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ecilia Choi Aug 23. 2023

맨해튼의 다리

미국적인-드보르작 현악사중주 "아메리칸"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특정 직업에 대해 편견 내지 고정관념이 있다. 군인은 정확하고, 유치원 선생님은 여성스럽다거나, 선생님들은 깐깐하고 잔소리가 심하다던가. 예술분야로 들어가면 미술가들은 자유분방하지만 이에 비해 클래식 음악가들은 고리타분하다고 인식이 깔려있는 것 같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어렸을 때부터 엉덩이에 뿔이 나도록 오랜 시간 연습을 해야하기 때문에 외곬수인 면도 많지만, 그 덕분인지 순수하고 재밌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그들도 사람이라 결국은 다 비슷비슷하다. 


음악을 생업으로 택한 이상, 음악으로 돈을 벌어야한다는 소리인데, 과거에는 이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이야야 유튜브도 있고, 음원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여러 경로가 있어 서울에 앉아 몇 분 전에 발매된 아델의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축음기도 없던 시절에는 음반을 팔지도 못 했고 음악을 소비할 수 있는 계층도 한정적이었다. 


자국의 왕족이나 귀족에게 고용되어 살거나, 그게 싫다면 궁정이나 극장을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면서 음악을 팔아야 했는데, 자동차도 없던 시절에 비포장도로 위를 좁디좁은 마차를 타고 덜그락거리면서 순회연주를 다니기 위해선 강철같은 체력이 필요했다. 잘못하다간 객사하기 딱 좋은 직업이랄까...


한 마디로 그렇게 고상하고 편안한 직업도 아니었고, 돈이나 명성을 쫓아 고향을 버리고 언어도 안 통하는 나라를 평생 떠돌거나 아예 이주하는 케이스도 드물지 않았다. 이런 경험이 음악가들에게는 한편으로는 불행이었겠지만 행운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국의 새로운 문물에 영감을 받아 창작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체코 프라하 근교 시골에서 태어난 드보르작은 이런 면에서 행운아였다. 그는 도축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가업을 이을 뻔했지만 음악을 통해 놀라운 신분상승을 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여기까지 들어봐도 '어, 뭔가 특이한데? 범상치 않아!" 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후에, 다시 발동한 역마살때문인지, 아니면 어마어마한 연봉에 대한 유혹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그에게 클래식음악가 특유의 "고리타분함" 대신 진취적인 기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멀리멀리 신대륙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새로운 요소를 받아들여 미국과 유럽에서 대성공을 거둔다. 그는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전형적인" 클래식음악가의 범주에서 확실히 벗어나는 사람이다. 오히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고 늘 도전하는 용감한 "클래식 음악가" 였다. 그가 미국에서 영감을 받아 단 사흘만에 작곡을 완성한 현악 사중주 "아메리카 (또는 아메리칸)"는 어떤 작곡가에게도 들을 수 없는 미국적인 요소들이 가득하다. 예술가에게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남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유니크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 아마 그는 선율을 머릿속에서 그리는 동안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흑인 영가과 인디언 음악에게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한 멜로디와 통통 튀는 리듬을 듣고 있으면 분명 현악 4중주인데 벤조와 북소리가 들리는 환청마저 들린다. 어쩔 땐 느릿느릿 축 쳐져 있는 미국 시골 어딘가의 풍경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겅충겅충 걸어다니는 당나귀 등에 타고 말과 마차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한참 개발 중인 도시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유쾌한 느낌도 난다. 드보르작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되돌릴 수 없는 당시 신대륙의 때묻지 않은 풍경과 동시에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활력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기분이다. 


이렇게 미국적인 음악이 있다면, 미국적인 그림도 있을 것이다. 앤디 워홀, 잭슨 폴록처럼 획기적인 현대미술가들을 꼽을 수 있겠지만, 나는 최근에 구경한 "에드워드 호퍼"를 가장 미국적이라고 꼽고 싶다.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도 유니크하긴 그렇지만, 그의 화폭에 담긴 이제 막 개발되기 시작한 뉴욕과 아직 때묻지 않은 미국 곳곳의 풍경을 보면 드보르작의 "아메리카"가 주는 느낌과 시대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점이 많다.


유럽에서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건축방식의 거대한 고층빌딩과 다리, 항구 그리고 드넓고 황량한 사막과 평야, 삭막한 도시 안에서 보이지 않는 막을 치고 개인주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 이보다 더 미국적인 모습이 어디 있을까? 다소 무심한 듯 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날카롭고 집요한 작가의 시선을 통해 미국에 가보지 못 했지만 그림을 보면 미국의 공기를 마시는 듯하다.  


아마 드보르작의 음악을 들었던 유럽의 대중들도 호퍼의 그림을 본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여행이 여의치 않았던 시절에 호기심이 가득한 대중들에게 드보르작의 음악은 신대륙에 대한 광고이자 간접체험 수단이었다. 넓고 황량한 사막에서 이리저리 말을 타고 뛰어다니는 인디언과 카우보이, 목화밭에서 구슬프게 노래를 부르는 흑인들, 그리고 이제 막 새롭게 출발한 생생하고 활력이 가득한 미지의 도시들. 그들도 나처럼 가보지 못 한 곳의 공기를 마시며 즐거워하지 않았을까? 결국 그들과 나는 드보르작의 음악을 통해 거의 비슷한 체험을 하고 있다는 소리인데, 시대가 다른 이들과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건 재밌고 신기하면서도 오싹하다. 



 


이전 05화 라오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