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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Oct 21. 2023

쾌락의 정원

세상은 요지경 -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작가의 이해할 수 없는, 또는 범접할 수 없는 기운 (속된 말로 "똘끼")을 느끼게 되는 작품을 만나거나 듣게 되면 마음 속으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옛날에 유행하던 코미디언의 어조로) "무슨 약을 하셨길래 이런 작품을 만드셨쎼요?"


예술가들 중엔 지독한 괴짜가 많다.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면 자신만의 세계를 끌고 나가기도 힘드니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전제조건이라고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덕분에 세상의 수 많은 다양한 괴짜들이 만들어 낸 작품을 보며 우리는행복해 하고 있다. 이런 작품 중 최고라 하면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작품인 쾌락의 정원이 아닐까?



나는 이 그림을 실제로 봤지만,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못했다. 프라도 미술관에 걸린 이 그림 앞에는 모나리자만큼은 못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어 제대로 감상하지 못 했다. 사람에 치이는 것이 질색이라, 당시에 피곤하기도 해서 아주 쉽게 이 그림을 감상하는 걸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후회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세계의 각국에서 온 사람들은 무엇때문에 이 그림에 그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이 똘끼 충만한 작품을 보면 적어도 두 번 이상은 놀란다. 처음에는 참으로 기기괴괴한 장면에 놀라고 두번째는 이 작품이 16세기 초, 우리나라로 치면 엄격한 유교사상이 지배하던 중종시대, 서양에서는 종교개혁이 서서히 태동하던 시대였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500년 전에 이런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있다니...그는 대체 어떤 사람인걸까?


애석하게도 그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의 고향인 네덜란드 스헤르토헤본스에 남아있는 자료로 겨우 생년월일이나 가족관계 등을 추측할 뿐이다. 화가만큼이나 신비한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다양한 상상거리를 남겨준다. 먼저, 이런 패널화는 덮개에 음악으로 치면 서주와 처럼 대충 덮개 안의 그림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들이 남겨져 있기 마련이다. 이 쾌락의 정원 덮개에는 동그란 구형의 당시에 생각했던 지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모양을 보아하니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한 셋째날 우리가 사는 즉 땅과 바다, 식물을 창조하셨을 때인데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순수한 에덴의 모습이 다음에 나올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패널을 열어보니 쪽에 익히 아는 모습들이 눈에 보인다. 아담과 이브, 그리고 창조주가 그림의 한가운데 서 있다. 동물과 식물, 그리고 인간들이 원죄없이 서로 사랑하며 아무런 걱정없이 살아가던 천국, 인류의 과거 모습이다. 이는 곧 중간패널로 옮겨가며 원죄있는 인간들이 사는 현재로 넘어온다. 남사스러운 장면이 연출되는데, 인간들은 자신들의 죄를 잊고 육체의 쾌락에만 몰두하고 있다. 창조주의 말씀을 어기고 타락한 인간들은 곧 오른쪽 패널인 우리의 미래, 즉 지옥에 빠진다. 아니 그들의 세상이 곧 지옥으로 변했다가 더 옳은 표현이겠다. 인간들은 마침내 자신들에 저지른 죄에 대한 응징을 받는다. 그들이 즐기던 악기와 놀이도구들은 고문장비가 되었다. 몸이 잘리고 창에 꿰뚫린 체 고통에 비명을 지르지만, 흉측하게 생긴 -요즘으로 치면 방사능을 맞아 돌연변이같은 모습을 한- 악마들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이렇게 한편의 공포영화같은 기묘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면 주님의 뜻에 따라 착하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든다. 충격요법이랄까. 카톨릭 교회의 타락이 절정을 이루던 시대에 루터가 활동하던, 로마로부터 멀리 떨어진 추운 북쪽에 살던 보쉬의 눈에 비친 세상은 이제 곧 종말이 다가올 타락한 세상 그 자체였다. 결국 그가 똘끼가 충만한 화가가 아니라 그가 눈에 비친 살던 세상이 똘끼 충만한 세상이 였던 것이다. 결국 화가가 자신의 방법으로 솔직하게 그린 것이 범인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화가에 대한 오해가 생긴 것을 수도 있겠다.  경건한 마음으로 무지한 사람들에게 이를 경고하고자 하는 선한 의도로 속담을 은유적으로 이용하여 열심히 그림을 그렸을 화가를 생각하니 나의 오해가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어쨋든 그의 그림이 충격적일수록 회개하는 인간들이 많아지니 화가의 의도는 성공한 것 같다. 현재까지도...


