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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로마와 아시시에서는 수도원에서 자보는 거 어때?

숙소에 진심을 담다 1 / 이탈리아 수도원 기행

by Joanna

같이, 때론 혼자 이탈리아 ✈ 외국어를 몰라도 당당한 중년의 이탈리아 여행법

숙소에 진심을 담다 1 / 이탈리아 수도원 기행


Monastery Stays를 들어보셨나요?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다가 ‘Monastery Stays’라는 이탈리아에 소재한 수도원이 운영하는 숙박시설을 연결해주는 중개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수도원에서 묵을 수 있다니. 오래전 읽었던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이 떠올랐다. 일반인들이 범접하기 쉽지 않은 수도원이라는 공간을 열어 보여주던 기록들. 그때는 작가의 꿈도 없었는데, ‘언젠가 나도 저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수도자의 삶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으리라. 세월이 흘러 잊고 있던 그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로마와 아시시, 가톨릭의 심장 같은 두 도시에서 수도원에 묵을 수 있다니. 나뿐 아니라 동행한 심과 추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 믿었다.

물론 수도원 숙소는 호텔과 달랐다. 예약 확답을 받는 데 나흘, 문의에 대한 답장을 받는 데 또 사흘. ‘빠름’과는 거리가 먼, 수도자의 시간이었다. 밤 11시 통금, 제한된 생활 규칙. 하지만 나는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수도원에서의 숙박 경험을 심과 추에게도 나누고 싶었다.

“통금도 있고, 난방도 약할 수 있어. 조식도 아주 소박할 거야. 그래도 우리가 언제 수도원에서 자보겠어? 이건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경험이 될 거야.”

두 사람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우리들의 수도원 기행은 시작되었다.


왼쪽은 로마 수도원, 오른쪽은 아시시 수도원

로마 수도원 숙소
아시시 수도원 숙소


로마 수도원, 느림이 주는 평안


로마의 엘리자베트 수녀원.

대문 벨을 누르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연세 지긋한 수녀님이 온화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하신다. 오직 이탈리아어로만 이어지는 체크인 절차. 여권을 보여달라, 조식은 몇 시부터다, 통금은 밤 11시다… 간간이 이해가 안 될 때마다 나는 구글 번역기를 켜야만 했다.

체크인 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20분. 민첩한 호텔 직원이라면 채 5분이 걸리지 않을 체크인 과정이 전문 직업인이 아닌 소임으로 돌아가면서 하는 수녀님들에게는 익숙지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세속의 ‘빨리’의 문화와는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노수녀님은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다. 모든 체크인 절차를 마치고 열쇠를 건네며 따뜻하게 웃어주시는 수녀님의 미소에 마치 집에 돌아온 양 편안함이 밀려온다.



수도원은 추울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방은 무척 따뜻했다. 추가 덥다고 테라스 문을 열 정도였으니... 방에 딸린 작은 테라스는 아담하고 예뻤다. 옥상에 올라가니 크리스마스 조명이 담장을 수놓고 있었다.

“와, 너무 예쁘다. 어떻게 이렇게 높은 건물이 없지? 저게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이지? 바로 코앞이네.”

도시 한복판, 그러나 고요한 공간. 나는 로마 속 또 다른 로마를 만난 듯했다.

로마 수도원 숙소 루프탑에서 바라본 전경. 여기에서 우리는 라면을 끓여 먹었답니다.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네요~~



이탈리아 최고의 조식 맛집, 로마 수도원

첫 아침, 나는 수녀원 미사에 참석했다. 추가 “나도 가볼래” 하고 따라 나선다. 연로하신 수녀님들이 열두 분쯤 계셨던 것 같다. 힘든 수도자의 길을 기피하기에 점점 수도자로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없다고 하더니 이곳 수도원도 사정은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조식 타임. 수도원이라 소박할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깬 조식이었다. 직접 구운 빵, 햄과 치즈, 풍미 깊은 버터. 단순하지만 풍요로웠다. 심과 추는 버터를 바르고 햄과 치즈를 쌓아 올려 한 입 먹을 때마다 감탄을 쏟아냈다.

“이건 최고급이야. 왜 이렇게 맛있지?”

