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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Oct 22. 2023

추수감사절 칠면조 잡기

야, 너두! -  후치코 헤밍,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

기회의 여신 "오카시오"는 특이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앞머리는 무성하여 눈 앞을 지나가도 알아볼 수가 없으며 뒷머리는 대머리라 뒤늦게 잡아보려 하지만 잡을수 없다.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재빠르게 사라져 버린다. 인생의 살면서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내 눈 앞을 지나간 기회가 얼마나 많을까?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기회를 잡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다. 재능도 필요하고, 운도 필요하고, 그에 맞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마디로 사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누구나 꿈을 꾸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재능, 운, 노력 등 여러 능력치는 천차만별이다. 그렇기에 남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자신을 알고 스스로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게 정신건강에 좋다. 어차피 세상은 불공평하니까.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요소 중  또 하나는 인내심 아닐까? 사람은 과연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참고 기다릴 수 있을까? 여기 어느 한 소녀가 있다. 이름은 잉그리드 "후지코 헤밍". 소녀의 어머니는 당시 일본의 부잣집 딸에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그녀는 공부를 하러 떠난 낯선 타국에서 파란 눈의 스웨덴인과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시작은 늘 행복하다. 부부가 된 둘은 여자의 고향에 돌아와 딸도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는데, 전쟁이 한참이던 때, 남편은 전쟁에 빠진 고국을 지키겠다며 돌아가 버린다. 가족도 못 지키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섰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홀로 남은 엄마는 가세가 기울어버린 친정의 도움을 근근히 받으며 피아노 레슨을 하여 하나뿐인  딸을 열심히 정성을 다해 키운다.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딸을 통해 이루려 했던 탓인지 어머니의 교육은 혹독했다. 다행히 엄마를 닮아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딸은 잘 따라와주어 독일유학도 떠났지만, 늘 돈에 쪼달리는 삶을 살아야 했다. 전후 일본에서 홀로 레슨을 하며 돈을 보내야 하는 엄마의 고생에 딸은 성공이란 이름으로 갚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세상에 모래알만큼 많은 게 피아니스트라고 하지 않은가?


겨우 당대 최고의 지휘자인 번스타인을 찾아가 연주기회를 얻었지만 연주 전날의 알수 없는 고열로 기회를 날려버리고 음악가로서 치명적이게 청각마저 나빠진다. 평생을 피아노 앞에서 살아온 그녀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머니는 항상 뭐라고 그녀를 다그쳤을까? "너는 피아노를 쳐야해, 너는 피아노를 치기 위해 태어났어. 반드시 훌룡한 피아니스트가 되어야해."


인생 최대의 기회를 잃어버려 절망에 찬 그녀의 방황은 이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몸도 정신도 망가진 그녀는 고국에 돌아왔지만, 아무도 그녀를 알아봐주지 않았다. 결국 외국을 떠돌며 음악교사로 일하던 그녀는 어린 시절 헤어진 아버지를 찾아가 보기로 한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모진 소리를 할 때마다 그녀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상상 속의 다정한 아버지를 그리며 외로움을 달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다. 새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의 아내는 그녀를 문전박대했다.


