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즈 블루스

1. 불안은 나의 빠워

by 리정



1. 나의 특기는 나태입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지켜온

근면성실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것은 나태다.

나는 꾸준히도 나태했다.


놀거 다 놀고 모른척 미뤄만 두다가

녹화 전날이 되서야 대본을 붙들고

밤 새는 폐인이 된다.

진심을 전하고 싶어 말의 단어를 고르다 고르다

결국은 메시지를 읽씹하는 싹수없는 년이 된다.

버려야지 버려야지 했는데 결국은 싸매고 있다가

갖다 버리는 길에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사야지 사야지 했는데 맨날 미루고 미루다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 샴푸가 없어서

비누로 머리를 감고 말았다.

쓰고 보니 어찌하다

지리멸렬한 인간으로 완성되는 중이다.


그게 뭐든 무엇으로라도 완성되고 있다는

자만이 들어, 내심 뿌듯하다.



2. 불안은 나의 힘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버텨온 근간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것은 불안이다.

나는 꾸준히도 불안했다.


뭣 좀 되는가 싶었는데 제자리에서

나태함만 증가시키다가

남들이 성장이란 것을 이뤄낼 때

나 또한 같은 속도에 맞춰 살고 있었으나

그들은 그 속도에서도 대단하게 가속을 붙여

자신의 무언가를 성립했을 때

그 나이의 차이가 점점 커져가며

‘나 저 나이 때 뭐 했더라’라는

자조적인 궁극의 질문에 맞닿을 때

나는 불안의 맥스를 경험해 왔다.


그럴 때 나는 뭐라도 하려고 했다.

하여 불안은 나의 가장 강력한 발정이다.

끝은 못 봤어도 거실 바닥에 자빠져 있는

몸을 붙들고 일어나 모니터를 켜고

이렇게 뭐라도 적으며 ‘할 수 있다’ 자위해 왔다.


불안은 나의 힘.

원동력이란 말은 뭔가 창피함이 들어

적절하지는 않다.

내 불안의 톤앤매너는 질투가 아니다.

쓰고 보니 나란 인간의 근간은 불안인 것 같아

'아 그래 사람이 근간은 있어야지,

근간이 이렇게 확실하니 붕괴될 일은 없겠구나'

이마저도 내심 뿌듯하다.


나란 인간, 대단한 년.



3. 삶이 스니커즈를 고르는 일처럼

설레기만 한다면


스니커즈를 고를 때 맘껏 설렌다.

그때의 나는 새벽의 수산시장 안에서 요동치는

비릿한 물냄새처럼 활기차다.

맘에 드는 녀석을 골라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며칠 고민하다가도 내내 신경을 맴돌아 결제를 쓱-

산 넘고 물 건너 나에게로의 배송을 기다리는 일은 마치 성공해본 적 없는 다이어트가

한 방에 이뤄진 듯 판타지의 궁극점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한 두어 달이 지나고 때가 묻기 시작하면

이내 아둔해진다.

그럼 또다시 설렘을 느끼기 위해 애지중지하던

1번 스니커즈를 저짝으로 밀고 그 자리에

2번 스니커즈를 입점시키기 위한

온라인 쇼핑을 시작한다.


어쩌면 삶이란,

스니커즈 고르는 것처럼 설렘으로 시작해

무덤덤이 찾아오면 그다음 스니커즈를 고르며

또다시 설렘을 찾아가려는 도파민의 무한굴레,

무한반복의 일이란 생각이 든다.



4. 당신의 블루스는 누구일까


재즈는 아는데 블루스는 모른다.

흑인들의 소울이 담긴 음악이 재즈라고 하던데

블루스는 그보다 깊은 비극이 있어

슬픈 음악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음악을 해 온 아는 동생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나, 있잖아 나한테 블루스는 - 우리 아빠야’


나는 그때 그 말이 왜 그리 슬펐는지 모른다.

몇 년이 지나도록 머릿속에 선연한 문장.

그에게 아버진 깊은 비극이 있어 슬픈 존재였으려나마음 서걱 거리게 구슬픈 음악이었으려나.

재즈보다 깊은 슬픔, 당신의 블루스는 누구일까



5. 스니커즈 런런런


스니커즈를 신고 뛰어다닌다.

- 사전 리허설

“타임테이블 기준 10분 딜레이입니다!

