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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발사믹 식초 하나 사러 정말 모데나에 간 거야?

여기 이탈리아 맞아? / 모데나(북부 이탈리아)

by Joanna

같이, 때론 혼자 이탈리아 ✈ 외국어를 몰라도 당당한 중년의 이탈리아 여행법

여기 이탈리아 맞아? / 모데나(북부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호객 행위 단단히 당한 알라~


심의 쇼핑리스트 중 첫째가 막스마라 코트라면, 두 번째는 발사믹 식초다. 우리가 발사믹 식초의 본고장인 모데나를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모데나에서의 가이드는 심이다.

우리는 모데나 구시가지와 인접한 대형 주차장인 Parcheggio del Centro에 주차한다. 이곳 주차장은 대형 운동장 지하에 위치해 있어 주차 공간이 매우 넓을 뿐 아니라 구시가지와도 매우 가까워 짧은 시간 모데나의 구시가지를 방문하기에 최적의 위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20240109_131955.jpg 운동장 지하에 위치한 대형 주차장. 모데나 구시가지와 매우 가까워요.


가이드 심의 안내에 따라 졸래졸래 따라가는 나의 모습을 지켜본 추가 우리의 모습을 중계하듯 영상에 담는다. “발사믹 식초를 사겠다는 일념으로 빠른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두 여자를 보십시오... 이 모습 어디서 많이 본 듯 한데요. 네 그렇네요. 막스마라 코트를 쟁취하겠다는 열정을 또 한 번 보는 듯 하네요.” ㅋㅋ



가이드 심이 우리를 이끌고 도착한 곳은 주세페 주스티 부티크(Giuseppe Giusti). 모데나에서도 전통 있는 브랜드(1605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함.)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다. 주세페 주스티는 모데나 대성당이 마주 보이는 그란데 광장에 위치해 있다. 상점이 매우 고급스럽다. 우리가 들어서자 종업원이 다가와 발사믹 식초에 관해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하지만 직원의 설명 중 90% 이상은 알아듣지 못 한다. 그래도 괜찮다. 여기서 내가 알아들은 말은 지금 설명하고 있는 발사믹 식초가 몇 년도산 식초라는 정도이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왜냐... 결국 제품은 시식 후 나의 미각이 결정하는 것이니까...ㅋㅋ


모데나 발사믹 식초 매장 주세페 주스티 부티크


참 여기에서 모데나산 발사믹 식초에 관해 알아두면 유익한 정보를 공유하면 다음과 같다.

D.O.P. 인증이 있는 발사믹 식초는 한 마디로 고급 버전이다. 전통 방식대로 숙성시킨 모데나와 레지오 에밀리아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발사믹 식초들에만 이 인증 마크가 붙는다. 또한 모든 D.O.P. 인증 발사믹 식초는 1987년에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 조르젯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가 디자인한 100ml 용량의 공식 D.O.P. 병에만 병입이 가능하며, 병입할 때 일련번호가 부여되어 그 진위성을 보장받는다고 한다. 최소 10년 이상의 제품으로 발사믹 식초의 명품이라고 볼 수 있다.

D.O.P. 인증 제품보다는 조금 저렴한 주스티의 발사믹 식초로 I.G.P. 인증을 받은 제품이 있는데, 퀄리티와 용도에 따라 주스티가 1800-1900년대에서 수상한 메달 중 가장 의미 있는 상들을 1-5메달까지 나열한 주스티의 플래그십 제품이다. 둘 다 먹어본 극히 주관적 견해는 가성비 면에서는 I.G.P. 제품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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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발사믹 식초가 D.O.P. 인증의 20년산. 오른쪽 발사믹 식초가 4메달을 받은 I.G.P. 이것은 우리가 산 제품들임.


직원의 상술이 대단하다. 테이스팅 제품 중 가장 저렴한 것부터 시작해 10년, 12년, 20년 등의 순서로 고가의 제품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데 정말 오래될 수록 더 깊은 맛이 났다. 심은 직원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이왕 구입하는 거 D.O.P. 인증의 20년산을 사라고 부추긴다. 자기도 친정 엄마에게 20년산을 선물하겠다고 하면서... 오래된 발사믹은 약이 된다는 등의 훈수를 열심히 두면서... 심의 상술은 직원보다 더 대단하다.~~ㅋㅋ

결국 막스마라 코트에 이어 홀라당 넘어가고 마는 나는 20년산을 두 개나 산다. 나무장식장이 포함되어 있어 귀국 때 짐 무게가 조금 걱정되기는 했으나 심의 호객행위에 또한번 홀라당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경악할 일이 벌어진다. 나를 부추기며 심 자신도 비싼 20년산 D.O.P. 제품 두 개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인 I.G.P. 제품을 두 개 사겠다고 하던 심이 나의 계산이 끝나자 마자 돌변한다. 아무래도 비싼 D.O.P. 제품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I.G.P. 제품을 몇 개 더 사는게 좋을 것 같다며...ㅠㅠ 이거 뭐지? 추와 내가 일제히 심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 매장이랑 뭐 있는 거지? 호객행위로 나에게 비싼 제품을 사게 한 다음 본인은 홀라당 싼 제품으로 바꿔 버리다니... 이 가게랑 커미션을 주고 받기로 한 게 틀림없어.ㅋㅋ”


막스마라 코트에 이어 또한번 심의 호객행위에 넘어갔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때 구입을 안 했다면 오히려 후회할 뻔 했다. 언제 이런 정통 발사믹 식초를 먹어보랴... 언니에게 하나 선물하고 나머지 하나는 여행 후 1년 넘게 한 방울씩 아껴가며 먹었다. 먹을 때마다 이렇게 맛있는 줄 알았으면 몇 개 더 사 가지고 오는건데 하는 아쉬움을 느끼며...



모데나가 남긴 잔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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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9_124526.jpg 파바로티 영결식을 거행했다는 모데나 대성당. 모데나는 파바로티의 고향이기도 하다.


우리가 모데나에 머무른 시간은 고작 2시간. 그 중 한 시간은 발사믹 식초를 구입하는데 썼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시간은? 모데나 광장 한 켠에 위치한 카페테리아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데나의 잔상이 은은하게 내 안에 오랫동안 남아 있다.


처음 구시가지로 들어서자마자 마치 우리를 반기기라도 하듯 울려퍼졌던 성당의 은은한 종소리가 내 귀에 남아 있다.

성당 종소리의 원천을 찾기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 파아란 하늘과 나무 사이로 퍼지듯 비추던 햇살의 따스함이 촉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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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광장 한 켠에 서 있는 장(場)이 소소한 정(情)이란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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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믹 식초를 구입하기 위해 간 그란데 광장 한 켠에서 분가루를 열심히 발라가며 열정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악사의 모습이 내 눈과 귀에 남아 있다.


모데나 그란데광장을 바이올린 소리로 아름답게 만들어준 바이올린 연주자


유난히 건물 사이 사이 회랑이 많았던 것도 인상적이었으며, 주황빛과 노란빛이 조화를 이룬 건물의 외벽도 따스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모데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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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1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마신 노천카페에서의 짧은 쉼이 모데나에서의 가장 잊지 못할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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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2781.JPEG 혼자 여행온 듯 각자 앉아서 마시는 커피?? 진실은 노랑과 주황의 벽이 너무 예뻐 잠시 포즈를 잡은 것임.ㅋㅋ


발사믹 식초를 사기 위해 잠깐 들른 모데나에서 묘한 매력을 발견한다. 기대하지 않은 이탈리아의 작은 소도시인 모데나가 나에게 남긴 잔상들이다.


이탈리아 소도시 여행 모데나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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