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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Feb 28. 2024

영화번역가 황석희 강연 들으러 우리동네 스타필드에

옛 친구랑 인사하고 사인받으러


과거에 영화번역은 이미도였던 시대가 있었다. 모르는 독자를 위해 사족을 달자면 영화번역가 이미도는 남자다. 지금은 황석희가 영화번역의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영화번역가 황석희는 나랑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99학번 동기다.


둘 다 1년 재수하고 99학번이 되었다. 황석희는 79년생이라 동기 중 석희 형 석희 오빠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나는 빠른 80년생이라 모두 다함아라고 불렀다. 작년에 국가적으로 만 나이로 통일을 했는데 나는 좋다. 1980년 1월생인 내가 올해 2024년 마흔넷 인 만 나이를 쓰는 게 계산하기 깔끔하니 좋다.



오늘 황석희가 스타필드 수원 별마당도서관에 강연하러 왔다. 오늘 황석희가 강연 온다고 휴무 스케줄을 바꿀 때는 어제가 사실상 퇴사 전 마지막 근무일일 줄은 몰랐다. 오늘이 휴무일이고 내일이 하루 안 썼던 연차가 되었다.


조울증으로 방황하느라 과 밖에서 돌기는 했지만, 당시 한 학년에 30명인 과라 다들 친해서 그때는 다 친구였다. 그때 친구였다고 지금 친구는 아니다. 여전히 친구이기에 옛 친구 황석희는 너무 잘 되었다.


지금 내 기억으로는 과에서 제일 공부를 안 하고 겉돌았던 것은 나였고 그다음은 황석희였다. 나는 대학에서 공부를 아예 안 했고, 황석희는 기본적으로 공부는 했을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우리 동기 중 가장 잘 나가는 인물은 황석희고, 모르긴 몰라도 제일 안 나가는 인물은 나일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된 짝사랑으로 끝난 첫사랑의 실패와 조울증으로 방황을 했고, 황석희는 과 공부보다 음악 스포츠 동아리 활동에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머나먼 길 떠나는 사람처럼 마치 배웅 나온 것처럼
다시 돌아올 것 같은 그대 사라질 때까지 보네
한 번만 더 안아보고 싶었지 내 가슴이 익숙한 그대
안녕이라 하지 않은 이유 그댄 알고 있나요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어요 모든 것을 지금 그대로
갑자기 그대 돌아온대도 전혀 낯설지 않도록
언제 어디라도 내겐 좋아요 혹시 나를 찾아 준다면
내가 지쳐 변하지 않기를 내 자신에게 부탁해
이렇게 해야 견딜 수 있을 거야 영영 떠나갔다 믿으면
내가 포기해야 하는 남은 날들이 너무 막막해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어요 모든 것을 지금 그대로
갑자기 그대 돌아온대도 전혀 낯설지 않도록
언제 어디라도 내겐 좋아요 혹시 나를 찾아 준다면
내가 지쳐 변하지 않기를 내 자신에게 부탁해
아무도 날 말리지 않을 거예요 잊지 못할 걸 알기에
그냥 기다리며 살아가도록 내내 꿈꾸듯 살도록
그대 혹시 다른 사람 만나면 내가 알 수 없게 해 주길
그대 행복 빌어주는 나의 처량한 모습 두려워

- 윤종신, 배웅


99학번 동기들과 노래방을 갔었다. 황석희는 노래를 잘 불렀다. 기타도 잘 쳤다. 노래방에서 나는 크라잉넛의 <말달리자>와 윤종신의 <배웅>을 불렀고 그 자리에 황석희가 있었다.


사범대학 학생회에서는 농촌봉사활동 농활이 아닌 교육봉사활동 교활을 갔다. 농촌 마을에 가서, 해가 없을 때는 농사를 돕고, 해가 있을 때는 마을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했다. 1학년 교활 때 우리 과에서 나랑 황석희가 같이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육활동이라 피 끓는 청춘들에게 음주가 금지되었다. 마지막날 마을잔치 하루만 음주가무를 했다. 나는 캔맥주 한 캔을 마시고 알딸딸한 상태에서 소주 한 병을 한 번에 병나발 불고 쓰러졌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술 주사를 했다.


"해와 달과 별이 모두 빛을 잃고 떨어져도 세상엔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어."


내 기억 속 그때 그 자리에 황석희가 있었다. 아직도 기억하는지는 모르겠다.



황석희가 우리동네 스타필드에 강연을 왔다. 나는 강연을 들으며 스마트폰으로 오늘의 글을 쓴다. 백수이기 때문에 집에 아내와 아들이 있는 시간에는 더더욱 아내와 아들에 집중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내가 요리 배우러 가고 아들이 어린이집에 갔을 때 글을 써야 한다.



강연이 끝나고 사인을 받으러 줄을 섰다. 옛 친구가 우리동네 스타필드에 온다고 해서 인사하고 사인받으러 간 것이다. 요즘 종이책을 거의 안 사고 밀리의 서재로 보는데, 친구 책 나왔다고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해 모셔두고 있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집이 요 근처라."

"요즘 어떻게 지내?"

"그냥 그렇게 지내."

"너한테 사인을 다 하네."


그리고 나는 자리를 떴고, 옛 친구 영화번역가 황석희는 사인받으러 꼬리에 꼬리를 문 사람들에게 사인을 이어 갔다.


강연 시작 전부터 강연 공간인 별마당도서관을 맴도는 모녀가 있었는데 처음부터 아내와 딸인 것 같았다. 강연 끝나고 아빠를 부르는 것을 보니 내 촉이 맞았다.



나도 책을 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아내 에미마와 아들 요한이가 강연장 근처에서 놀다가, 강연 끝나고 질문받고 사인을 할 때면 아들 요한이가 아빠를 부르며 달려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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