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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이래서 친퀘테레, 친퀘테레 하는구나

여기 이탈리아 맞아? / 친퀘테레(베르나차, 마나롤라)

by Joanna

같이, 때론 혼자 이탈리아 ✈ 외국어를 몰라도 당당한 중년의 이탈리아 여행법

여기 이탈리아 맞아? / 베르나차, 마나롤라(친퀘테레_ 이탈리아 북서부)



겨울,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베르나차


몬테로소 알 마레를 뒤로 하고 기차를 타고 5분여를 달려 베르나차에 도착한다. 기차역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서자 빨래가 널려 있는 집들이 내 시선을 사로 잡는다. 여름의 베르나차는 밀려다닐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라고 하는데, 1월의 베르나차는 테라스에 빨래들이 널려 있는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작은 어촌 마을로 나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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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꼭대기에 보이는 탑은 뭐지?”

“저 위에 올라가면 베르나차가 한 눈에 다 보이겠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탑을 향해 길을 오른다. 그런데 오르는 길이 이상하다. 이게 올라가는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느 지점에 가면 비대가 설치되어 있다. 마치 공사판 한 가운데를 지나는 듯...

어라~~그런데 갑자기 매표소가 나타난다. 알고 보니 우리가 가고자 한 목적지는 바로 도리아 성. 해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지은 성으로, 성 꼭대기에는 벨포르테 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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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1_135357.jpg 도리아 성에서 바라본 베르나차 마을 전경


도리아 성에 오르자 베르나차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항구 앞 마을의 중앙에는 산타 마르게리타 디 안티오키아 성당을 중심으로 알록달록 파스텔톤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테라스마다 빨래들이 바람에 살랑 살랑 나부끼는 현지인의 삶의 모습이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낡고 소박한 이런 장면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또한 나에게 베르나차는 마냥 멍 때리며 앉아 있고 싶은 곳이다. 도리아 성의 한 켠에 자리잡고 앉아 리구리아해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하루종일 앉아 있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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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나의 유럽여행의 최애 장소인 두브로브니크 구항구의 빨간 벤치가 생각나는 곳이기도 하다. 두브로브니크에 머물며 일몰 즈음에는 꼭 그곳에서 한참을 앉아 아드리아해의 일몰을 감상하던 곳인데... 베르나차에서 그 감성을 다시 느끼게 될 줄이야...

두브로브니크의 구항구에서는 나 자신과의 대화를 했다면... 이곳 베르나차에서는 이탈이아에 와서 처음으로 추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베르나차의 도리아 성을 감싸고 있는 편안한 바다가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하는 힘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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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쌓인 낡은 집과 그 집들을 둘러싼 포도밭과 마을을 감싸고 있는 리구리아해는 ‘와아~~’ 하는 감탄사를 자아내는 화려함은 없지만, 잔잔하게 서서히 내 안에 스며드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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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의 일몰로 물드는 마나놀라


친퀘 테레, 즉 다섯 마을 중 한 곳만 방문한다면 모두가 만장일치로 말하는 ‘마나놀라’. 파스텔의 형형색색의 집들이 바다로 흘러내릴 듯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친퀘테레 하면 제일 먼저 랜드마크처럼 대표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마나롤라다. 내가 친퀘 테레를 이번 여행지에 포함시킨 이유이기도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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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곳 마나롤라를 찾은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어서이다. 그래서인지 형형색색의 쨍한 파스텔톤의 집들을 감상할 줄 알았던 기대와는 달리 내 눈 앞에 펼쳐진 마나놀라는 석양의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파스텔톤의 집들로 화려함을 선보인 부라노 섬이 20대의 발랄함으로 다가왔다면, 석양에 찾은 이곳 마나롤라는 파스텔톤의 발랄함 대신 중년의 중후한 황금빛 이미지로 다가왔다. 태양빛에 따라 형형색색의 파스텔톤으로 수놓기도 하고, 이렇게 일몰에는 차분한 황금빛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일몰까지는 약간의 여유시간이 있어 일몰 스폿 반대편 마을 쪽으로 올라가본다. 어느 순간 바다와 마주한 절벽 위 집 앞에 다다른다. 집 앞에는 폭이 채 1미터도 안 되는 작은 골목길이 나 있으며 그곳엔 석양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벤치가 있다. 그리고 그 벤치에는 동네 할아버지가 여유롭게 앉아 지는 석양을 바라보고 계시다. 우리도 그 옆에 살포시 앉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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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시간이 가까워지자 항구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사람들이 일몰을 감상하기 위해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도 서둘러 사람들 대열에 동참한다. 그리고 드디어 자리를 잡고 일몰을 감상한다. 일몰의 아름다움에 말문이 서서히 잦아드는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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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식탐이 불러온 패착


마나롤라는 매년 특별한 행사를 여는데 바로 12월 8일부터 1월 말까지 마을을 감싸고 있는 포도밭에 1만 5천개의 등으로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을 장식한다고 한다. 1월에 마나놀라를 방문한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절경이기도 하다. 일몰 못지 않게 마나롤라의 야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일부러 피렌체로 넘어가는 기차 시간을 늦게 잡아놨는데... 우리는 마나롤라의 야경 감상을 포기하기로 합의한다. 그 이유인즉 전날 먹은 피렌체에서의 티본스테이크 맛에 반한 먹깨비들인 우리가 마나놀라의 크리스마스 트리 야경 감상 대신 기차표를 바꿔서라도 일찍 피렌체로 가서 티본 스테이크를 먹자고 합의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깨비들의 야심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우리의 기차표는 할인티켓으로 변경 불가 티켓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들은 피렌체에서의 티본스테이크를 먹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마나놀라에서의 포도밭 크리스마스 트리 야경 감상 둘 다 놓치고 만다.

20240111_154643.jpg 이 포도밭이 밤이 되면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된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마나놀라에서의 포도밭 크리스마스 트리를 비롯해 절벽에 빼곡이 있는 집집마다 새어나오는 은은한 불빛을 담은 야경의 아름다움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먹깨비의 식탐이 때로는 여행에서의 중요한 한 장면을 놓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어느 책에서 친퀘 테레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밤이 오는 순간이라고 적은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떠들썩 하던 관광객들이 모두 떠나고 오로지 파도소리와 달빛, 그리고 집집마다 작은 불빛이 켜지는 시간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쉬운 친퀘테레이다.


하지만 괜찮다. 이것이 바로 친퀘테레를 다시 찾아야 하는 이유로 여행 목록에 다시 올리면 되니까.

IMG_3927.JPEG 마나롤라 기차역에서 바라본 일몰 후의 바다 모습.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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