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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a Aug 04. 2024

17 피렌체에서는 무조건 1일 1 티본스테이크야!

맛으로 기억하는 이탈리아 /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

같이, 때론 혼자 이탈리아 ✈ 외국어를 몰라도 당당한 중년의 이탈리아 여행법

맛으로 기억하는 이탈리아 /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



    

네가 지금 대학생이니? 중년답게 몸 좀 생각하며 여행하자!

    

여행의 여러 유형 중 보는 것을 중시하는 스타일이 있고, 먹는 것을 중시하는 스타일이 있는데, 나는 솔직히 후자에 속한다. 앞서 여러 번 언급한 바도 있지만 25년 전 맥도널드 햄버거만 먹고 다녔던 유럽 첫 여행의 한 맺힌 기억이 미친 영향이기도 하다. 그때 깨달았다. 먹는 것은 단순히 맛있는 것을 먹는 차원을 뛰어넘어 문화를 향유하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을... 그 이후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문이 바로 그 지역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추천 음식을 찾는 거다. 그것이 과몰입되어 어떤 음식에 대해서는 집착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있기도 하지만...ㅠㅠ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에피소드 편에서 하겠다.) 이번 여행에서도 꼭 먹고야 말겠다는 집착 음식이 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피렌체의 티본스테이크라고 불리는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이다.

여행 전부터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와의 영접일과 영접 장소를 고르는데 신중을 기했다. 그 결과 우리는 피렌체 둘쨋날 일몰 감상 후 여유롭게 식사를 하자는 쪽으로, 그리고 달오스테(Trattoria dall’Oste)가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유명하기는 하나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평판이 좋은 자자(Trattoria Za Za)로 선정한다.


그런데... 그렇게 벼르고 벼른 일명 피렌체식 티본스테이크와의 영접을 앞두고 우리들 사이에서 감정에 균열이 일어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발단은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세 명이 합의해 정한 조토 종탑에서의 일몰 장소를 일방적으로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바꾸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심과 추를 산타노벨라역으로 소환한 것이다. 조토 종탑에 올라가는 입장권이 비싸다는 이유를 들어... 심과 추가 여기까지는 그래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미켈란젤로 언덕에서다. 우피치 미술관 투어를 시작으로 하루 일정이 빡빡해 다들 지쳐있는 상태에다 날씨까지 너무 추웠다. 낭만이고 뭐고 오래 머물 수 없었던 우리들은 빨리 내려가기로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택시를 타고 내려가자는 추의 의견을 묵살하고 나는 버스를 고집한다. 그때 난 심이 양손 가득 짐이 들려져 있다는 것도 고려하지 않았고,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택시를 타고 가자고 말한 추의 상태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미켈란젤로 언덕을 일몰 장소로 선택한 데는 경비를 아끼려는 목적도 있었기에 왕복 택시 요금을 지불하는 예상 밖의 지출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더 크게 나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으나 나의 고집으로 탑승한 버스에서 우리들은 탑승 거부를 당하고 만다. 버스 요금을 내가 가진 트래블체크카드로도, 현금으로도 지불할 수 없고 오직 버스카드(티켓)로만 지불 가능하다는 것이다. 거기다 설상가상... 우리가 서 있는 위치에서는 택시도 잡히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미켈란젤로 언덕길을 걸어서 내려가야 했다. 날씨는 춥지, 짐은 무겁지... 컨디션은 최악이지... 우리들은 점점 더 말이 없어지며, 어느 순간 침묵만이 감돌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조토 종탑에서 일몰을 감상하는 건데... 괜히 몇 푼 아끼겠다고 계획을 해까닥 바꾸는 바람에... 이 분위기 어쩔 거니?’ 나의 마음은 좌불안석이다. 다행히 얼마 내려가지 않아 구세주처럼 빈 택시가 나타나, 무사히 자자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려가는 택시 안에서 역시 그 누구도 아무 말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이날의 우리들의 기분 상태를 짐작하게 할 뿐...


너무 추워 심이 마스크로 방한을 해보지만... 1월 10일의 미켈란젤로 언덕은 많이 추웠습니다.


‘알라, 네가 지금 대학생인 줄 아니? 돈 몇 푼 아끼겠다고 몸을 혹사시키게...

중년답게 몸 좀 생각하며 여행하자!’ (내가 나에게 건네는 충고!)    




피렌체에서는 무조건 1일 1 티본스테이크야!


