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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Aug 22. 2023

라오콘

dramatico-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모든 인생에는 "나름" 굴곡이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은 꽃밭이 되길 바라지만, I'm sorry, it's not easy. 예술을 공부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 예술가들의 삶은 절대로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다. 사주를 공부하면 말년이 좋은 사주가 좋은 사주라는데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 외롭거나, 고독하거나, 아프거나, 미치거나...


단짠단짠이 맛있고, 검은색이 들어가야 그림이 그림답게 보이듯, 그네들의 인생도 그러했나 보다. RIP...

아무튼 이렇게 불행하게 살다 간 음악가들 중에 차이코스키가 있는데, 그의 음악은 참 "예쁘다" 아니 "아름답다." 모차르트가 맑은 유리구슬 같은 아름다움이라면 차이코프스키의 아름다움은 화려하게 치장된 웅장한 방 한가운데서 춤을 추는듯한 마치 진한 레드 벨벳 같이 화려하면서도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랄까. 굳이 색깔로 표현하자면 절제된 진한 자줏빛이다. 드라마로 치면 꽤나 인물들의 관계는 다이내믹한테 절대로 지저분한 막장드라마까지는 아닌 완숙한 작가의 필력이 느껴지는 명작 드라마랄까.


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6번째 교향곡 "비창"은 음울하지만 아름다운 꿈같고, 드라마틱하게 진행되어 햇살이 비추는가 하다 갑자기 비극적으로 끝을 맺는다. 곧 다가올 죽음을 예견하듯 자신의 삶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삶을 응축하여 담은 듯한 이 곡을 차이코프스키를 모르는 이에게 들려주고 그에 대해 추측해 보라고 하자. 얼추 음악에 대한 감상으로도 차이코프스키의 인생궤적을 그려내지 않을까 싶다. 암울한 단조 사이에서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일말의 희망이 생기다가 3악장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면 추앙받는 위대한 음악가의 삶으로 마무리 짓나 싶다. 하지만 4악장에서는 인간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이 그려진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관조하다가 갑자기 비극으로 치달으며 폭풍처럼 정신없이 인생의 모든 한 편의 꿈처럼 주마등처럼 지나가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허공으로 사라진다.


보통 조각은 그림보다 따분하다고 여겨진다. 재료를 다듬는 어려움때문에 표현도 제한적이고, 무색이거나 단색이라 상대적으로 흥미를 끌기도 어렵다. 하지만 훌륭한 조각작품은 회화가 주는 감동을 뛰어넘는다.  바티칸 궁전 정원에 전시 중인 라오콘은 고대 그리스에서 만든 흔치 않은 오리지널 작품이다. 수천 년 전 로도스 섬의 조각가들이 합심하여 만든 이 작품을 보면 대리석을 밀가루를 반죽하여 성형한 것처럼 섬세하게 빗어낸 조각솜씨에 감탄이 나온다. 시선을 집중시키는 주인공 라오콘과 두 아들의 구도도 놀랍지만 칭칭 감는 물뱀의 매끈함과 대비되어 고통에 몸부림치는 인물들의 탄탄하고 섬세한 근육질을 통해 찰나의 순간을 그대로 포착하여 재현해낸 조각가들의 솜씨에 감탄을 하게 된다. 인간이 상상력과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진다.

 

라오콘은 뱀에서 벗어나려고 이리저리 몸을 비틀면서 신을 원망하듯 하늘을 쳐다보는 절규하고 있다. 한 아들은 이미 뱀에 물려 빈사상태이고, 다른 아들은 그나마 뱀에서 벗어났지만 고통에 몸무림 치며 아버지를 보며 공포에 질려있다. 아버지에게 뱀이 곧 물거라고 경고를 보내고 싶지만 이미 늦었다.


신의 분노를 산 아버지 때문에 죽게 된 아들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억울하게 신들의 싸움에 말려들어 소중한 자식을 눈앞에서 잃는 아비의 심정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신의 무자비한 형벌을 받은 인간들을 그대로 박제해 놓은 듯한 이 작품을 보면 피에타에게서 받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의 경건함이 느껴진다.


지금이라도 건드리면 바로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생생함과 그 강렬함은 단순히 인물의 포즈와 조각가의 솜씨뿐 아니라 작품이 담고 있는 비극적 드라마를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육체미에 감탄하다가도 고통에 일그러진 인물들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물뱀으로 표현되는 신의 저주를 피할 수 없는 하찮은 인간의 운명, 죽음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이렇게 장르만 다를 뿐 음울한 비극과 대비되는 삶의 아름다움과 피할 수 없는 숙명이 그려내는 비장한 드라마는 따뜻한 지중해 헬레니즘 조각가들의 라오콘에서 19세기 추운 동토의 나라에서 살았던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지루한 인생의 드라마를 위한 감동이 필요한가? 그럴려면 고통이 뒤따른다. 인간의 운명을 받아들이라. 심장의 박동이 느낄 때마다 삶의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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