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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토 Jan 24. 2024

쟁기자세로 몸의 틀어짐을 발견한 날 소방차가 왔다

요가를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욕심이 생겨 요가 지도자자격을 취득하였다

벌써 7년여 전의 일이다

예쁘고 젊은 아가씨 네 명과 대학교수님 한 분과 나 이렇게 6명이서 요가 수련을 시작하였다

직업으로 삼고자 시작하는 네 명의 아가씨들은 얼굴도 예쁘고 심성도 곱고 몸매도 예쁘고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예쁜 요가복을 맵씨나게 입고 예쁜 동작을 하고 있으면 절로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많이 부러워도 하고 많이 예쁘다는 생각을 하며 수련을 같이 했는데 지금은 요가를 잘 지도하는 지도자의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요가 지도자 자격을 취득하려면 이론도 통과해야 하지만 아사나도 어느 정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1차 이론만 잘 통과한다면 웬만해서 실기를 통과 못한 경우는 없는듯하기도 하다


우리가 자격을 취득한 시기는 코로나 훨씬 전의 일이다

함께 주말마다 모여 몇 시간을 이론 공부하고 아사나를 하며 다리를 찢고 잘 안되는 쟁기자세를 하였다

쟁기자세는 반듯이 등을 대고 누운 상태에서 아랫배에 힘을 주고 다리를 동시에 들어 올려 다리를 머리뒤로 넘기는 자세이다

양손으로 등을 받쳐주거나 깍지를 끼고 바닥을 지지해 주면 등이 활짝 열리고 자극이 되어 자세를 취하고나면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자세가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쟁기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락없는 쟁기다. 시골에서 소에 멍에를 지우고 쟁기를 매달아 밭을 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나오는 아버지와 비슷하신 분이셨다

조금은 배우신 분이셨고 아버지 어릴 적에는 있는 집안의 자제로 이런 농사일에는 재주가 없으셔서 어린 눈에도 아버지가 소를 끌고 밭을 가는 건지 소가 아버지를 이끄는 건지 영 어설퍼 보였었다

안쓰러워서 어린 나이에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어쩌지 못했던 그 무거워 보이고 넘어지려고 비쩍거렸던 쟁기를 떠올리며 나는 쟁기자세를 하고 있다

땅을 파기에 날렵해 보이는 쟁기날을 생각하며 발끝을 오므려 이마 가까이에도 당겨보았다가 날렵하게 펴보았다가 무릎을 벌려 양귀 쪽으로도 당겨보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두 무릎사이에 공간이 대칭적으로 보여야 하는데 한쪽이 더 넓어 보이고 시선을 내리깔아 배꼽을 보라는데 시선이 사선으로 보인다

쟁기자세를 하며 내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 누웠나? 어깨가 바르지 않나? 아니다 골반이 틀어졌나?  여러 가지로 균형점이 깨진 부위를 찾아 나가던 중 드디어 찾았다

요가원 사방에 둘러쳐진 유리를 통해 앞면과 옆면을 잘 관찰해 보니 내가 앉아있을 때 고개가 왼쪽으로 치우친다

허리는 꼿꼿한데 고개가 왼쪽으로 삐딱하게 약간 기울어있다

서서 이제는 살펴보았다 왼쪽 어깨가 살짝 내려가 있고 누워서 보면 왼쪽 다리가 살짝 더 길다

아~ 그렇구나. 이래서 어릴 적부터 신발이 왼쪽만 빨리 닳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었다

내 몸이 이렇게 많은 세월 삐딱하게 형성되어 왔구나 싶어 이걸 어떻게 되돌리지 하며 바른 자세를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사람이 바른 자세로 서는 것도, 앉는 것도, 고개를 반듯이 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시기였다

요가원 원장님이 매번 이야기하는 균형이라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요가 명상 시작 전에 자세를 잡을 때 거울을 통해 머리를 천정에서 잡아당긴다는 생각으로 끌러 올리기를 무수히 하고 있다

의식적으로 몇 년을 지속하다 보니 이제는 어깨의 높낮이가 얼추 맞춰지고 다리의 길이도 곧잘 맞춘다

결국은 골반의 틀어짐을 잡아 척추를 바로 세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몸이 틀어져 균형이 무너진 사람들이 많다. 다들 자신의 척추가 틀어졌다고 말을 하는데 이 척추가 틀어진 데는 먼저 골반의 균형이 무너진 데에 있다고 본다


이렇게 요기니들과 요가수련을 몇 시간 정신없이 진행하고 있었는데 긴급하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바로 아파트 총무님 전화번호였다

무슨 일일까 싶어 전화하니 집 앞에 소방차가 세대가 와있다고 하며 집에 불난 것 같으니까 빨리 오라고 다급하게 외치신다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갔다

이미 달려가면서 나는 알았다

내가 요가원 오기 전에 밤을 한~솥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삶다가 왔다는 것을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정말 집 앞에, 옆에, 큰 도로가에 소방차가 빨간 불을 켜고 아파트를 에워싸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위층에서 신고전화가 들어왔는데 이 집에서 탄내가 나서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현관문 번호키를 누르는데 뒤에 줄줄이 에워싼 완전 화재진압 복장을 한 소방관들이 있어 얼마나 당황했는지 집 문이 안열린다

한 소방관이 뒤에서 외친다 "워메~ 번호키도 다 탓나 보네"

겁이 덜컥 났지만 다시 진정을 하고 번호를 누르니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리자마자 완전 진압 복장을 한 소방관이 구둣발로 뚜벅뚜벅 걸어 주방으로 가 불을 끈다

매캐한 연기가 온 집안에 가득했지만 다행히 불은 나지 않았다

휴~

얼마나 주변 아파트 사람들에게도 미안하고 소방관들에게도 미안하던지 고개를 푹 숙였다

이날 이후 친정엄마에게만 달아줬던 가스레인지 타이머를 바로 달아 장착시켰다


실은 소방차가 집 앞에 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더 훨씬 전 중학생 아들에게 출근하면서 어서 일어나라고 재촉하고 고등어조림 약불로 데우고 있으니 지금 일어나 먹으라고 이르고 출근하였다

분명히 대답도 했는데 아들은 밥도 안 먹고 그대로 학교를 가버렸고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집에서 세 시간째 탄내가 난다고 신고가 들어와 소방차가 출동한 것이다

이렇듯 나의 소방차 출동 전력은 젊어서부터 기억력 감퇴로 깜박깜박하는 일이 잦아 반복되더니 결국은 국고를 낭비하는 일까지 생겼다

고등어조림이 타고 밤이 새까맣게 타고 독일제 냄비 밑바닥이 똑 떨어져 나가도 화재로 번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기억력이 어떨까?

주변의 환경과 요가 수련으로 인한 내 몸의 환경이 바뀌어서일까?

요가를 주 3회 이상 수련하고 살아온 날이 10여 년이 넘어서 인지 그 시절보다 훨씬 기억력이 좋아졌다

타이머를 달아서 일수도 있지만 이제는 냄비를 버리는 일도 소방차를 부르는 일도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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