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라면은 있어도 흔한 라면은 없다.
요란하고 품이 많이 드는 요리를 잘하지 않는다. 요리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걸 알기에 기량을 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싶은 생각도 잘 들지 않는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우리 곁엔 간단하게 요리 할 수 있는 라면이 있지 않은가? 물론 이글을 읽는 어떤이는 '라면이 요리냐?'고 반문할수도 있을 것이다.
기원전 헤라클레이토스는 '누구든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이문열의 삼국지 첫장에 '사람은 같은 냇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고'로 변형되며 응용되었다.
흐르는 강물도 매순간 다른 강물 이거니와, 사람도 시시각각 온 세상의 만물들로부터 외형과 정신에 영향을 받아 매순간마다 변해간다는 정도의 의미다.
그러나 이 말을 너무 어렵고 무겁게 해석하고 받아 들일 필요는 없다. 내가 또 응용해 사용해 보자면(이미 제목에 적었지만)
'사람은 같은 라면에 두번 젓가락질 할 수 없다.' 정도 되겠다.
진짜로 라면도 매번 같은 라면이 아니다. 우선 라면이 유통되거나 공기에 노출된 누적 시간에 따라 면의 상태가 변하게 된다. 아무래도 공장에서 막 찍어낸 라면 면의 상태가 더 탄력적이고 수분에 대한 흡수성이 좋다. 같은 방법으로 같은시간에 생산된 라면도 여정에 따라 그 상태와 맛이 달라지게 되는것이다.
또 라면에 들어간 물의 양과 끓인 시간이 같을 수 없다. 유행인 한강라면이 기계적인 패턴으로 거의 동일한 라면을 끓여낸다 한들, 기계에서 라면을 꺼낸 시간과 입으로 들어간 시간이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 시간의 차이는 한그릇에 담긴 라면 맛의 변주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리고 먹는 곳의 온도 또한 매번 다르다.
그러니까 진실로 이르노니, 그 어떤 순간의 라면도 당신과 처음 마주하지 않는 라면은 없는것이다. 값싼 라면은 있어도 흔한 라면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