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지쳐 힘들 때 뜨거운 죽이나 국물을 휘휘 훌훌 떠먹다 보면 힘이 솟는다. 기운을 북돋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도구가 숟가락이다. 보통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노숙자든, 연예인이든, 기업 총수든, 아니면 최고위 권력자든 신분과 직업에 관련 없이 밥을 먹을 때는 누구나 숟가락을 사용한다.
요즘은 옛날과 달라 금수저나 은수저뿐 아니라 놋수저도 찾기 힘들다. 보통 우리네 밥상에 오르는 것은 스테인리스 숟가락이다. 최근에는 수저에 계급론이 불거져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금수저들이 갑질을 하는 오만함을 접할 수 있고 금수저나 은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흙수저들의 가슴 시린 애환도 종종 등장한다.
숟가락은 흥겨울 때는 밥상을 두드리는 타악기가 된다. 작거나 큰 밥상에 둘러앉아 혹은 선술집에서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다가 흥이 나면 저절로 수저로 장단을 맞추며 음식이 놓인 탁자를 두드리게 된다. 식구들이 밥상에 모여 앉아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밥을 먹을 때 나는 소리는 정겹기만 하다. 가뭄에 기다리던 단비가 내려 ‘찰찰찰’ 내 논으로 들어가는 물소리처럼.
어린 시절에 갑자기 열이 나고 아플 때 어머니는 숟가락에 가루약과 물을 조금 넣고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녹여서 주시곤 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어머니다. 어머니 제사를 모실 때 신위(神位) 앞에 놓인 메를 한 수저 떠내고 혼을 부르며 구르는 수저 소리는 마치 어머니가 묵언으로 격려해주시는 말씀처럼 가슴을 울린다. 20층 높이의 아파트 한가운데서 산사(山寺)의 종소리를 듣는 것처럼 먹먹해진다.
주방에서 요리할 때 간을 맞추며 음식 맛을 볼 때나, 혹은 고춧가루· 간장 ·소금 ·기름· 깨소금 등 양념의 양을 가늠할 때도 숟가락이 없으면 불편하다. 밥상을 물린 식구들의 수저를 깨끗하게 설거지하고 수저통에 거꾸로 꽂아놓은 모습은 마치 오선지의 악보를 돌돌 말아서 수저통에 꽂아놓은 것처럼 금방이라도 음악이 울려 퍼질 듯한 기세다.
고대에는 숟가락이 하도 커서 저걸로 어떻게 밥을 먹었나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숟가락, 주걱, 국자의 기능과 역할이 구분되지 않고 혼용된 때문이 아닐까? 음식을 먹을 때는 나라와 문화에 따라 손가락이나 도구를 사용하지만 유독 숟가락과 젓가락을 병용하는 것이 한국인의 특징이다.
큰 시험을 앞둔 아들이 새벽밥을 먹고 도서관으로 서둘러 나간다. 아들이 아침밥을 급하게 먹고 내려놓은 수저를 바로 치우지 못하고 멍하니 한참을 바라볼 때가 있다. 가지런히 놓인 수저를 보면 아들 몸을 보는 것 같아서다. 숟가락의 둥근 머리가 공부로 옥죄는 아들 머리를 닮았고, 긴 몸통은 마른 체형의 몸통인 아들을 닮았다. 그 옆에 놓인 젓가락은 ‘11자’ 두 다리로 ‘종종종’ 걷는 아들의 다리를 닮은 것 같다.
밥을 먹고 난 빈자리는 부산하다가도 허전함이 묻어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먹고사는 일이 사는 일이고, 살기 위해 먹어야 하니까 수저의 움직임은 살기 위한 필수적인 동작이다. 매일매일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그릇과 부딪혀 나는 수저 소리는 살아있다는 생의 찬가이자 삶의 즉흥 연주곡이 아닐는지. 마치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Radetzky March)’을 듣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근질거리며 손뼉을 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우리 집 식구들은 국물 있는 국이나 탕을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숟가락이 필수다. 허름한 국밥집에서도 나그네에게 지친 몸을 뜨겁게 녹여주느라 숟가락은 쉴 새 없이 바쁘다. 어찌 보면 숟가락은 봉긋한 손등을 닮았다. 그렇다고 부드럽기만 할까. 감자 싹을 도려낼 때 사용하는 반쯤 닳은 놋숟가락은 날카로운 칼날을 가졌다.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칼날을 휘두르지는 않는다.
사자성어 중에 좋아하는 단어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이다.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뜻이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돕기는 쉽다는 말이다. 작은 힘이 모이면 큰 힘이 된다. 숟가락이야말로 음식물을 나르며 생명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고 힘들 때는 힘을 합해서 살라는 지혜까지 덤으로 주는 고마운 도구가 아닌가.
일이 잘 안 풀리고 성과가 덜 날 때는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말로 위안으로 삼아 힘을 내기도 하고, 다된 일에 약간만 거들고 슬쩍 공만 가로채려는 얌체 같은 사람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다’고 빗대어 말하기도 한다.
누구나 예외 없이 살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사는 일이고 보면, 숟가락은 밥숟가락 놓고 저승으로 가서도 제상에 오르는 살가운 도구이다. 숟가락은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적 존재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