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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 Aug 10. 2023

슈퍼죠죠 말고 슈퍼죠죠 잉글리시

시작은 엉뚱하게

슈퍼죠죠 말고 슈퍼죠죠 잉글리시로 검색해


TV를 켜면 내가 남편에게 매번 외쳤던 말.

그럼 남편은 극성이란 표정을 지었다.


슈퍼죠죠는 키즈애니메이션인데 유튜브에서 핑크퐁이나 아기상어 같은 동영상을 검색할 때 함께 피드로 뜨길래 한 두 번 보여주었더니, 아이가 한동안 푹 빠져서 보았었다.

디지털미디어 노출이야 늦을수록 좋다고 하지만 우리는 불가피한 이유로 아이에게 상당히 일찍 핸드폰과 태블릿을 쥐어주게 되었다. 세상에 불가피한 것이 어디 있냐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에겐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시기가 있었다.


처음 노출했던 동영상은 블루래빗의 동요 동영상이었는데 10분 남짓한 영상으로 익숙한 노랫말과 귀여운 토끼와 동물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핑크퐁과 아기상어도 보여주기도 하고 뽀로로도 보여주었는데 한 두 번 보여주기 시작하니 외출해서 아이가 보채기 시작하면 보여주면서 노출 빈도가 늘어나게 되었다. 횟수가 늘어가니 걱정되는 마음에 보여주지 않으려 해 보았지만 원칙도 없고 요령도 없어 급하면 다시 핸드폰을 쥐어주고 말 그대로 아노미 상태였다.


그러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이왕 보여줄 거면 영어 동영상만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저 영어에 조금이라도 친숙했으면 하는 단순한 속셈이었다.




계획대로 진행한 일이 아니다 보니 안정화될 때까지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디지털미디어에 대한 첫 노출은 빨랐으나 아이가 24개월이 될 때까지는 가능한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두 돌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봐도 아이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인터넷이나 TV에서 전문가들이 24개월까지는 보여주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24개월이 지나고서는 좀 더 유연하게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면, 친정에 가면 보여주는 식이었다.


친정에 가는 일이 많아야 일주일에 한 번, 때론 못 가는 주도 많아서 동영상을 보여주는 일이 불규칙했기 때문에 노출빈도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친정에 갔을 때 아이가 동영상을 한 시간 정도를 본다고 해도 크게 신경 쓰질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27개월 되던 친정 엄마 찬스를 쓰고 싶어 친정 근처 도보 3분 거리로 이사를 하면서 생겼다. 이사하고 몇 달 동안은 주중엔 거의 매일 친정에 저녁을 먹으러 가게 되었는데 아이가 친정에 가면 동영상 보았던 걸 기억해서 매일 동영상을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우리 집에서는 TV를 켜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가 친정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집에서도 TV를 보고 싶어 했다. TV를 켜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미 한번 아이가 TV 액정을 깨 먹어 큰돈을 들여 수리한 TV 액정을 또 날려 먹고 싶지 않고 싶었던 것도 있다.


이 시기는 처음부터 어떠한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어쩌다 보니 아이에게 동영상을 노출한 이후로 한 두 번 보여주던 것이 일상처럼 자리 잡게 되는 과정에서 막연한 불안감이 컸던 것 같다. 아이가 동영상을 너무 많이 보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는데, 가끔 남편이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애는 동영상을 너무 많이 보는 것 같다고 말하면 이유 없이 짜증이 났다.

아마도 도둑이 제 발 저린 심정이었겠지.


그러다 결국 집에서 보여줄 동영상으로 '유튜브 같은 거 말고 다른 것 없을까' 하고 대안으로 찾아낸 것이 '튼튼영어'였다. 작년 초 집 근처 아웃렛 키즈카페에 갔다가 근처 튼튼영어센터에서 받아왔던 팸플릿이 생각났다. 당시에 튼튼영어 수업을 받고 싶었지만, 남편은 한국어도 못하는 애를 무슨 영어냐며 반대했었다. 하긴 '아빠' 정도 말고는 할 줄 아는 말이 없는 애한테는 무리일까 싶어 쉽게 포기했던 기억이 났다.

튼튼영어 규리펜, 매직박스와 책들

나는 그 즉시 당근마켓 앱을 켰고, 열심히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꽤 괜찮은 가격에 나온 튼튼영어 책과 교재를 발견했다. 사용법이나 내용도 잘 몰랐지만 대강 우리 애가 봐도 될만하다 싶어서 판매자분에게 채팅을 걸었고, 마침 퇴근하던 남편에게 거래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가 작년 5월 즈음이다. 아이가 28~29개월 무렵.

이때 내가 '튼튼영어' 를 당근에서 살 때는 이런 생각이었다.


'그래 내년이면 영어유치원을 갈 거니까 가기 전에 미리 보여주면 좀 더 익숙해지겠지'


정말 김칫국부터 마셨다.

그렇게 나의 '엄마표 영어'는 참 엉뚱하게 시작되었다. 그것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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