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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니 Dec 28. 2023

부모를 저버리는 중입니다.

원가족에 대하여

 나의 엄마는 홀어머니밑 6남매의 장남인 아빠와 결혼을 했다. 20세, 24세  매우 어린 나이에 만나 내가 태어난 후 뒤늦게 결혼을 했다. 시어머니였던 친할머니는 엄마를 몹시도 싫어했다. 어린 나와 동생에게도 서슴없이 엄마 흉을 보셨으며 지나치게 잔소리가 심하신 분이셨다.




 엄마는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온갖 고생과 식구들 뒷바라지를 하고 살았다. 처음엔 같이 고생했던 남편은 세월이 지나면서 아내의 대한 고마움은 없어졌다. 아빠는 자격지심이 심해 술만 먹으면 몇 시간이고 주정을 하며 집안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가는 사람이었다. 술을 먹지 않은 때에도 시도 때도 없이 버럭 하는 이상한 성격의 사람으로 변했다.




  사실 아빠 성격이 변했다기보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며 남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아내는 무시해 마땅하다 생각했으며 자녀들에겐 무관심했다.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 남에 대한 비판을 서슴없이 하는 못난 사람이기도 했다.




 어렸던 나는 늘 당하기만 하고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엄마를 사랑했기에 불쌍히 여겼고, 힘든 엄마에게 힘이 되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는 착한 딸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투정 한 번 제대로 부린 적 없는 딸이었으며,  매번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돌아가면서 구박을 받는 엄마가 가여워 엄마의 기쁨조를 자처하곤 했다.  웃긴 얘기, 엄마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만 골라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하고 예쁜 딸이었다.




 엄마가 불편해하는 사람은 다 싫었다. 친할머니는 미웠고 아빠는 무서웠고 엄마랑 맞지 않는 동생은 싫었다. 내 세상의 중심은 우리 엄마니까 엄마가 웃으면 좋았고 엄마가 아프면 나도 아팠다.




 두 살 어린 내 여동생은 소위 부모와 기질이 맞지 않은 이유로 냉대를 받으면서 자라왔다.  사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아빠는 여전히 무관심했고 엄마는 징징거린다는 둥 고집이 세다는 둥 갖은 이유를 들어 동생을 사랑해주지 않았다. 나도 부모에 물들어 동생을 보살펴 주지 못했고 무관심했다. 동생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저 어린아이였을 뿐인데.. 정서적 학대를 가하는 부모밑에서 그리고 자신의 곁은 한 번도 내주지 않은 언니옆에서 지독히도 외롭게 자랐다.




 하지만 부모는 자신이 사랑했다는 자식과 본인이 방치한 자식 모두에게 똑같이 자식의 의무만을 요구했을 뿐 자식이 내민 손을 말없이 잡아준 적이 없다. 살면서 몇 번 손 내민 적도 없는 자식들한테 말이다. 여전히 본인들의 삶이 피폐하고 힘들었다는 이유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기엔, 엄마는 부동산 투자로 일을 잔뜩 벌려놓기 바빴고, 아빠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생각과 기분 따위는 상관없는 존재 자체가 불편한 사람이었다.




 그런 부모는 자식의 결혼을 방치했고 그저 허울뿐인 혼주석에 자리 잡은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없었다. 내 부모는 두 딸의 결혼을 그냥 무상으로 시킨 것과 마친가지였으니, 본인이 사랑했다고 여겼던 딸은 딸대로 큰 충격에 혼란스러웠으며 사랑받지 못한 딸은 여전한 부모의 태도에 또 한 번 좌절할 뿐이었다.




 동생은 성인이 되고 마흔 가까이 되는 지금의 나이에도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이유를 모른다. 그래서 문득문득 차오르는 억울함과 사무치는 슬픔으로 여전히 힘들어할 때가 많다.




 나는 나대로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았고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그땐 몰랐다. 그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해야 마땅한 노력들이었다는 것을. 남들은 자식을 낳아 키우다 보면 그제야 부모의 마음을 깨닫는다고 했는데, 아이들을 키우면 키울수록 부모라면 이럴 수 없다는 게 나의 깨달음이었다. 부모는 우리에게 부모 의무를 다하지 않았지만 우린 흔히 말하는 자식 된 도리를 매번 충실히 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자식을 사랑하는데 이유란 필요 없다. 자식은 그냥 사랑받기에 충분한 존재임을 이 세상에 모든 부모는 알고 있을 텐데..  품어주고 아껴만 주기도 모자란 시간에 나의 부모는 본인들의 힘든 삶을 자식에게 전가하며 살았다. 그런 모습에 한 아이는 스스로 훌쩍 애늙은이가 되어 자랐고, 한 아이는 사랑받지 못해 지금도 시린 가슴 한쪽을 움켜쥐고 살고 있다.




 지난 4월부터 나와 동생은 부모와의 대화를 거부하면서 살고 있다. 자식이 원인이 아님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그들의 피해의식은 나의 착한 딸 콤플렉스를 마구마구 공격하기도 했다. 한동안은 부모를 미워한다는 죄책감에 잠들지 못했고 자책하며 많이 아팠었다.




 동생 또한 부모의 여전한 이기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동생의 절절한 호소와 눈물은 똑같은 변명과 상대에 대한 힐난으로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동생은 더 이상 어떠한 호소도 하지 못한 채 무력해졌고, 결국 자신이 숨시며 살기 위해 마음속에서 부모를 저버렸다.





  나는 지금 부모를 저버리는 중이다. 착한 딸로 부모와 살을 비비고 살아온 세월이 훨씬 길었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애증일까.. 말처럼 쉽게 마음이 정리되지 않지만 부모를 끊어내기 위해 여전히 힘들게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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