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농담이(아니)야

이 세상에 농담마저도 없다면

by 글쓰는메시
화면 캡처 2023-07-17 191433.jpg

0 매일의 죽음

매일 주변의 무엇인가가 사라지고 없어지는 세상. 당장 내일 뭐가 없어질지 예상할 수 없다. 허공처럼 가벼운 날들이 이어진다면, 우리가 집착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여전히 매달리고 있을까. 부서지지 않을 신념, 어기면 안될 규칙들을 굳건히 만들어주는 것이 그 자체의 가치 때문일까, 그것을 수호하는 사람들 덕분일까. 왜 수호하는 것일까. 생각을 바꾸면 매일을 깃털처럼 가볍게 살 수도 있을텐데.


1 월경

"정신과에 먼저 가서 한 20만원 하는 검사를 받아 진정한 트랜스젠더임을 인증받으면 성전환증 진단 서류가 나왔습니다. ...가슴 수술, 네 성형수술로 분류됩니다. 의료보험 되지 않고요, 10퍼센트 부가세가 붙어요."


'정신과'에서 트랜스젠더임을 '인증'받으면 성전환이 가능한 서류를 발급 받을 수 있다. 성전환을 위한 가슴 수술은 성형수술로 분류되어 의료보험이 안되고 부가세가 붙는다... 누군가 태어날 때의 성 정체성이 아닌 반대편의 성 정체성으로 살아가려면 나 자신의 의지나 결정보다 제도의 '승인'을 받아야하고 보험으로 도움받지 못하는 과정을 거쳐야한다는 것이 웃을 수 없는 농담처럼 다가왔다. 내가 '나'인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인증 받아야 하는 삶. 이미 그 자체가 온전한 나로 지낼 수 없도록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변신

"나는 스물여덟에 몸으로 혁명을 이루고 열여섯에 변신을 했는데, ... 지금의 삶이 너무나도 단순하고, 평화롭고, 불완전합니다."


28살의 주인공은 여자에서 남자로 성을 변경하고 온몸으로 혁명하며 고군분투하며 살아오다가 16살 남자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막상 남자로 살아보니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단순하고 불완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가 높다랗게 벽을 세우고 굳게 잠근 문을 어떤 이는 문 앞을 서성이다 돌아가고, 어떤 이는 문을 좀 두드리다 반응이 없으니 돌아가고, 어떤 이는 몸이 부서지도록 문을 두드려 다 부셔서 그 벽을 넘어간다. 그런데 넘어가고 보니 뭔가 대단한게 있지는 않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각자가 마음에, 머리에 세우고 있는 벽은 무엇일까? 그 벽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큼 단단하고 높고 절대적일까.


세상의 첫 생일

"나는 그들과는 다르게 살 수 있을까? 내가 지금처럼 나이를 먹을 수 있을까?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을까? 더 살고 싶은 마음이 들까? ...어른들이 증발하고 나서 어린 애도 소녀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20살, 어른, 성인이라는 낱말이 사뭇 무거운 느낌을 준다. 천진난만한, 늘 재미를 찾는, 웃음이 멈추질 않는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폼을 재고, 정색하고, 진지한 '어른'이라는 것이 되어버렸을까. 자기 삶을 살아보지 못한 부모가 자식이 원하는대로 살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해줄 수 있을까. 얼마전 동생이 쓴 독후감에서 비슷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고 애착을 가진 사람한테 그 사람도 자기하고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착각'한다고. 소년, 소녀를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완전한 어른들 때문이다. 근데 과연 어른은 완전한가?


;트랜스젠더 관련된 책을 살면서 처음 읽어봤다. 세상의 시선, 주변인의 참견, 여러 잣대들 그리고 스스로의 고뇌. 이 모든 것들을 물리치고 맞서 싸우고 흔들어 깨우면서 자기의 삶을 찾아가는 모습, 투쟁하는 모습이 멋있고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제도와 규칙과 사람들의 생각과 또, 자신의 생각에 갇혀 비굴하게 연명하는 사람들이 비웃을 인생은 절대 아니다 라는 생각도 했다. 갑갑한 이 세상에 농담마저도 없다면, 농담이라고 넘어가지만 웃기지만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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