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의 살아남는 방식

"팔을 그어야만 느껴지는게 있어요." 민준이는 그렇게 말했다.

by 다나



“놀라지 않을게. 엄마처럼 울지도 않을게.
니가 얼마나 힘든지, 샘이 한 번은 확인하고 넘어가야 하잖아.”


아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무릎 뒤를 보여주었다.
무릎을 지나 허벅지, 팔과 옆구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피부 곳곳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불규칙 결을 이루며 남아 있었다.


가장 많이 닿은 팔은 마치 불에 그을린 듯 보였다.
피부 위에는 상처가 나고 아물기를 반복한 흔적들이 결을 이루며 뒤엉켜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열에 달궈졌다가 식은 듯한 울퉁불퉁한 질감이었다.
겉은 단단해 보였지만, 그 아래에는 오래된 통증이 여전히 숨 쉬고 있었다.

그걸 보호자인 엄마가 한 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냥 예민해서 그래요.”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이 말은 아이의 통증을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어른이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을 아이의 기질 탓으로 돌려놓는 문장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 말 아래에는 울음도, 분노도, 감정의 결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옷을 여미는 아이의 손끝은 무심했지만, 눈동자 속에는 선생님이 아무리 이래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잘못된 방

자신을 해하려는 아이들을 나는 종종 만난다.

부모들은 큰일 날 뻔했다며 절박하게 호소하지만, 실제로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인 경우가 많다

극심한 고통에서는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강력한 진통 성분을 몸에서 스스로 만들어 뿜어낸다.

뇌 속에서는 엔돌핀이 폭발하듯 분비되며 그 순간 잠시 평온이 찾아와 고통에서 달아나는것 같지만 곧 또다시 불안이 덮쳐온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 긴장을 풀기 위해 몸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잘못된 해방을 시도한다. 그 짧은 이완의 순간이 반복되면 그것은 일종의 중독이 된다.


민준이는 이렇게 말했다.


“불안할 때 몸을 자극하면 마음이 나른하고 잠깐 고요해져요.
아무도 없는 풀밭 위에 누워 햇빛을 맞는 기분이 들어요.

나 혼자 돗자리 깔고 누운 느낌인데 공기가 피부에 안착하는 느낌까지 생생해요.”


그 평온은 뇌 속 내인성 오피오이드가 폭발적으로 분비되며 만드는 거짓 휴식이다. 고통 치환 메커니즘으로, 당장 느끼는 고통이 문제 상황이나 환경적 불안이 아니라 상처로 인한 신체적 고통이라고 인식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정신적 괴로움을 신체적 고통으로 치환해 견디려는 잘못된 방식이다.


민준이같은 경우엔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 아래,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는 방식으로 잘못된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더 깊은 고통을 반복하게 만들며 시간이 지나면서 중독적 성향으로 굳어졌다. 그 악순환은 아이 한 명의 의지로는 끊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개입이라는 단어를 쓴다. 민준이에겐 즉각적인 개입이 필요했다




낙인을 풀어야 지원이 닿는다

“아이의 우울이 깊고, 위험 신호가 반복되고 있어요. 의료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의사가 아니기에 진단은 할 수 없으나 생명에 위협이 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으니 병원에 입원을 시키거나 최소한 진료라도 보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익숙했다.

“우리 애가 예민해서 그래요. 병원은 좀... 학교에도 말하지 말아 주세요.”


보호자는 애가 예민해서 그렇다며 진료를 미루고, 선생님이 그냥 계속 만나만 달라는 부탁만 반복했다.


"학교에는 이야기하지 말아주세요. 낙인 찍히기 싫고, 개인적으로 해결할래요."


그 순간 나는 행정의 톱니가 얼마나 느려질지 직감했다. 학교와의 공조가 끊기면 의료·복지·심리 지원이 동시에 닿는 구조가 무너진다. 개인의 돈으로 감당하다보면 경제사정이 어려운 민준이의 가정에서 지속성이 얼마나 유지될지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아이의 안전망을 촘촘히 엮기 위해선, 어머니의 불안을 줄이고 함께 가야 한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 과정이 곧 서류보다 먼저 해야하는 복지였다.


나는 먼저 어머니가 느끼는 낙인의 두려움부터 꺼냈다.