찾아보면 점쟎을 것 같은 고전음악가들도 범상치 않은 에피소드를 자랑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에서야 지고지순한 사랑이라던가 예술에 대한 고뇌, 천재성에 의한 충동적 행위로 미화되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갸우뚱할 때가 많다. 그 중 프랑스 관현악 대가인 "엑트르 베를리오즈"는 상당히 비범한 연애사를 가지고 있다.


아직 풋내기 작곡가였던 시절 그는 아름다운 영국인 배우 "해리엇 스미드슨"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나름 유럽에서 명성이 자자하던 슈퍼스타인 그녀에게 미래의 대가는 그저 일개 팬에 불과했다. 그가 보내는 수 많은 러브레터를 콧방귀끼며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건만, 베를리오즈는 그녀의 숙소 근처에서 그녀를 지켜볼 정도로 그녀에게 집착했다. 일종의 스토킹이다.


자신에게 무심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열병을 앓던 그는 마침 교향곡을 작곡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의 대표작 "환상교향곡"이다. 그는 친절하게도 각 악장마다 제목을 붙여가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해주는데, 1악장부터 3악장까지는 "꿈, 정열", "무도회", "전원" 처럼 무난하고 젊은 작곡가의 풋풋함이 드러난다. 그런데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에서 곡의 분위기가 바뀌며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거린다. 그리고 마지막 5악장 "마녀의 밤"에서는 그로테스크함마저 느껴지며 곡은 광란으로 치닫다 갑작스런 마무리를 한다. 어째서 이런 작품이 나왔나 보니, 바로 해리엇 스미드슨이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작곡가가 마지막 두악장을 작곡했기 때문이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며 4,5악장을 작곡했을까? 자신의 사랑을 거절하고 다른 남자를 선택한 그녀를 저주했을까? 아니면 초라한 자신에 대한 비참함일까? 그도 아니면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을 원망했을까? 연인을 죽이고 단두대로 향하고, 결국 세상에 대한 자포자기에 악마들과 춤을 추는 주인공의 모습은 베를리오즈 자신이었다.


현란한 관현악 멜로디에 가려져 모두가 알아채지 못 한 그의 집착은 결국 성공한다. 해리엇 스미드슨을 떠나보낸 뒤, 다른 여인에 대한 사랑에 빠져 또 다시 죽네사네 하는 광기에 빠졌긴 하지만, 집념의 사나이 베를리오즈는 얼마 뒤 당시 음악가로서는 최고의 인정인 로마 대상을 받고 금의환향한다. 이쯤되자 때 마침 인기가 시들해져 미래에 대해 고민에 빠진 해리엇 스미드슨은 여전히 자신을 연모하는 라이징 스타인 베를리오즈에게 관심을 보이고, 결국 베를리오즈는그녀와 결혼하며 성공한 덕후가 된다. 그렇게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지만... 누군가가 결혼은 현실이라 했던가...아내의 집착과 남편의 바람기가 합쳐서 순탄치 못했던 결혼생활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년만에 끝나버린다.


이쯤되면 그의 환상교향곡은 이미 결과가 정해진 그의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언이 아니었나 싶다. 다행히 그의 작품과 다른 점은 첫사랑에 대한 추억때문인지,  둘 사이에는 아들이 있기에 그에 대한 도리 때문인지,  늙고 병들어 버린 전와이프에게 계속 경제적인 지원을 계속하며,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재혼도 미뤘다. 역시 예술은 예술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면 누가 제정신일 수 있겠소? 너무 똑바른 정신을 가진 것이 미친 짓이오!" 라는 돈키호테의 말처럼 가끔 세상이 이상한건지, 내가 이상한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세상을 정답에 맞춰 정직하게 살려한 보쉬나, 감정에 충실한 베를리오즈 모두 타인에게 이해받기란 어려운 삶이다. 하지만 이들이 남긴 작품을 통해 타인의 시선을 잠시나마 훔쳐봄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인생엔 정답이 없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세상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세상은 미친게 아니라 원래 그런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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