“오늘도 새벽 4시 퇴근각이네요" (다크서클)

- 대기실 대본 리딩

“엠씨님 피피엘 큰 게 하나 들어와 가지고요.. ”

“멘트 하나 치고 갈 수 있을까요?" (쭈굴비굴)

- 인터뷰룸

“컷! 야 그 멘트 방송에 못 쓰잖아! 통편 당할래?“

“내가 하는 멘트 고대로 다시 따" (분노조절)

- 스튜디오

“큰일 났다, 피디님 이거 룰 빨리 바꿉시다”

“안 그럼 재네 팀 탈락할 거 같아" (다중인격)

- 편집실

“아까 하품하다 눈가 훔치는 컷 있었잖아?”

“그거 여기 인터뷰 뒤에 붙이면 어때?”

“울컥해서 되게 사연 있어 뵈지 않아?"

- 사무실

“잣 됐다, 오늘 방송 사고 날 거 같은데?”

“종편도 다 못 할 듯. 방송 나가고는 있냐?”

“씨* 미치겠네!"

- 회의실

“시청률 0.1이나 떨어졌네”

“다음 주는 뭘로 또 장사를 하나”

“아니 음원차트 1위를 해도 부족한 거야? “

“우리가 무슨 기계냐? 말만 하면 찍어내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방송날을 기점으로 돌아가는 나의 삶의 패턴.

방송이 나가고 있는 도중에도

실시간 진행 중인 종편.

한 끼도 먹지 않았지만

밥 생각이 1도 나지 않는 긴장의 쫄깃함.

그 시간을 버티게 하는 에너지드링크와 커피

3일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피부가 되어버린

나의 추리닝과 삼색 쓰레빠.

그 와중에도 밀려드는

업무 전화와 출연자들의 각종 민원과

후배들의 심리상담까지...

역시 이 놈의 일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더라.


치이고 까이고 부대끼고 엎어뜨리고 날아치고

1시간짜리 방송 하나 만드는데

평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당겨 쓰는 것 같아

왠지 늙어서는 통감을 잃은

무감각의 노인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나는 그 불안한 지속성이 좋았다.

언제 누가 어떻게 튈지 몰라 전전긍긍해도

이 현장의 마약 같은 중독성이 미친 듯이 좋았다.


시청률로 인생을 평가받는 정글 같은 예능 바닥에서살아남은 20년 차 방송 작가.


나에게 있어 스니커즈란,

필수 불가결의 머스트 아이템.

먹고살기 위해선, 스니커즈를 신어야만 한다.



6. 스니커즈 블루스


온종일 스니커즈런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하얗고 뽀앴던 흰색 스니커즈는

누군지 알 수도 없는 발자국이 찍힌 채

온갖 얼룩으로 누추하게 누워있다.


오늘은 누구에게 말로 밟혔더라,

아 말로 싸대기도 몇 번 맞은 듯했는데...

카톡 창을 열어 아직 답을 다 보내지 못한

업무 메시지를 본다.

하나 둘.. 열.. 열둘...

하루종일 배터리가 닳도록 누군가와 소통했는데

나는 진정 누구와 대화를 나눈 걸까

나는 지금 전화를 걸고 싶은 사람이 있나.

그마저도 나 스스로 귀찮아져 버렸나


빛나는 조명과 카메라에 비친 그들 앞에서

웃는 척했지만 모든 것이 끝나고 나면

실상 남는 것은 공허함.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막차를 탄 것 같은 기분.

말할 수 없는 오묘한 공백이

새벽의 나를 집어삼킨다.


현관에 널브러진 스니커즈를 본다.

분명 새벽 출근을 할 때까지만 해도

저 스니커즈는 새삥이었는데

20시간 만에 너덜 해져 헌 것이 되어버렸다.


하이힐이 아니라

스니커즈 고르는 내가 가끔은 씁쓸해서 -

그것이 나의 유일한 사랑이란 현타가 들 때

내가 조금은 처량해서 -

나는 나를 사랑하는데

그런 내가 사실은 안쓰러워서 -

신발장 속 수많은 스니커즈에 묻어난 흠집과

흔적들이 지금껏 내가 남긴 나의 기록이라서 -

결국 그것이 내 삶의 블루스 같아서.


나는 스니커즈를 닮았고

스니커즈를 신는 나는,

나의 블루스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먼 훗날 어쩌면

이런 나 자신에게라도

'그래도 너 꽤 괜찮은 인간이더라"

말해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까 봐

이 글을 기록하기로 한다.


한없이 나태하고

끝없이 불안한

자신을 사랑하는 나에게,

그리고 이러한 나와 똑 닮은 너에게.


“네(내)가 하고 싶은 말, 대신 내(네)가 적어볼게 “


우리 이렇게 같이 저물자.

너와 나의 스니커즈 블루스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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