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숲 Sep 12. 2023

아줌마와 비혼 아줌마의 중년.

8화.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비혼 아줌마에게 마음을 주는 아줌마 친구는 또 있다. '나, 9번이었는데', 엥~~' 난 11번'. 비슷했던 키 번호 덕에? 우린 중학교 때부터 주~~~ 욱 옆에 있는 친구가 되었다. 늘 옆에 있어주니 부부, 알아주니 애인 같다며, 내 마음은 차별을 둔다. 차별을 둔 아줌마 친구는 근처에 산다. 몸의 거리로 인해 '힘들어' 하면, 친근한 마음으로 밥도 잘 사준다. 


부부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을까?  '아니!' 한다. 없으면  안 될 것처럼 결혼하더니, 잘라 말한다. '부부인지 금방 알 수 있대'. ' 밥만 먹는대, 창에 머리 박고 잔대...ㅋ  걸어도 일렬로 걷고 ㅋㅋㅋ'. '애인은?'. ' 웃으며 먹고, 기대서 자고, 팔짱도 끼고'. '너희는?', '부부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나에게 차별 둔 아줌마 친구는 애인처럼 살갑다. 웃으며 나란히, 가끔은 팔짱도 끼면서 걷는다. 차별 둔 아줌마 친구도 그런지, 다른 아줌마 친구 더 챙기면 서운해한다. '폐위된 왕'처럼 그런다.


맏이 모습을 아들러(Adler)가 표현한 말이다. 부모의 관심을 옴팡지게 받다가, 동생들에게 밀려난 모습에 비유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닌데, 받는 입장은 열등해진단다. 열등감은 그림자와 같아서 평소에는 문제가 없다. 열심히 했는데, '잘했다'는 말이 오지 않는다?? 힘들 수 있다. 여전히 왕이고 싶은 욕구, 우월감에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우월감은 '우쭈쭈' 해주는 부모와의 초기관심에서 생겨난다. 배 고파, 울면, '울 아기, 배고팠어~엉' 하며 즉시 젖을 먹인다. 엄마가 준 젖인지 유아는 모른다. 초기에는 외부세계와의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창조해 낸 젖을 먹는다고 느끼며, 신인줄 안단다. '내가 만들었어~~' 하는 우월감을 한껏 만끽하며! '어허' 하는 부모의 꾸짖음이 적절하게 필요한 이유, 여기에 있다.


그럼, 울어도 전과 다르거나, '왜 그래?' 반복 꾸짖으면 열등감은 짙어진다. 100점 맞다가 딱 하나, 어쩌다 하나 틀렸는데, 말이다. 차별 둔 아줌마 친구의 아버지가 그러셨단다. '야, 인마, 친구 아버지도 아버지다' 하시던 자상한 분이셨다. 아마도 차별 둔 아줌마 친구에게 기대가 많으셨던 것 같다.


기대가 너무 높아도 우월해야 하는 자기(self)에 시달리므로, 피곤해진다. 차별 둔 아줌마 친구는 '폐위된 왕' 자리도 탈환해야 하는 맏이다. 쉬고 싶어도, 타인기대에 반응하고픈 우월함은 열등한 자기(self)를 '더, 더', 보챌 수 있다.


비혼 아줌마 또한 그렇다.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막내 열등감에 시달린다. 맏이에 의지하며 살았던 막내다. 존재감도 미약하다. 여태 집안 중요 결정에 대한 발언권도 거의 없다. '얘들아, 나, 너네 친구 아니고, 아빠 동생이거든' 참인데, 우겨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이럴 때 부부처럼 옆에 있어 주는 차별 둔 아줌마 친구의 관심!! '우쭈쭈'를 찾아준다. 차별 둔 아줌마 친구도 마찬가지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고생했다. 열심히 살아, 중년 간부로 살아있다. 중년에 아줌마가 아저씨들과 나란히 살아있는 것, 그리 쉬운 일 아니다. '대단해', 알아주니 '뭘...' 하지만, '우쭈쭈' 해진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하지만, 사회적인 성취는 비혼 아줌마나 차별 둔 아줌마 친구의 열등감을 온전히 승화(sublimation) 하지 못한다. '나만 못해', '키 줄었어' 하며, 불시에 불거지는 열등감을 토한다. 이그~~, 충분한데 말이다.  

이전 07화 아줌마와 비혼 아줌마의 중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