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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토 Jan 25. 2024

차를 마시며 몸과 마음을 씻어낸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 아버지가 커피를 가져오셨다

커피를 처음으로 봤지만 물에 타서 마시는 거라는 것은 얼핏 들어서 알고 있었나 보다

커피 몇 스푼을 물에 희석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호기심은 있어서 밥숟가락으로 두세 스푼을 스텐밥그릇에 넣고 물을 밥그릇 절반을 부었다

반신반의하면서 입을 댔더니 너무나 써서 깜짝 놀라서 물을 더 부었지만 부어도 부어도 쓰디쓴 새카만 커피는 연해 지지 않았다

도저히 안되어 버렸겠지만 처음으로 커피라는 것을 입술에 대어본 기억이 난다


아픈 데는 없었지만 체형이 작아 그때나 지금이나 커피는 마시지 않는다

한잔 마시면 그날 잠은 다 잤다고 보면 되니까

취향이 커피든 일반차든 물종류는 왠지 싱거워 보여 튼튼한 이로 질겅질겅 씹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지인들과 식사를 하고 나서 찻집을 가면 그 돈이 아깝지만 자리값이려니 하며 어쩔 수 없이 차 한잔 마신다

그나마도 가성비를 생각해 과일주스로 맛을 충분히 느끼며 마신다

그랬던 내가, 맑은 국물도 좋아하지 않던 내가 한번 마시면 여러 잔 마시게 되는 차가 생겼다


요가원에서 요가 수련을 하기 전에 마시는 보이차가 바로 내가 즐겨하며 음미하면서 마시는 차가 되었다

비싼 차도 선물로 들어오면 모셔만 두다가 버리기를 수차례 했는데 내가 다도를 배우고 노차도 마셔보고 차의 색깔과 맛과 향을 음미하며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나의 색깔이라고 고집하였던 것들이 나도 모르게 새로운 색깔로 덧입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처음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뭐든지 되고 안되고는 내가 정한 룰일 뿐이지 절대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차를 대하면서 겸허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생각의 틀을 정해놓고 자기만의 아집으로 똘똘 뭉쳐 형성된 경직된 관계가 나만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알아간다


요가원에서 다도 하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차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차가 매개체가 되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도 있다

서로 사람 사는 이야기지만 그 안에 여유가 있고 해학이 담겨 있으며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있었던 스트레스나 건강문제들을 내어놓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 문제는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더 힘든 사람을 위로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로하다 보면 나의 현재가 감사하게 느껴지고 다행이다라는 생각으로 위로도 받지만 상대방을 위해 다정함을 베풀기도 한다


차에 대해 조예가 깊으신 요가원 원장님께 요가수련을 하러 가면 매번 차 대접을 받는다

정성스레 자사호에서 우려낸 보이차를 수구에 담아 건네주시는 원장님의 따뜻한 마음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는다. 수구에 담긴 예쁜 색깔의 보이차를 조그마한 찻잔에 담아 엄지와 중지, 약지로 감싸고 새끼손가락은 찻잔 아래를 받혀 색깔과 맛과 향을 음미하며 마신다 


차의 바다라 일컫는 다해 위에, 배를 연상케 하는 색깔도 황톳빛인 자사호를 바라볼 때면 어느 땐 엄숙함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넓은 다해가 우리의 인생 같고 맵씨 있는 자사호가 우리들인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다해 위에서는 조그마한 찻잔도 함부로 하지 않고 찻잔을 만지는 자세도 공손해진다

다도를 하면서 무엇하나 함부로 취하고 허투루 다루지 않는 마음의 자세를 배우게 된다

다도시간은 차 한잔을 단순히 목말라서 마시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대하고 타인을 대하는 겸손과 존중을 배우는 겸양의 시간이다


차로 몸도 마음도 씻어낸 후 요가 수련을 하면 몸과 마음이 훨씬 정갈해짐을 느낀다

내 몸에 어떤 음식을 집어넣느냐에 따라 풍기는 냄새도 달라지듯이 어떤 생각을 집어넣느냐에 따라 풍겨지는 인품도 분명히 다르리라 생각된다

내가 몰래 먹은 것, 나 혼자만 하는 생각을 남들은 모를 거라 생각하지만 풍기는 냄새와 뿜어져 나오는 인상에서 우리는 그 사람이 무엇을 먹었으며 어떤 사람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차와 요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온몸과 마음과 영혼을 씻어주고 정갈하게 주며 겸양의 자세를 배우게 하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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