트라토리아 자자에서의 저녁 만찬. 다행히 저녁 6시 30분 예약 시간에는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외부 테라스에는 벌써 여러 테이블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우리는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너무 오들오들 떨어 선호도가 높은 외부 테라스 대신 따뜻한 실내를 선택한다. 실내는 넓은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옛날 주택의 내부를 그대로 살린 아치형 인테리어 구조로 가정집 같은 아늑함이 느껴진다. 거기에 나뉜 공간마다 벽 컬러를 다르게 사용하며 빈티지한 분위기를 더한다. 특히 우리가 안내받은 곳은 통나무로 된 천장에 빈티지한 딥블루 컬러의 벽,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지며 내 취향을 저격했다. 따뜻한 온기와 은은하게 나는 숯불고기향을 맡자 우리는 언제 마음이 불편했냐는 듯 얼었던 몸과 함께 불편한 마음도 스르륵 녹기 시작한다.


트라토리아 자자 내부 모습.


심의 주문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이 집에서 유명하다는 감베리 파스타에다, 종업원이 추천한 토스카나에서 유명한 키안티산 하우스와인까지... 물론 오늘의 주인공은 피렌체식 티본스테이크로 불리는 이 고기의 정식 명칭인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이다. 토스카나 주 키안티 지역에서 키운 키아니나종 토종소의 티본(T-bone) 부위, 즉 양 옆으로 안심과 등심이 붙어 있는 부위를 사용해 두툼한 고기 속에 T자형 뼈가 들어가 있어 일명 티본스테이크라고 불린다고 한다. 키아니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면서 피하지방이 적고 콜레스테롤이 낮아 세계적인 최상급 소로 꼽히는데 그중 최고는 키아나 밸리(Val di Chiana)에서 자라는 몸집이 큰 흰 소라고 한다. 내가 기억하기로 흰 소는 비싸 우리는 그냥 평범한 키아니나종 토종소를 주문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우리들에겐 충분히 호사롭다.

  


드디어 우리들 앞에 자태를 뽐내며 나타난 티본스테이크에 흥분한 나.

“추, 내 가방에서 와사비 좀 꺼내줘.”

오늘을 위해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온 생와사비 준비 완료. 심은 현란한 손놀림으로 스테이크에 레몬즙 샤워 완료. 심의 커팅에 우리는 빈 접시를 들고 마치 어미새가 모이를 줄 때를 기다리듯 그렇게 기다린다. 바삭한 겉면과 달리 칼을 대자 신선한 선홍빛의 속살이 드러난다. 내가 고기 위에 와사비를 얹으려 하자 심이 극구 말린다.


신선한 선홍빛의 속살은 어디 갔니? 맛있는 거 앞에서는 종종 사진 찍는 걸 잊는 초보 블로거랍니다.ㅠㅠ


“알라, 먼저 순수하게 고기맛을 느껴보는 게 어때?”

심의 지시에 따라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순수한 안심 맛에 집중한다. 숯불향과 함께 고소하면서도 부드러운 육질이 입안에서 춤을 춘다. 여기에서 미식가 심의 한 마디! “쇠고기는 마블링이 있어야 맛있다는 나의 생각을 오늘부터 정정할게. 마블링이 없어도 이렇게 부드럽고 고소할 수가 있다니...”

피렌체 첫날 저녁 중앙시장에서 스테이크를 먹은 경험이 있는 추가 덧붙인다. “어제 중앙시장에서 센 불에 바짝 태운 질긴 스테이크에 실망했는데 완전 다른 맛인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중앙시장을 가지 않고 티본스테이크를 먹을 걸 그랬어요.”


추가 중앙시장에서 먹은 바짝 태운 스테이크. 티본스테이크랑 맛 비교 불가 ㅠㅠ


그렇다. 왜 피렌체에 3박 머무르면서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일명 피렌체식 티본스테이크)를 한 번만 먹을 생각을 한 거지? 거기다 감베리 파스타를 시켜 양이 많을까 봐 스테이크를 1.2㎏만 주문한 것도 살짝 아쉬움으로 남았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티본스테이크~~ㅋㅋ

  

이 날의 티본스테이크는 조금 전까지 불편했던 우리들의 관계를 일순간 화해시켜 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고기를 씹으며 우리들의 불편했던 마음도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이제 우리들 식탁의 주제는 오직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 뿐이다.

“이거 한 번만 먹기 너무 아쉬운데...”

“내일 친퀘테레 갔다 와서 먹을 시간 될까?”

                  ......     


고기러버로서 이날 얻은 교훈은 피렌체에서의 1일 1 티본스테이크는 선택이 아닌 의무입니다.ㅋㅋ


오랜 시간 추위에 떨다가 와인을 마셔서 그런지 심은 와인 한 잔에 바로 알딸딸~~ 이날 행복하게 술 취한 심은 미켈란젤로 언덕에서는 그토록 무겁기만 했던 봉지가 더 이상 무겁지 않은가 보다. 봉지를 가볍게 들고 쫄랑쫄랑 피렌체 밤거리를 헤맸다는 사실~~ㅋㅋ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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