꿈을 망쳐버린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은 어머니와 딸의 존재조차 부정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그녀가 느낀 절망감을 감히 온전히 상상할 수 있을까? 그렇게 방황하던 그녀는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은 뒤에야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유품으로 남겨진 어머니가 치던 피아노를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보통 사람이라면 지긋지긋하다. 끔찍하다. 피아노만 없었다면 나도 우리 엄마도 훨씬 행복한 삶을 살았을텐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괴롭히던 피아노에서 다시 희망을 보았다. 어느 정도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의 아픔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일까? 그렇게 다시 건반 앞에 앉은 그녀는 동네 사람들 앞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어 연주했다. 젊은 시절처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꿈따위는 잊고, 그저 "나와 타인의 마음의 위안이 되면 좋겠다"라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던 기회가 뜻하지 않게 다시 그녀를 찾아왔다. NHK 관계자가 그녀의 연주를 접하고 방송에 내보내자고 제안한다. 방송에 나온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파란만장한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렇게 인기를 얻은 그녀의 연주는 음반으로 제작되고 환갑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발돋음하게 된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의 소원이 60년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남들은 은퇴를 고려하는 나이에 세계를 누비며 뛰어난 연주실력을 보여주는 것은 그녀가 어릴시절부터 탄탄한 기본기를 닦아왔다는 것도 한 몫을 지만, 오랫동안 꾸준하게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인내심과 노력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쇼비지니스의 사정도, 나이에서 오는 미스터치도 분명 존재하지만, 후지코 헤밍만큼 듣는 이에게 "Dreams come true" 라는 명확한 메세지를 전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그녀의 18번이라고 할 수 있는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들으면 그녀의 혹독했던 무명의 피아니스트 시절이 떠오른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기다리며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몸을 혹사시키다시피하며 연습했을까? 흔히 연습을 하면 "손에 익힌다"라고 표현한다. 눈이나 머리와는 상관없이 딴 생각을 하면서도 손가락이 자동적으로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서는 지겹게 반복되는 연습을 견뎌내야 한다. 끝도 없는 연습을 해도 보장되지 않는 성공을 기다리며 지금도 수 많은 음악인들은 손가락을 놀리고 있지 않을까?


운동처럼 특정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분명 젊은 시절의 팔팔한 체력이 필요하지만, 몇몇 분야는 나이와 상관없이 오히려 연륜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회화가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 수록 기술도 늘지만 화가만의 독특한 화풍과 철학이 그림에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숨겨진 재능을 뒤늦게 발견하여 유명해지는 경우도 있다.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미국의 국민화가가 된 "그랜마 모지스 (모지스 할머니)"는 평범한 주부였다. 광활한 미국의 어느 농장에서 평생을 수를 놓으며 주부로 살던 그녀는 더 이상 수를 놓을 수 없자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붓을 든다.


뒤늦게 들은 붓으로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자식들을 그리며 행복했던 기억을 그려내었다. 누군가 보기에 평범한 미국의 시골생활에 지나지 않지만, 그녀에게는 함께있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가족과 이웃들과의 이야기가 담긴 따뜻한 기억의 조각이다, 연륜에서 오는 너그러운 시선과 자수를 해서 그런지 특유의 꼼꼼함이 만들어 낸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기록화를 보는 것과 같은 생생함과 동시에 고향에 온 것 같은 푸근함이 느껴진다.


눈이 오지만 분명 추수감사절 당시랍니다!!!


76세 할머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어느 누가 미국 전역의 슈퍼스타가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평생 놓은 자수 대신 관절염때문에 그리기 시작한 그림이 수집가의 눈에 들고, 전시회가 열리고, 곧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유명세를 타게 된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팔자란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고, 무언가를 시작하는데 나이는 상관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분야의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수 많은 기회를 놓치며 평생을 연습을 하며 기다려 온 후지코 헤밍의 이야기나, 늦은 나이에 우연히 재능을 꽃 피운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를 보면 인생의 아이러니와 기회의 기묘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과연 잡을 수 있다고 잡는게 아니요, 바란다고 찾아오는 것이 아닌, 예상치 못하게 와서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는 모습이 고대 사람들이 생각하던 그대로다.  


모지스 할머니와 후지코 헤밍의 삶처럼 각자의 삶에는 각자의 서사가 있다.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언제 어떻게 어떤 기회가 찾아올지 오직 신만이 아신다. 기회가 찾아오는 것은 나이와 무관하다. 그렇기에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삶의 과정에 의미가 있고, 항상 후회없이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누가 알겠는가?저 멀리서 기회의 여신이 나에게 달려오고 있는 중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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