"학교에 알린다고 해서 아이를 문제아로 보자는 게 아닙니다. 하루의 절반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선생님들이 민준이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돼야 해요. 그래야 외부 병원에서도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어요."
어머니는 처음엔 팔짱을 낀 채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이건 민준이나 어머님의 잘못이 아니라, 랜덤으로 누구나 놓일 수 있는 힘든 상황의 조기 신호예요" 거듭 말하자 그 팔짱이 조금은 느슨해졌다.


결국, 어머니는 ‘한달만’ 이라는 조건을 걸고 드림스타트와 복지관이 연계하는 지역 의료기관 연결에 동의했다. ‘한 달만’이라는 조건을 걸었을 때, 나는 그 한 달이 결코 짧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의료기관 접수와 복지관 서류, 내부 보고와 긴급회의까지, 각각의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리기까지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했다. 회의가 끝나고 지자체 선생님이 말했다.

“이 속도로 움직이는 건 흔치 않아요. 그런데 아이가 무너지기 전에 우리가 먼저 도착해봐요.”
그 말에, 그날 밤 내 머릿속에서는 민준이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거라는 공허한 눈과 팔목 위의 상처가 번갈아 떠올랐다.


교육청 위기지원팀에 연락해 학교-복지관-지자체기관 이 동시에 개입하는 긴급 사례 회의를 열었다. 행정 절차는 빠르게 움직였다. 민준이는 며칠 만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고 초기 약물치료와 미술치료를 함께 시작했다.


처음엔 붉고 날카로운 선만 그리던 아이가,
어느 날은 자신의 팔을 닮은 듯한 그림을,
또 다른 날은 무언가가 단절된 듯한 이미지만을 그렸다.

형태는 낯설고 강렬했지만, 그 안엔 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림을 보고 솔직히 순간 움찔했으나 그 완성도와 표현의 힘에 먼저 숨이 멎은것도 사실이였다.

혼자 보기 아까워 위기지원팀과 함께 사진을 보았다.
모두가 색감이 놀랍다고 했다.
기괴하면서도 묘하게 예술적인 힘이 있었다.
우리는 그 재능을 위험한 표현으로만 두지 않기 위해,
완전한 사춘기가 오기 전 그 감각을 살릴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그리고 메이크업 아티스트 체험을 연결해 주었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문제아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가능성이라는 역할을 건낼 수 있었다



칼 대신 색을 쥔 손

6년 뒤, 수지 아이라인을 내 눈에 그려주겠다며 나를 찾아온 민준이를 만났다.
"샘은 눈꼬리가 아웃라인으로 길게 열려있어서 수지보다 신민아처럼 그리는게 더 맞아요."
신민아라는 말에 애가 나를 좋게 봐주는구나 느끼며 어이없어 실소를 터뜨리니 그리던 손이 잠시 멈추더니, 민준이도 따라 웃었다.


“샘, 저 이번에 메이크업 대회에서 상도 받았어요. 수시로 넣은 과도 합격 기다리고 있고요.
알바로 돈도 벌어요. 언젠간 메이크업 말고도 스파 같은 것도 차려보고 싶어요.”


어린시절 내 눈앞에서 민준이는 오래된 흔적 위를 무심히 스치던 손끝이 전부였다
6년 뒤, 그 손끝이 이제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살피고, 색을 고르고, 선을 다듬는다.
같은 손이지만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 그냥 모른척하셨으면 저는 지금 없었을 거예요.”


그 말에 나는 알았다.

우리가 한 일은 구조가 아니라, 다시 살아보게 하는 복원의 출발이었다


만약 그때 민준이가 여전히 상처로 만든 가짜 평안 속에 머물렀다면 이 웃음은 없었을 것이다.

한 번 굳어지면 쉽게 끊기 힘든 중독이지만 뇌는 새로운 길을 언제든 만들 수 있다. 민준이는 치료와 지지, 그리고 색을 쥐게 된 손끝에서 얻는 성취감으로 그 고리를 끊어냈다. 자신을 아프게 괴롭히지 않는 것이야말로 스스로를 가장 단단하게 지키는 방법이라는 걸 민준이는 이제 안다.


그리고 민준이와 같은 친구들도 언젠가는 이 사실을 알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른인 우리에게 남는 질문

자신을 아프게 하는 행동은 죽음을 향한 시도가 아니라
버티기 위한 잘못된 생존 방식일 때가 많습니다.

만약 당신의 자녀가 자신을 해쳤다고 고백한다면,
당신의 첫마디는 무엇일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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