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두 번째 삶의 시작.
결혼 후, 주말 부부 2년, 이후 서울 외곽 오래된 빌라 전세살이 8개월여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보낸 11개월을 마치고 뱃속에 둘째를 품고 한국땅에 도착했을 때 우리에겐 돌아갈 집이 없었다. 다만 이스라엘로 떠나기 전 정리한 집의 전세금이 타국생활의 또 다른 분명한 증거인 듯 몇천만 원 정도 줄어든 상태로 통장에 남아있었다.
아직 입덧이 심한 상태로 부랴부랴 내려온 친정에서 늦은 밤 친정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에 가볍게 밥을 말아 입덧 시작 후 몇 달 만에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은 그제야 이어가려던 이스라엘에서의 학업을 중단하고서라도 한국에 오길 잘했구나라고 안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작된 친정살이.
입덧은 여전했지만 엄마의 밥을 먹으며 며칠 푹 자며 여독을 풀어가던 시점에 우리의 다음행보를 고민하며 단연 첫 주제는 어디서 살 것인가였다.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조금 더 천천히 우리의 미래, 당시의 재정과 상황,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남편과 찬찬히 이야기 나누며 다음 거처를 찾아보아도 되었을 텐데 그때는 그런 시간을 스스로와 가족에게 허락하지를 못했다.
이제 둘째도 태어날 텐데 어디서 살 거냐, 전세가 웬 말이냐, 이후 재정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해 갈 것이냐, 이런 질문들은 친정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의 표현임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내 안의 불안과 두려움을 자극하고 막막함을 키우며 몰아세우는 큰 부담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상황과 바람을 살펴볼 여유도 없이 불어닥치는 바람에 맡겨버리듯 친정엄마가 사시는 아파트의 다른 동 1층집을 덜컥 계약하게 되었다. 내 고향에 대해 거의 무지한 남편이나 지금껏 살면서 집을 계약하거나 하는 큰 결정을 스스로 내려본 적이 없는 나이 많은 어린이 같았던 나나 부동산 계약등에 참으로 무지했다. 물론 집 매매야 부동산에서 일러주는 대로 진행하면 되지만 이후 우리 재정을 한참 넘어서는 돈을 대출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친정엄마의 도움도 받아야 했다.
이후 몇 년여간 우리 스스로 우리에게 맞는 집을 구하고 우리의 삶을 독립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채무감과 실패감은 크든 작은 나와 남편을 옥죄는 벽처럼 느껴지곤 했다.
미니멀라이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집이라는 공간이 실은 물리적 형체 그 이상임을 실감했다. 집은 단순히 큰돈을 주고 사는 재화 그 이상의 의미로 한 사람과 한 가족의 삶의 모양과 흐름을 만들어가는 틀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담겨있는 많은 이야기들은 이 집에 살기에 가능한 것들이었고 현재도 열심히 대출을 갚고 있는 우리 집은 나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실패를 묵묵히 담아내는 그릇이요 배경이 되어주었다.
지금의 집은 내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이요, 내 마흔 줄 사춘기의 시작이요, 그리고 내 꿈의 시작이다.
그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