 것은 1999년. 그때는 내가 ○○수도회에 입회를 앞둔 해였다. 수녀가 되면 다시는 자유롭게 여행할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수녀원 입회를 앞두고 유럽 여행을 감행했다. 그 당시 나는 직장을 그만 두고 수도회 입회하기까지 약 3개월 정도의 자유시간이 생겼다. 결혼을 앞둔 여자들도 막상 날을 잡으면 많은 생각들로 인해 힘들어한다고 하더니, 나 역시 수녀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입회 날짜를 잡았으나 막상 하루 하루가 다가오며 ‘잘한 결정일까? 내가 수도자로 잘 살 수 있을까?’라는 나의 선택에 대한 불안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크게 나를 불안하게 했던 것은 ‘주님은 정말 나를 원하신 것이 맞는가?’ 등의 ‘부르심’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혼란의 시간을 보냈다. 그 혼란의 한 가운데 있는 중에 떠난 여행이었고, 그로인해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비행기표와 유레일 패스만 가지고 무작정 비행기를 탔다. 로마에 3박 4일 동안 머무르며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솔직히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 그저 그런 여정이었다.


수녀원에 입회 후 내가 속한 수도회가 로마를 본원으로 두고 있는 수도회이자, 성바오로 사도를 주보 성인으로 모시며 전교의 삶을 본받기 위해 탄생한 수도회로 성바오로 성인은 내가 수도회에서 생활하며 매우 중요한 분으로 나에게 자리매김했다. 그런 성바오로 성인의 무덤이 있는 성바오로대성당이 로마에 있다는 것을 수도회에 입회한 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로마에서 성바오로대성당을 방문했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발길 닿는대로 어디가 어디인지 제대로 모른 채 이 성당, 저 성당, 이 유적지, 저 유적지를 무작정 보고 다녔기 때문에 성바오로대성당을 갔는지, 안 갔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칼을 차고 있는 성바오로 성인의 동상을 보자 나는 어딘가 익숙한 그 모습에 ‘아, 내가 다녀왔지만 어리석게도 그곳이 성바오로대성당인 것을 몰랐구나.’ 하며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떠난 25년 전의 로마 여행을 떠올리며 성바오로대성당을 갔으면서도 그 의미를 몰랐던 내 자신이 참 어리석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번 여행에서 심과 추가 바티칸 박물관 투어를 할 시간에 나는 이번에는 제대로 성바오로대성당을 알고 보고 오겠다고 마음 먹고 ‘때론, 혼자’ 여행 일정으로 성바오로대성당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바오로대성당은 내가 처음 방문하는 곳이었다. 성바오로대성당은 로마 시내를 둘러보다 우연히 찾을 수 있는 장소에 있지 않았다. 테르미니역에서 B호선을 타고 6정거장을 가야 만날 수 있는 로마 시내에서 벗어난 외곽 지역에 자리하고 있었다. 일부러 찾아가야 볼 수 있는 그런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은 비록 수도원을 탈퇴해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10년간 수도원에 있으며 성바오로 성인의 정신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그러한 시간들로 인해 이곳 성바오로대성당은 나에게 특별한 순례지이다.    


지하철역에 내리자 로마 시내와는 다른 한적함이 느껴졌다. 로마에 도착한 후 계속해서 비가 오거나 구름이 잔뜩 낀 로마만 보다가 이날의 로마 날씨는 너무나 청명했다. 역사 밖으로 나오자 저멀리 성당이 내 눈에 들어온다. 왕래하는 사람들만 봐서는 그냥 동네 성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산해도 너무 한산하다.

때마침 내가 도착하자마자 미사가 시작되고 있어 미사도 드리고, 성바오로 성인의 무덤 있는 곳에 한참을 앉아 기도를 할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10년 동안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가끔씩 궁금증을 가졌던 이곳 성바오로대성당... 비록 그동안 방문한 적이 있다고 착각을 하며 살았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친근하고 더 오랫동안 이곳을 알았던 것인 양 편안하게 다가왔다. 이곳에서 나는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성바오로 사도의 무덤


성바오로 성인의 무덤이 있는 곳에 한참을 무릎 꿇고 앉아 있기도 하고, 성당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앉아 있다 보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10년간의 수도원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행복했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이 다 공존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 떠오르는 생각은 10년의 시간들이 나에게 안겨준 선물들이었다. 여러 가지 선물을 받았으나 그중 최고의 선물은 다름아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해준 것이다.


20대까지 나를 알았던 사람들 중 30대의 수도원 생활로 인한 공백 후 40대에 다시 만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어딘가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은데?”라는 반응이었다. “왜 내가 많이 변한 거 같아?”라고 물으면 공통으로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는 네가 하는 말에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날이 서 있었던 걸로 기억해.”

그렇다. 20대의 나는 나에게든, 다른 사람에게든 일정한 선을 그어 놓고 재고 판단하는 아주 날카로운 아이였다. 수녀원에 들어가서도 초반에는 그러한 나의 성향이 이어져 ‘저 수녀님은 왜 저렇게 행동하지?’라며 판단하고 단죄하곤 했다. 그것이 관계 안에서 걸림돌이 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러다 서서히 기도생활을 하며 변하기 시작했다. 수도자의 삶이란 노동도 하지만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하는 특권이 주어진다. 기도는 종교적으로 보면 하느님과의 대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비종교적인 관점으로 보면 나 자신과의 대화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상 중간 중간에 잠시 멈추고 하는 기도 시간은 때로는 하느님께 나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나 자신의 잘못에 대해 자책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나 자신에게 인색한 사람일수록 자신도 들들볶고, 타인도 들들볶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기도를 하며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서서히 나의 기도는 판단을 내려놓으며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공감하는 대화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자 서서히 내 안에 자리한 날카로운 칼날이 서서히 무뎌지기 시작했다.

또한 기도를 통해 성찰하는 방법을 배우며, 나의 부족함과 상대의 부족함을 분리시키는 방법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고칠 수 있다는 착각에서 평화로움이 깨진다는 것을... 나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도 고치기가 힘든데, 다른 사람을 내가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내가 굳이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 판단하고 고치려 하는 순간, 오히려 내 안에서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나 자신을 찌르고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몫과 내가 할 수 없는 몫을 분리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타인의 잘못으로 발생한 일이 나에게 상처로 다가오지 않기 시작했다.

  

나의 30대는 온전히 수도원에서 보냈다. 가장 많은 꿈을 펼칠 수 있는 30대를 수도원에서 보냈기에 그 시간들이 아깝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시간들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오히려 수도원에서 보낸 10년의 삶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준 값진 시간들이었다.

수도원은 나에게 온전하게 나를 사랑하며 사는 방법을 알려준 곳이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지금도 많은 실수와 잘못을 하지만 그 실수와 잘못 앞에서 시선을 타인에게 두지 않고 나 자신에게 두는 법을 알게 해준 곳이다.


성바오로대성당은 그런 의미에서 15년 동안 잊고 지내왔던 수도원 삶을 소환한 신앙의 고향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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