우리는 이곳에 머무르는 내내 한 시간 넘게 앉아 조식을 만찬처럼 즐겼다. 유럽에서의 첫 끼, 그것도 수도원에서의 조식이 이토록 강렬할 줄이야... (이때 버터가 너무 맛있어 많이 몰래 챙겨 여행 내내 아껴가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수녀님들에게 기부는 못 할 망정 살림을 거덜내고 왔으니... 양심에 찔린다.ㅠㅠ)


로마의 수도원 하면 ‘따뜻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여행 후 돌아와 벨을 누르면 문이 열린다. 그리고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 주시는 수녀님들. 마치 엄마가 있는 집에 들어올 때 느끼는 안정감,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신 수녀님들이다. 느림이 오히려 평안이 되는, 이것이 내가 체험한 로마의 수도원이다.


아시시, ‘Be Calm(비캄)’의 울림


아시시 수도원 창에서 바라본 성프란치스코 대성당


‘따뜻함’으로 남아 있는 로마의 수도원 숙소 경험은 자연스럽게 아시시에 대한 기대를 높여놓았다. 더구나 아시시의 수도원은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리에 있어 설렘은 더욱 커졌다.

대문 벨을 누르자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수도원은 ZTL 구역 안에 있었지만, 허가를 받아 안마당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수녀님이 나타나 주차를 안내해주고는 이내 사라진다. 주차를 마치고 체크인을 위해 1층에서 기다렸으나 좀처럼 수녀님이 나타나지 않는다. 한참이 지나서야 등장한 수녀님은 큰 체격에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마치 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에서의 B사감을 떠올리게 할 만큼 단호한 인상이었다.

체크인 절차는 간단했다. 수녀님은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랐다. 사건은 여기서 시작된다. 심이 습관적으로 ‘문 닫힘’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묵직한 수녀님의 손이 심의 팔목을 잡는다. 그리고는 내 뱉은 단 한 마디 “Be Calm”

묵직한 손길과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심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고 한다. 나중에 내가 넌지시 물었다.

“수녀님의 제지의 손길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어?”

“평소 같으면 분명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어.” 그러며 심은 오히려 그동안 ‘빨리, 빨리...’ 하며 살아왔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수녀님의 ‘Be Calm’(침착해라. 진정해라.)이라는 한 마디가 강하게 자신의 머리를 강타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우리 사이에서 ‘Be Calm’은 작은 주문이 되었다. 누군가 조급해질 때마다 ‘비 캄, 비 캄(Be Calm)’ 하고 웃으며 속도를 늦추곤 했다.


역시 아시시는 아시시구나


로마 수도원 숙소가 기대 이상이었기에, 우리는 아시시 역시 자연스럽게 기대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아시시는 역시 아시시라는 것을. 성 프란치스코 성인이 살았던 ‘가난과 청빈’의 정신이 이곳 수도원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밤새 난방을 켜주던 로마 수도원과는 달리, 아시시 수도원은 밤 11시가 되면 난방이 꺼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코끝이 시릴 정도다. 그래도 ‘아침 식사는 맛있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식당에 갔으나, 테이블 위에는 요거트 하나, 딱딱한 빵조각과 잼, 그리고 커피와 주스가 전부다. 아시시다운 조식이라고나 할까? 실망스러운 한 끼였지만 곧 깨닫는다. 이 소박한 조식이야말로 성프란치스코의 삶을 닮은 ‘가난과 청빈’의 식사라는 것을.


식당 한 켠에서 어제 체크인 때 만난 수녀님을 만났다. 수녀님들이 직접 뜬 뜨래질 작품을 보여주시며 “이 수익은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쓰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어제 심의 손목을 잡고 ‘Be Calm(비캄)’을 말하던 단호한 표정은 온 데 간 데 없고 아이 같은 미소가 가득하다. 나는 그 얼굴에서 세속의 기쁨이 아닌, 다른 기쁨에 기대어 사는 행복을 보았다.

왼쪽 건물이 수도원. 성프란치스코대성당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답니다.


수도원이 내게 건넨 말


지금도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무심코 문 닫힘 버튼을 누를 때마다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Be Calm.”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일만이 아니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이들이 건넨 한 마디와 표정이 때론 나를 멈추게 한다. 로마 수도원에서는 ‘느림’이 주는 평안을, 아시시에서는 ‘침착하라’는 짧은 말의 울림을 배웠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어느새 ‘느림’ 보다는 ‘빠름’에, ‘숨 고르기’ 보다는 ‘서두름’에 더 익숙한 나로 돌아가 있었다. 그럴 때 마음 속에서 아시시에서 만난 수녀님의 음성이 들릴 때가 있다.

“안나야, Be Calm(비캄)”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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