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을 마무리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한 해는 아이 혼자 보낸 시간이 아니라,
가정과 학교, 그리고 주변 어른들이 함께 아이를 키운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이는 처음으로 ‘혼자 판단해야 하는 사회’를 마주하기 시작했다.
누가 옆에서 바로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 상황,내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들릴지 스스로 가늠해야 하는 순간들. 부모 역시 아이와 함께 그런 장면을 처음 겪게 된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알게 된 건, 이 시기의 아이에게 부모가 해주는 말은 행동을 바로잡는 말이 아니라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말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다음에 비슷한 순간을 만났을 때 아이 스스로 덜 불안해질 수 있는 기준을 남겨주는 말.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공개수업에 부모로서 참여한 날이었다. 수업중에 첫째의 낭랑하고도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이 불렀는데 왜 자리에서 안 일어나지?”
옆에 친구가 선생님의 호명에 반응하지 않는 걸 보고 그저 궁금해서 한 말이었지만,
교실에서는 그 친구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말이었다.
지켜보는 내가 안절부절하고 있는 사이에, 담임선생님이 아이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그건 네 마음속 생각으로만 두면 돼. 모든 생각을 다 말로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집에서도 같은 말을 다시 건넸다.
솔직함이 나쁜 건 아니지만, 함께 있을 때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도 있다는 것.
아이도 조금씩 그 경계를 배워가고 있다.
입학한지 한해가 되어가지만 첫째는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는게 힘들다.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이 나올 때도 있다. 짜증을 내면서 더 잘거야 라고 이불을 다시 덮어쓰는 첫째를 보면서 어느 날 숨을 가다듬고 잔소리 대신 이야기를 꺼냈다.
“티라노사우루스도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어서 꼬리를 이불 속에 숨겼대.”
공룡을 좋아하는 첫째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이불 사이로 비어져 나오더니 천천히 첫째의 웃는 얼굴이 햇빛처럼 떠올랐다.
아이를 깨우는 방법도, 결국 아이의 마음에 닿는 언어를 찾는 일이라는 걸 배운다.
놀이시간에 있었던 일도 있다.
“3학년 형이 따라오라고 팔을 잡아끌었어.”
순간 마음이 철렁했지만, 아이는 덧붙였다.
“그래서 싫다고 말하고 다른 데로 갔어.”
그 말에 나는 먼저 잘했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차분하게 덧붙였다.
“다음에는 꼭 선생님께도 이야기해.”
엄마가 먼저 놀라거나 목소리를 높이면 아이의 기억 속에는 ‘위험한 순간’만 남는다. 아이의 대응을 인정해 주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열심히 했는데도 단체로 선생님께 함께 혼났던 날.
“나 잘했는데 왜 같이 혼났어.”
그 말에는 억울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단체 수업에서는 선생님이 한 명씩 구분해서 말하기 어려울 때도 있어. 그래도 네가 열심히 한 건 없어지지 않아.”
아이에게는 억울한 마음을 집에 와서 말해도 괜찮다는 걸, 엄마는 그 마음을 알아준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첫째는 엄마가 알아주면 다시 금방 의기양양해지는 아직 여덟살, 초 1 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의 학교생활은 아직 연습 중이다. 첫째도 나도 부지런히 함께 연습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