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반복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생텍쥐페리의 명저 [어린왕자]라는 책을 읽을때마다 나이별로 감상이 달라지는 책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지속적으로 읽어보고 있습니다.
저에게 어린왕자는 10대엔 특이한 동화로, 20대 때에는 순수함에 대한 질문으로, 30대때는 저의 유년을 돌아보게하는 회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이글을 끝마치고 이제 40초반에 다시 읽어보려 하는데 이번엔 어떤 감상으로 읽히게 될지 궁금한 지금입니다.
아이들의 책을 보면 '연령별 권장도서' 가 있습니다. 글자를 읽는 능력의 유무나, 책의 구성과 내용에 따라 연령을 구분해 놓은것 입니다.
그러나 이 구분은 일반적으로 분명 책 선택에 도움을 주나 절대적 구분값이 되는것은 아닙니다. 앞선 2장에서 이야기한 내용에 추가해 이야기 하자면 동화책들은 전체가 아닌 부분적으로도 이야기기 되고 감상을 남길수 있는 결과물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어른들이 어린왕자를 나이별로 읽을때 다른 감상이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일일것입니다.
"우리 아이는 아직 글자를 못읽어 이정도 책은 못보는데..."
주변 지인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했을때 몇번 들은 이야기 입니다. 이번 장에서 이야기 하고싶은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그런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입니다.
동화책중엔 텍스트가 없는 동화책들도 있습니다. 칼데곳 아너상을 받은 데이비드 위즈너의 [구름공항] 이라는 책은 아이가 현장학습을 갔디 작은 구름을 만나 구름 세계로 여행을다녀오는 이야기입니다. 책의 구성에 글자는 구름공항의 간판에 써져있는 글자이외 대사등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림과 컷 구성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다른 책들도 있습니다. 제리 핑크니의 [사자와 생쥐] 도 의태어 정도의 몇글자를 제외하면 동화책에 글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급된 책들 이외에도 텍스트가 없는 동화책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텍스트가 없는 동화책들은 텍스트를 이야기 전개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도 접할 수 있습니다. 아이와 책을보며 아이는 모르는 지식적 부담을 본능적으로 느끼지 않을수 있고, 어른도 텍스트가 많은 동화보다 더 수월하게 이야기를 아이에게 해줄수 있는 영역이 생겨 나게 됩니다. 물론 그만큼 책을 읽어주는 부모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되겠지만, 연극을 하는것처럼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구름이 어떻게 되었지?
"생쥐가 사자를 어떻게 구한거야?"
하는 식으로 상황을 아이에게 질문하는 식으로만 이야기를 진행해나갈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소설같은 책은 중간부터 읽으면 그 흐름을 다 파악 할 수 없지만, 호흡이 짧은 책들 특히 그림이 있는 영유아 동화책은 한페이지만 읽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지 대략 파악 할 수 있고 그 한장만으로도 같이 이야길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덧에서 독서의 의미는 시작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독서수준을 내려보면 유아시기 아이들을 위한 촛점책들이나 촉감놀이를 위한 책들도 있습니다. 이 책들이 텍스트가 앖다고 하여 그 역할이 없는것은 아닙니다. 각자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것 뿐이지요. 책을 읽는 버릇을 가진다는 것의 의미를 꼭 텍스트를 접힌다는 관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텍스트가 없는 만큼 반대로 책의 상상력이 열릴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