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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숲 Oct 09. 2023

아줌마와 비혼 아줌마의 중년.

12화. 아는데, 안되지?

'언니~~~' 하며 비혼 아줌마가 반기는 아줌마는 고등학교 선배다. 같은 교회에서 성장했으므로 학교 선배로만 불리는 아줌마와는 깊이가 다를 수 있다. 중학교 친구 시누이로도 얽혀 있으니, 인연이 몇 겹인 셈이다. 


'여기~~~~~' 하니, 지하철 입구에서 달려오는 아줌마 선배가 보인다. 친구 아버지 장례식에서 얼굴 본 뒤로 몇 년 만이다. 반가움이 담기니, 중년의 걸음도 빨라진다. '모야, 울 오늘 블랙 & 화이트인가?' 만남을 준비한 서로의 모습도 알아주며, 즐겁다.


딸 둘 키우며, 평범히 산 듯 아줌마 선배는 후배의 걸음만 칭찬한다. 일, 가정을 양립하며 살아온 아줌마 선배에게서 중년의 편안함이 느껴지는데도 말이다.


'어머니는? 엉~~~?? 알리지도 않고?!!!' '그렇게 됐다'. 아줌마 선배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몇 달 전의 일로, 연락할 경황이 없었단다. '나이 드셔 가셨으니, 호상일 수도 있지만...' 하는, 죽음의 사연이 아프다.  

 

'나이 들면, 암세포도 자라지 않을 수 있다던데....'.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단다. 그런데도 자식을 위해서였을까? 악화되는 와중에도 살려는 의지를 보이셨단다. 음식을 드실 수 없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죽는다는 말을 전하며, 죽어감을 본 아줌마 선배의 마음....., 그 고통이 전해진다. 


죽음에 대한 수용 과정은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에 의해 정의된 바 있다.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갑자기?? 부정(denial)된다. 살고 싶은데, 다른 답이 없다? 분노(anger)할 수밖에 없다. 마음이 진정되면 가깝지 않은 신이라도 살려주신다면..., 하고 협상(bargaining)도 한다. 죽음이 모든 것과의 단절로 다가오면 우울(depression)이 찾아든다. 수용(acceptance)은 이러한 과정을 아주 힘겹게 경험하는 상태에서 온다. 그러므로 떠나야 하는 이, 남는 이들 모두에게 죽어감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비혼 아줌마의 아빠도 폐렴에 걸려 두 달 만에 가셨다. 산소 호흡기로 숨을 쉬던 아빠의 모습을 기억하니 '핑' 하고 눈물이 돈다. 20년이 지났음에도 말이다. 그러니 몇 달 안 된 아줌마 선배의 눈물이 이상할 리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매주 엄마를 찾아가 보는 거였어' 비혼 아줌마 또한 찾아가 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마지막이 있었다.


떠나기 전날 편안하게 웃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웃어 주었던 것처럼, 그랬다. 그 웃음이 슬펐는데도, 이상하게도 죽음을 마주할 힘을 주었다. 그 기억에 '잘했네' 하니, '내 맘 편하려고 그랬지' 하는 맘도 전한다. 


아줌마 선배는 아버지도 중학교 때 떠나보냈다. 고생하시며 자녀들을 키우셨던 어머니다. 매주 아픈 어머니를 두고, 뒤 돌았던 그 괴로움을 토한다. '너무 힘들었어'. 그리운 애틋함이 몰려오니 운다. 


'엄마에게 잘해드려', 울먹이며 당부한다. '언니도 알잖아, 맘은 아는데, 잘 안 되는 것...', '잉~~' 아줌마 선배를 비혼 아줌마 또 울렸다. 잘해드리려는 마음을 내일로 미룬다.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 때가 오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아픔 없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품으니, 고통을 뒤로한 웃음이 찾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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