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탈리아 맞아? / 토스카나(이탈리아 중부)
날 속인거야? 왜 벽난로가 없지?
여행을 준비하며 나에게는 커다란 로망이 있었으니 그것은 토스카나의 벽난로 있는 농가민박을 빌려 벽난로 앞에서 럭셔리하게 티본스테이크를 곁들인 저녁 만찬을 하는 것과 자작 자작 타는 장작을 바라보며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힐링의 타임을 꿈꿨다. 그런 로망 실현을 위해 나는 그 어느 곳보다 토스카나 숙소 선별에 신중을 기한다. 실내 벽난로 사진까지 확인 완료.
피렌체를 떠나는 날 우리는 중앙시장을 들러 티본스테이크용 고기를 샀다. 선홍색의 고기 빛깔이 장난이 아니다. 거기에 가격은 또 어찌나 착한지... 자자(Za Za)에서는 1.2㎏에 60유로였던 것에 반해 이곳 중앙시장은 달랑 18.5유로 밖에 하지 않는다. 3분의 1 가격. 여러 정육점 중 인상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구입한다. 친절한 할아버지는 우리의 어떤 요구에도 환한 웃음으로 오케이 하신다. 우리가 구입한 고기는 티본스테이크 1.5㎏, 소고기 다짐육 조금, 김치찌개용 돼지고기 조금, 그리고 돼지목살 조금... 총 가격은 너무나 놀랍게도 26.6유로밖에 하지 않았다.
드디어 토스카나의 아그리투리스모라고 불리는 농가 민박에 도착. 그런데 숙소에 도착해 집을 둘러보는데 실내 벽난로가 장식용이 아닌가? 순간 나는 멘붕 상태에 빠진다. 그때부터는 집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심은 집이 너무 고급스럽다고 만족해했지만 나는 주인에게 벽난로가 있는 사진을 보고 왔는데 왜 없냐고 따지느라 바빴다. 주인은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벽난로는 인테리어용으로만 있는 거지 실제 사용은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명시했다고 말한다. 내가 그만 인테리어용으로 장식된 벽난로에 속은 것이다.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이 화근... 나는 속았다는 생각에 좀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옆에서 심은 그런 나의 행동에 노심초사.
“벽난로가 실내에 있어도 벽난로에서 스테이크를 굽는 것은 냄새 나서 불가능했을 거야.”
그렇게 나의 화를 누그러뜨린다.
이제 와서 없는 것을 왜 없냐고 우기면 어쩔거냐? 스테이크 고기를 준비해왔는데 이 두꺼운 걸 후라이팬에 구울 수도 없고... 나는 화를 진정시키고 주인에게 그럼 우리가 스테이크용 고기를 가지고 왔는데 구울 수 있는 공간이 있냐고 묻자 주인은 자신감 있는 웃음을 지으며 화로가 별도로 마련된 장소로 나를 안내한다. 나중에야 진정하고 숙소 예약 사이트를 들어가보니 주인 잘못은 전혀 없었다. 내가 벽난로가 있느냐고 묻지도 않았고, 주인 역시 벽난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으니까... 한 마디로 나의 착각.
심은 저녁준비를 하고 추와 나는 와인을 사러 인근 아시아노 시내에 위치한 쿠프 마트에 간다. 아시아노 시내는 정말 작은 마을이었다. 그에 비해 쿠프(COOP)는 생각보다 컸는데, 무엇보다 우리는 이곳 쿠프의 가격에 너무 놀랐다. 싸도 너무 싸다. 쿠프는 유럽 전역에 있는 체인 슈퍼마켓인데 마침 50주년을 맞아 대폭 할인행사를 하고 있었다. (쿠프 수퍼마켓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로 다시 하겠다.) 올리브오일을 비롯해 트리플 소금 등이 피렌체 중앙시장에서 본 것보다 엄청 싸다. 그렇다면 고기는 어떨까 하고 정육 칸으로 갔더니 고기가 너무 신선하다. 특히 티본스테이크의 빛깔이 우리가 산 것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선홍빛이 장난이 아니다. 거기다 중앙시장에서도 무지 싸게 샀다고 감탄했는데, 이곳 티본은 안심이 훨씬 더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도 가격차는 별로 나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기에서 사는 건데...ㅠㅠ
최고의 티본 스테이크 맛집은 바로 이곳!
집 안으로 들어서자 냄새만으로는 이곳은 한국이다. 보글보글 김치찌개 냄새가 우리 코끝을 자극한다. 이제 고기만 구우면 만찬 준비 완료.
고기 굽는 막중한 임무를 내가 자청한다.
“내가 맛있게 구워올게.”
“알라, 절대 고기는 해가닥 해가닥 뒤집는 거 아닌 거 알지?”
“걱정 마. 나 고기 잘 구워.”
