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층과 미니멀라이프의 상관관계

by 빛나는 지금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다. 그리고 왼쪽 방향으로는 쓰레기장이 있는데 아이들이 놀이방 창문에서 "엄마"하고 부르면 서로 큰 목소리나마 대화가 될 정도로 가까운 거리이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는 쓰레기장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보니, 쓰레기장이 보이고, 들고 나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지척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의식하느라 낮에도 놀이방 블라인드를 내려야 하는 불편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파트 1층의 장, 단점은 낮과 밤처럼 명확한 것 같다. 나라고 다르지 않아 어느 날은 1층의 좋은 점에 감탄하면서 물개박수를 치다가 또 어느 날은 내 집에서 옷도 마음대로 못 입네... 하며 푸념을 하기를 몇 번 반복했었다.


결론은 아파트 1층살이는 좋다.

나무와 흙과 가까운 자연친화성. 따로 벽에 걸 풍경화가 필요 없이 창문전체를 채운 나무들 그 자체가 액자가 되는 거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아도 지상이든, 지하든 어디든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편의성. 무엇보다 아들 둘이서 한 편의 "정글" 드라마를 찍고 공룡만화를 두어 편 찍어도 괜찮은 1층 집놀이터.


그리고 특장점이 있으니 쓰레기장과 가까운 아파트 1층은 미니멀라이프의 초기단계에 최적화되어 있는 곳이다.

만약 내가 1층, 그것도 쓰레기장 가까운 곳 1층에 자리잡지 않았다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미니멀리즘을 우리 집안으로 불러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침대, 식탁, 소파, 책장, 서랍장. 버리거나 기증한 가구들은 다들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먼저 새 주인을 찾고(혹은 버리기로 결정하고) 내부에 든 물건을 싹 비운다. 최대한 가벼운 무게로 만든 다음 천천히 밀어서 현관밖으로 내어놓는다. 새 주인을 만난 물건이라면 대부분 용달트럭이 그다음 행선지가 되었고 버리기로 한 물건이라면 품이 훨씬 더 드는데 바로 쓰레기장까지 밀고 가는 일이었다.


책장의 경우 책을 모두 비우고 두 손으로 밀었을 때 밀리기 시작하면 일단 작업용 목장갑을 끼었다. 그리고 천천히 현관 쪽으로 밀면서 조심스럽게 중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현관을 나서서 이제 쓰레기장 옆에 대형폐기물을 모아두는 곳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목적지까지 밀어붙이는 신체적 강인함과 인내. 그리고 주변의 시선을 개의치 않을 수 있는 무던함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덩치 큰 가구는 무게도 무게지만 옮기면서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을 쓸고 지나가면서 내는 소음이 만만찮았다. 물론 내가 의식을 하고 있으니 더 크게 들렸을 수도 있지만 책장을 밀고 가는데 계속 바닥에서 들려오는 "드르륵" 소리에 귀 끝까지 발개지고 옮기는데 소요된 5분 정도의 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맞은편 동에 소리가 부딪혀 울림이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고 다 옮긴 후에 이마를 훔치며 혹시나 위층에서 누가 항의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 두리번거리며 종종걸음으로 돌아왔다.


소리를 제하고라도 밀고 끄는 품새도 그야말로 어린아이가 자기 몸집의 배가 넘는 짐을 어쩌지 못하고 끙끙대는 모습하고 비슷했으니 놀이방에서 끌었다가 밀었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하면서 씨름하는 엄마를 보면서 두 아들이 창문에 매달려 연신 웃어댈 때면 나도 허탈하게 웃다가 얼굴이 빨개졌다가 했다.


남편의 도움을 받으면 더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덩친 큰 가구들을 대부분 나 혼자 쓰레기장으로 옮겼는데 이유인즉 남편과 같이 하면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미니멀라이프의 방향에 동의는 하지만 멀쩡한 가구를 왜 버리냐, 우리가 새냐, 둥지를 파괴하게, 조금만 더 놔둬봐라. 더 쓸데가 있다. 놔두면 내가 나중에 버리겠다... 등등의 말에 설득되고 나면 물건 비우기는 진척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단 먼저 남편에게 "이러저러해서 이 가구를 비워야겠다 ( 중고마켓에 팔아야겠다/ 기증해야겠다) "해서 이야기를 나눈 후 남편이 " 괜찮은 생각이다!"라고 동의를 하고 나면 바로 주말을 이용해서 물건을 정리했다.


잔짐을 비우고 현관까지 밀고 나간 다음, 공동현관을 통과하여 쓰레기장까지의 여정은 평상시에는 3분여도 걸리지 않았지만 가구와 함께라면 길고 긴 노동의 시간이었다. 1층에 살았기에, 그것도 쓰레기장이 가까이 붙어있는 1층이었기에 나는 혼자서도 그 큰 가구들을 내어놓을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실제로 추진할 수 있었다. 만약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서 텅 빈 엘리베이터임을 확인하고 가구를 먼저 안으로 옮긴 다음 멈추지 않고 1층까지 쭉 내려가기를 간절히 소망하다가 다시 엘리베이터문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가구를 다시 밖으로 빼내고.

그 모든 과정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순간 아마 가구 버리기는 진즉에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1층이기에 빠른 시간 안에 물건과 가구를 정리하는 것이 모두 가능했다.

1층이라는 우리 집의 위치와 쓰레기장은 내 미니멀 라이프의 가장 큰 원동력 중의 하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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