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함 Jul 15. 2024

나름 노력은 했지만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스무 살 조울증이 발병하고, 4대보험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한 기간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조울증으로 방황하다 13년 반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서른셋에 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전문강사로 1년 3개월 동안 첫 직장생활을 했다. 영어 수업 하고, 영어과 업무를 보는, 비정규직 영어교사였다. 1학년 여선생님이 예뻤다. 소녀가 예뻐서 조울증에 걸린 이후로, 내 눈에 예쁜 여자가 들어올 때마다 조울증이 재발했다. 마흔 하나에 동생 회사 매니저로 2년 5개월 동안 두 번째 직장생활을 했다. 그리고 작년 12월 올해 1월 3월 3개월 동안 사회복지사로 세 번째 직장생활을 했다. 덧셈을 해보니 4년에서 1개월이 모자란다.


사이사이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할 때도 있었고.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와 4대 보험을 받는 경제생활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 의미 있는 일을 하던 때도 있었다. 어머니께서 명예퇴직 하시고 카페 하실 때 옆에 있었다. 아버지께서 정년퇴직 하고 함께 귀농교육을 받고 왕대추농장을 했다. 사회복지사 2급과 한국어교원 2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국비지원 직업훈련으로 출판편집디자인 과정을 이수했다. 어쩌다 사회를 이탈했고, 다시 사회로 돌아오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다.  쓰는 작가를 꿈꾸지만, 글이 돈이 될 때까지 돈 벌 직장을 찾기 위해 나름의 노력은 했다.


동생 회사에서 직원이 필요해서 나를 부른 것만은 아니었다. 동생은 회사가 잘 되면 나에게 일자리를 주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차에 회사를 확장하게 되었고 나를 불렀다. 회사에서 나는 매니저였는데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몰랐다. 동생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더라면 일이 더 쉬웠을 것이다. 동생은 나를 위해 나를 불렀지만, 같이 일해 보니 동생도 내가 도움이 되고 의지가 되었나 보다. 나는 돈 안 벌다 돈을 버니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힘이 들었다. 외부의 문제라기보다 나 자신의 문제였다. 생각하기 나름인데 이미 한계상황을 훌쩍 넘었다. 퇴근하고 다음날 출근을 위해 집에 가는 대신, 부산 해운대에 갔고, 다음날 출근하지 않았다.


퇴사 전에는 동생 회사 말고 집 근처에 아무 회사라도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퇴사 시점에 나는 그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실업급여나 국민취업지원제도의 도움을 받아, 구직활동을 하거나 직업훈련을 받으며, 글을 쓰기로 했다. 실업급여는 수급 자격이 되지 않았고, 직업훈련은 스케줄이 맞지 않았다. 글을 쓰겠다던 나는 글을 쓰기 위한 환경을 만들며 놀았다. 글을 쓰지 않으니 돈을 벌기를 바라는 주변의 무언의 압박을 이길 수 없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사연이 있는 삶을 살아온 특수한 경우라, 어차피 일을 하기 어려워졌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에 몰입했라면 무언의 외부의 압박을 이길 수 있었다. 내가 알아서 교육이나 취업을 알아본 것도, 그곳에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변에서 말은 안 하지만 나에게 바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못해서였다.


내가 모든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과 회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일을 계속하기 위해 최소한의 경력을 쌓아야 하는데, 나를 오라는 데가 있다. 일단 들어가서 최소한의 시간을 보내면 잘할 자신이 있는데 오라는 데가 없다.


고용센터에서 알선을 받아 구직활동을 하며 글을 쓰고 있다. 일할 생각은 없는데, 돈은 벌고 싶다. 소득이 없으면 통장 잔고가 여유가 있어도 소비심리가 얼어붙는다.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 생활활동이 줄어든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만, 돈을 벌다 안 버는 자체가 문제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 때는 돈을 버니까 눈을 감았던 것이 돈을 안 벌 때는 보인다. 그게 문제의 원인이다. 돈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아닌데, 돈이 있을 때는 문제가 문제가 아닌 돈으로 해결되는 일상생활의 문제가 있다. 돈이 아주 많아도 그 많은 돈으로 인해 다른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도 돈벼락 한 번 맞아보았으면 좋겠다.


꿈을 좇으면서도 현실에 발을 디디려고 나름 노력은 했는데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

이전 06화 이력서를 내며 글 쓰는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