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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Choi Aug 24. 2023

가든 오브 에덴

愛 - 로이드 웨버, 오페라의 유령 중 All I ask of you

얼마 전 지하철 역에서 바삐 환승하려고 가던 중 한 아가씨를 보았다. 무심코 시선을 돌린 곳에 긴 생머리에 하얀 옷을 입은 그녀가 서 있었는데 처음엔 그저 그런 평범한 인상이었다. 무심코 '그런가'보다 하며 다시 가던 길을 가려는데 그 아가씨가 누군가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순간 갑자기 그녀의 주변으로 하얗게 빛이 났다. 그녀에게만 환하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듯한 착시 현상에 난 나도 모르게 몇초간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빛의 신이 강림한 그녀는 정말 예뻤다. 생김새도 예뻤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눈빛에서 뿜어져나오는 행복감이랄까 무언가 굉장히 긍정적인 감정이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했다. 자신에게 걸어오는 남자친구에게 화사하게 웃던 그녀는 그와 뭐라뭐라 말을 주고 받더니 서로 팔짱을 끼고 이내 사라졌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자신을 보고 웃는 여자친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었을까?  


노란 타일로 사방이 덮힌 평범한 멋없는 지하철 역에서 맞닦뜨린 이 신기한 현상은 며칠간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세상의 수 많은 커플을 봐왔지만 한번도 겪은 적 없던 이 현상의 원인을  "여자친구가 정말 진심으로 아주 많이 남자친구를 사랑하는구나"로 결론지었다. 남자쪽이 여자친구를 어느정도 좋아하는지는 남자의 얼굴을 못 봐서 확신하지 못 하겠다. 하지만 자신을 보고 그렇게 아름답게 미소짓는 여자친구라면 어느 남자라도 사랑하지 않고 못 배길 것이다.


오늘 우연히 검색하다 발견한 휴 골드윈 리비에르 (Hugh Goldwin Riviere)가 그린 "에덴의 정원 (garden of Eden)"을 보고 다시 그 아가씨가 생각났다. 내가 목도했던 그 장면과 아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에 놀랍기도 했다. 삭막하고 어두컴컴한 런던의 켄싱턴 가든을 산책하는 한 젊은 연인을 그린 이 그림의 제목은 "Garden of Eden" 이다. 인류가 신의 사랑을 받으면서 어떠한 고통도 모른채 가장 행복했던 그곳.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했지만 이내 여주인공의 얼굴과 연인의 모습을 계속 보고 있으니 스토리가 풀렸다. 화가는 연인을 바라보는 여인의 애정 어린 시선 하나로 칙칙하고 추운 겨울의 런던을 에덴동산으로 바꾼 것이다.


여성은 화가의 처제로 당시 약혼자, 훗날의 남편과 앙상한 나무만이 가득한 추운 런던 시내를 산책하면서도 불평은 커녕 다정하게 연인의 손을 잡고 있다. 그녀의 표정을 보라. 둘만의 세계 "에덴"에 빠져있다. 동서양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선 빛이 나는게 당연한가보다. 자신의 애정을 숨기지 않고 여과없이 드러내는 여자를 만난 남자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바쁜 일상에서도 약혼녀와의 잠시나마의 산책은 아마 그에게도 달콤한 휴식 즉 "에덴"이었을 것이다.  

 

영국 길드홀 미술관에 있는 가든 오브 에덴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All I aks of you"는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그림의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심정을 대변하는 노래 같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에게 영원한 헌신과 사랑을 약속하는 이 노래만큼 두 사람에게 어울리는 노래가 또 있을까?


어두운 런던이 아니라 화려한 파리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오페라의 유령"은 이십여년전 영화로 개봉했었다. 당시 아직 어렸던 나는 영화를 보고 "사랑"은 도대체 무엇인가? 은혜를 모르는 여주인공 크리스틴은 과연 누구를 사랑했는가?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 영화의 남자주인공의 집착을 과연 사랑으로 볼 수 있는 건지에 대한 갑론을박도 상당했다. 나는 서브주인공인 라울파라 에릭에 대해 그다지 감정이입이 안되었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에릭은 그저 어린 여자 아이를 그루밍하려는 변태정도로 느꼈던 것 같다.  

   

어린시절을 같이 보냈던 크리스틴을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진 라울은 그녀에게 사랑과 보호 그리고 자유를 약속한다. 그가 그녀에게 약속하는 것들은 지독한 집착과 사랑 그리고 구속을 상징하는 가면 아저씨, 에릭의 사랑과 대척점이다. 크리스틴은 두 사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아닌 줄다리기를 하는데, 파국의 마지막에 에릭은 결국 결코 줄 수 없을 것 같던 자유를 크리스틴에게 선물하고 크리스틴은 라울과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결국 참된 사랑이란 상대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자기중심적인 생물이라 이는 연인 사이는 물론이고 부모자식간에도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로가 생각하는 자유의 경계도 애매모호하고 "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상대를 구속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달라"는 명목으로 상대를 힘들게 한다. 사랑의 유효기간이라는 말도 있듯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변하는 감정이란 흐르는 물처럼 잡을 수 없기에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노력해야 한다. 라울과 크리스틴이 과연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봤던 지하철의 연인의 사랑의 끝이 어떻게 맺을 지 모르겠다. 그림 속의 연인은 결혼했지만 그 결혼생활이 행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그들의 에덴동산이 우리의 에덴동산과 달리 영원했고, 영원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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