주인 아저씨 집으로 찾아가 노크를 하자 조금 있으니 집 안에서 잘 타는 벌건 숯을 가지고 나오신다. 주인 아저씨 집 안에는 벽난로가 있었던 것이다. ㅠㅠ 내가 만나자마자 실내 벽난로가 없어 화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웃으며 불을 준비해주신다. 그러면서 뭐라 뭐라 말씀하시는데 그 말을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 했다.
지글지글 스테이크를 굽기 시작한다. 내가 조금 있다가 혹시 타나 싶어 뒤집었는데 허옇다. ‘아이쿠 너무 빨리 뒤집었네’ 하는 순간 심이 나타난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알라 이렇게 해가닥 뒤집으면 안 된다고 그랬잖아.”
“왜 내려온거야? 나를 믿지 못해서 내려왔구나.ㅠㅠ”
그렇다. 심은 나를 믿지 못 하고, 나에게 이렇게 중차대한 맛이 결정되는 고기 굽는 것을 맡길 수 없어서 손수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심조차 믿지 못 하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분은 다름아닌 바로 주인아저씨... 우리에게 숯을 준비해주시고 가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주위를 배회하며 맴돌고 계셨던 것. 지글지글 스테이크가 구워지며 고기 기름이 숯에 떨어질 때마다 숯이 활활 타 불길이 치솟자 잽싸게 오시더니 숯을 덮어 불길을 낯추는 것이 아닌가. 이러기를 몇 차례... 우리는 아저씨가 하는 방법을 배워 불길이 번지면 다시 낮추고 하는 것에 익숙해지자 비로소 안심을 한 주인 아저씨가 집 안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아저씨에게 배운 비법에 따라 은근한 불에서 스테이크를 굽는데 걸린 시간은 20분. 아하~~ 은근한 불에서 구워야 하는구나...
이렇게 심은 나를 믿지 못 하고, 아저씨는 우리들을 믿지 못 하고...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구운 스테이크 맛은 과연 어땠을까? 자자에서처럼 심의 현란한 레몬 샤워와 커팅 식을 기다린 후에야 비로소 한 점씩 받아 먹는 우리들. 한 입 먹는 순간 우리의 눈은 일제히 환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거 자자에서 먹은 것보다 훨씬 더 맛있잖아...”
“그러게... 입 안에서 살살 녹네. 정말 티본 장난이 아니다.”
“아무래도 티본스테이크를 실컷 먹으러 다시 토스카나에 와야 할 것 같아.”
20박 22일 이탈리아 여행 중 최고의 만찬은 단연코 이날의 요리다. 토스카나산 와인에 살살 녹았던 티본 스테이크, 거기다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까지...
서쪽의 노을, 동쪽의 해를 다 담은 토스카나 농가 민박
일몰과 일출에 유난히 집착하는 나는 토스카나에서의 일출과 일몰도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숙소 주인에게 물었다.
“혹시 근처에 일몰을 보기 좋은 곳이 있을까요?”
주인은 미소 지으며 짧게 대답한다.
“그냥 여기서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일출은요?”
이번에도 주인의 답변은 간결하다.
“여기에서 일몰과 일출을 다 볼 수 있어요.”
‘여기에서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다고?’ 반신반의한 이 말을 온전히 이해한 건 다음 날이었다. 우리가 묵은 농가 민박은 작은 둔덕 위에 자리한, 사방이 탁 트인 곳이었다. 서쪽 지평선 너머로 해가 스러지고, 동쪽 지평선 위로 해가 피어오른다. 이곳은 말 그대로 하루의 시작과 끝을 모두 품은 자리였다.
빠르게 짐을 풀고 우리는 집 앞 작은 연못 앞에 섰다. 물 위에는 거위들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그 너머로 해가 서쪽 지평선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하늘은 주황에서 자주빛으로 변했고, 올리브 나무들은 고요한 그림자가 되어 서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그 순간을 바라보았다. 토스카나가 왜 ‘쉼’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그 일몰이 답을 주고 있었다.
이튿날 새벽, 알람 소리에 눈을 부비며 잠을 깬 우리들은 외투로 온몸을 무장한 채 포도밭 너머 동쪽 하늘에서 서서히 밝아오는 해를 기다린다. 포도 지주 사이로 부드러운 빛이 흘렀다. 햇살은 서늘한 공기를 밀어내며 하루의 첫 색을 채워 넣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솟아올랐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아쉬움이 올라왔다. 왜 이곳에서 하루만 보내기로 했을까? 못내 아쉽기만 할 뿐이다.
같은 자리에서 하루의 마지막 색과 첫 빛을 이어 보는 경험—그것만으로도 이 숙소의 가치는 충분하다. 실내 벽난로가 없는 게 뭐가 문제인가? 이 숙소를 떠나며 주인에게 김홍도 그림이 담긴 부채를 선물로 드리는 것으로 나의 무례함에 대한 사과의 마음을 대신한다.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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