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과업을 제대로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나는 누구인가를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20대는 홀로서기를 못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라 갈팡질팡의 시기였다
아이들 둘을 데리고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았던 나의 30대는 나를 살리기 위해 꿈틀거려보는 시기였다
상하방에 세 들어 살면서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였다
뭐든지 하여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시청에서 무료 컴퓨터 교육에 참가하여 배운 것을 직장에서 컴퓨터 보급이 되었을 때 직원들을 가르쳤다
지인들과 함께 한식요리도 배우러 다녔다
지인은 한식요리 자격증을 취득하였지만 나는 배우는 것으로 끝났다
칼, 도마, 프라이팬 등등 본인 살림을 다 싸가서 시험 봐야 했다
차도 없고 저 멀리까지 가서 살림도 시원찮은 마당에 살림살이까지 싸 가기가 내키지 않았다
문화센터에서 실시하는 풍선아트를 배워 교회나 직장에서 행사 있을 때마다 요긴하게 써먹었다
풍선아트는 자격증도 가지고 있다
리본공예를 배워 아이들 머리띠나 머리핀 등 다양하게 만들어 꽂아주었다
삶의 활력을 쌓고자 생활 춤도 배워봤지만 내 춤이 안 되는 관계로 한 달 시도하다 말았다
비싼 신발은 몇 년 전 당근에다 싼값에 내놓음으로 춤에 대한 로망을 접었다
자수도 밤새 놔 보고 뜨개질도 겨우내 긴긴밤을 지새우며 떠 봤다
수상스키도 아이들 방학 때 온 식구가 모여 타봤다
역시 남편과 아들은 힘이 좋았고 42킬로인 나는 물을 가르지 못하고 물속에 잠기는 바람에 이것도 한번 해본 것으로 끝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은 미련을 갖지 말자
어릴 때 로망이었던 피아노를 배우러 갔다
초등학교 앞에 꼬맹이들이 있는 피아노학원에 가서 자신 없는 왼손 치기를 한 달 배우다 접었다
하고 싶었는데 못한 것들의 리스트는 하나씩 줄어가기 시작했다
예쁜 손글씨 POP 자격증도 있다
풍선아트처럼 상당히 많이 이것도 나의 존재감을 나타내기에 좋은 도구였다
그렇다
남편의 부재로 상하방 전셋집에서 혼자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회색빛 내 인생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언제 죽더라도 그 인생에서 원이라도 없게 해보고 싶었던 것 다 해보고 죽자라는 생각이었다
삶에 절실해서가 아니라 회의적이었다
살고자 애쓴 것이 아니라 죽고자 살았다
버킷 리스트 완료처리하며 내가 언제 죽더라도 평생에 해보고 싶은 것은 모두 하자하며 하나씩 지워나갔다
버킷 리스트를 지워나가면서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 별로 즐겁지 않고 그때의 표정도 밝지 않다
내가 이것을 했었지의 증거일 뿐이었다
여전히 남편은 빚쟁이들에게 쫓기고 여전히 어딘지 모르는 서울에서 적을 두고 있었고 한 달에 한번 정도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오고 몇 시간도 안되어 경찰이 들이닥쳐 남편을 잡아갔다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는 기억이다
또 언젠가는 교도소에 수감도 되었다
빚쟁이들이 근무지로 들이닥쳐 협박할 때는 누가 알까 봐 조바심을 냈다
주변의 친인척들의 끈질긴 빚독촉은 나의 현실을 더 실감 나게 했다
나의 30대는 눈물로 점철된 세월이었다
죽음을 차마 실행하지 못하게 붙잡은 건 종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