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마다 말 대신 숨을 고른다

그 아이의 살아남는 방식2

by 다나




초중고생 자살 사망자 수가 수백명이란 동향을 보았다.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현장에 있는 나는 오히려 집계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복지실에 모인 아이들이 " 재 어제도 그거 했데!" 수근대는 부류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분류해보자면 전조증상처럼 자해가 유행처럼 퍼지는 걸 본다.


친구가 SNS에 올린 팔 사진을 보고 ‘나도 해봤다’며 따라 하기도 한다. 때로는 타이레놀 한 통을 삼켜보는 카더라식 유행에도 아이들은 쉽게 동참한다. 한 아이는 미지함과 충동성이 매우 높았다. 팔에 자국이 선명히 남은 채 극심한 공포와 혼란 속에서 “샘, 몸에서 이상한 게 나왔어요.” 울먹이며 달려온 적도 있다.

미지함은 과연 거기에서 멈출까? 어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다.



“샘! 가로 말고 세로로 하면 어떻게 되요?"

아무것도 안하는게 제일 좋다. 사실 그 방향으로 자극을 주면 동맥을 건드릴 수 있다. 그래 위험한 호기심이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는 충동이 지나가면 대부분 엄청난 두려움과 후회를 느끼게 된다. 살려달라 외치지만 그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위험이 멱살잡고 앞으로 달려 내동댕이 친다. 이런 현상을 Acting Out이라 부르는데 감정을 말로 전달하지 못할 때 행동으로 폭발시키는 것이다. 청소년 자해는 이 패턴의 전형을 따른다.


어른들의 바람과는 달리 보통의 자해는 단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중독처럼 반복된다.

손목에서 다른 부위로 옮겨가며 점점 위험한 방식으로 변해가기도 한다. 그다음에는 생명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끔찍한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영화 속처럼 비장한 각오의 선택이 아니다. 술에 취해 충전기 줄을 장난처럼 감았다 풀었다 하다 보면 단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이 온다. 비극은 그렇게 생각보다 사소한 물건에서 시작되고 성장기 아이들의 정서는 찰나에 터진다.


매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도 나는 손이 떨리고, 무섭다. 그렇다고 나는 “그건 하나님도 슬퍼하실 거야" 같은 말로 아이들을 죄책감에 몰아넣고 싶지도 않다. 반대로 “너와 함께한다” 같은 뻔한 위로가 아이들을 뒤흔들어 격분시킬 수 있음을 안다. 그래서 늘 되묻는다.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내가 들여다보는건 지능

아이들의 정서는 불안과 호기심, 두려움이 뒤섞인 채 위험과 장난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말을 걸어 도움의 길을 열 수 있다면, 어설픈 위로나 충고를 건내지 않는다. 우선 나는 그 아이의 지능을 들여다본다. 여기서 지능이란 단순한 공부머리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다. 기억력과 상황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능력, 그리고 삶에서 플랜 A가 막혔을 때 플랜 B나 C로 기꺼이 갈 수 있는 유연함 같은 것들을 포함하는 정서지능을 살핀다.


정서지능이 낮은 아이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칼을 드는 방식으로 도망친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도 정서 조절 능력이 낮은 청소년일수록 자기파괴적 행동으로 감정을 해소하려는 경향이 높다고 보고된 바 있다. 이것은 똑같이 날것을 먹어도 혼자만 배탈 나는 아이처럼 유난히 취약해지는 패턴이 되는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안타깝다. 정서적 유연성은 지금 당장 키워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저 능력은 아이들이 사춘기에 도달하기 전 가정과 사회가 지능을 넓힐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때 넓어진다. 지식의 주입으로 생기는것이 아니다. 자율적으로 놀이를 만들고 또래와 부딪히며 갈등을 없애는 경험. 운동·예체능에서 벌어지는 안전한 실패와 짧은 성공을 경험하는 과정. 그 모든 것이 아이의 정서 지능을 넓히는 밑거름이 된다.


자연스레 나는 한국 사회의 조기교육 풍경을 떠올린다. 영어유치원에서 한국말도 서툰 아이가 R 발음을 엄마보다 유창하게 하는것을 보며 역시 일찍 시키길 잘했다고 박수치던 친구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밀집한 내가 있는 학군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강남으로 분류되는 지역의 7세고시를 떠올리는 것이다. 놀이터에 놀 시간에 집에 와서는 과제에 파묻히는 모습. 미취학 아동에게 두 자리 수 연산을 시키며 "다른친구들보다 늦게시작해서 좀 힘들겠네요" 라며 부모를 압박하는 학원 원장의 얼굴들.


저소득층 아이들이 부모의 무신경 속에 방치된다면 부유층 아이들은 부모의 과도한 개입 속에 자율성을 빼앗긴다. 결국 두 그룹 모두 정서적 돌파구의 결핍을 겪는다. 솔직히 그런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사춘기라는 부모가 막아줄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파도를 만났을 때, 그 아이에게 플랜 A가 무너진다면 플랜 B로 과감히 틀 수 있는 힘이 있을까? 두려움에 벌벌 떨다 자신을 다치게 하는 방향으로 밀려가는 것이 더 쉬운 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비극이 벌어진다. 물론 저소득층 아이들이 겪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돌파구도 슬프게 이해한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 역시 또 다른 방식의 돌파구의 결핍을 겪는다.



내가 버티는 힘

죽음의 그림자를 본 뒤에도 이놈의 아이들은 느리고 엉성하게 다음 플랜을 찾아낸다. 그때의 가슴에서 내려가는 짜릿한 뚫어뻥의 해방감을 공유할 수 없어 안타깝다. 내게 하도 정서적유연성을 설명들은 어떤 친구는 “샘, 플랜B는 뭐예요? 수학 공식이에요?”라며 묻기도 했다.


그 서툰 농담에 나도 웃었다.현장에서 내가 버티는 힘은 결국 아이들의 정서적 지능과 가능성에 대한 믿음에서 온다. 하지만 사실 나를 버티게 한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아이들 곁에서 내가 스스로를 들여다본 경험, 그 과정에서 나 역시 플랜 B를 찾아내야 했던 순간들이 수많은 내 바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플랜B를 찾는 게 어렵다고? 괜찮아 나도 맨날 찾아 헤매. 같이 해보자.







어른인 우리에게 남는 질문

저소득층의 아이들은 방치 속에서, 부유층의 아이들은 과도한 개입 속에서 자율성을 잃어갑니다. 결국 모두 정서적 유연성을 잃은 채, 플랜 A가 막혔을 때 플랜 B로 방향을 틀지 못하고 극단으로 향하곤 하지요.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의 플랜 B는 무엇입니까?
퇴사 후 카페 창업은 제외하는걸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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