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속도
아침마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나오면 나는 일부러 속도를 늦춘다.
이유는 공익적인 규범을 지키는것이 아닌 개인적으로 불순한 기대감이 있기때문이다.
제한속도보다 더 느리게, 다른 차들도 이 골목을 조심히 지나가길 바란다. 내 아이가 걸어 다닐 길목이니.
이 길 건너편에는 외국인학교와 사립학교, 공립학교들이 줄지어 있다. 아이들을 위해 줄지어 늘어선 고급차 행렬은 일종의 위압감마저 준다. 이 동네 아이들은 자동차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차가 있어도 자기들 마음대로 걷는다. 차들은 경적조차 울리지 않고 멈춰 서서 기다려준다. 돈이 아이들의 안전을 담보하는 듯한 풍경 속에서 아이들은 고급차 그림자에 겹쳐 보호받으며 천천히, 여유롭게, 주저하지 않고 걸어간다.
그러나 내가 출근해 도착하는 동네의 골목은 조금 다르다. 가파른 언덕과 좁은 다세대 골목을 지난다. 반지하에서 도로로 뛰쳐나오는 아이들을 본다. 깜빡이 켜고 천천히 지나가지만, 다른 차들은 나를 신경질적으로 추월해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등교하던 아이들은 뒤에서 차소리만 들려도 반사적으로 돌벽에 바짝 붙어 멈춘다. 뒤돌아볼 필요도 없다. 몸에 밴 생존의 자세.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배웠다. 차가 멈추지 않는 동네에서 스스로 벽이 되어야 살아남는 법을.
나는 매일 아침 이 두 장면을 동시에 본다. 차가 아이를 기다려주는 동네와, 아이가 차를 기다려야 하는 동네. 이미 아이들의 몸에 밴 태도 속에서 삶의 격차는 너무도 분명히 드러나 있다
등굣길에는 여러 풍경이 겹친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뒤뚱거리며 걷는 할머니와 손자. 기형적으로 휘어버린 다리와 굽어진 허리. 내 눈에는 할머니의 힘듦이 빤히 보인다. 하지만 어린 손자는 할머니의 다리를 저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모른다. 슈퍼마리오처럼 제자리 점프를 하며 쉴 새 없이 재잘댄다. 마스크를 벗지 않은 얼굴로 묵묵히 걷는 고학년 아이들. 보풀 난 검은 마스크를 눌러쓰고도 여전히 학교로 향하는 그 아이들의 뒷모습. 눈을 감아도 보이는 웃음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배어 있는 장면들이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로 향한다.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친구들도 있다. 이런 장면들을 매일 보며 나는 묻는다. 왜 어떤 아이들은 길 위에서도 여유롭지? 왜 또 어떤 아이들은 늘 쫓기듯 몸을 붙이며 걸어야 하지? 이 격차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말하는 통계가 아니라 매일 내 눈앞에 나타나는 뒷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세상에 눌려 있지만 끝내 버텨내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아이들의 삶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아침마다 “엄마 오늘은 회사 가지 말고 나랑 있어”라며 매달리는 내 아이 덕분에 나는 늘 돌아가는 길에서 이 풍경을 본다. 그러니 이 책은 아이 덕분에 나온 셈이다. 덕분인지 탓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CCTV가 없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당신은 시속 30km를 지키시나요?
속도가 너무 느린것 같다고 투덜거린적은 없으신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지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