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의 자리를 기억해
A의 자리는 항상 같았다.
햇빛이 가장 많이 드는 곳
인적과 소음이 가장 적은 곳
우리는 모두 그의 자리를 알고 있었다.
때론 그를 위한 자리를 꾸며볼까 시도했었다.
하지만 A는 자신의 공간에 작은 변화도 싫어했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A
그는 어떤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창밖을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아주 가끔 주변을 배회할 뿐이었다.
내가 있는 이곳은 폐쇄병동이다.
정도가 심한 자폐와 지적 장애
최중증의 발달장애인 A
그에게도 평등하게
매일 같은 하루가 부여된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하루는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못한 듯 보였다.
감옥과 같은 이곳에서도
우리는 A에게 의미 있는 하루를 만들어주려 노력해 왔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A는 아주 작은 소음과 환경의 변화에도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눈에 보이는 물건을 던져버렸다.
좋다, 싫다, 두렵다, 불편하다 등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우리와 많이 달랐다.
A만의 공간에서
타인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불가능한
A앞에 앉아 시간을 보낼 때면 생각해 왔다.
‘너에게 주어진 하루는 어떤 의미니?’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니?’
A도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났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와 차이가 존재했다.
A가 성장하며 그 차이가 더욱 돋보였다.
본의 아니게 A의 가정에도 변화가 시작되었고
결국 가족들 품에서 버려지듯 떠나게 되었다.
때문에 우리와 만나게 되었다.
A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했다.
어느 날이었다.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
A가 존재하는 공간은
다른 이들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평소 앓던 뇌전증의 발작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구조대원이 도착하고도 상황은 정리되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버렸다.
또다시 돌아온 하루 회진에 참여한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하루
A에게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다.
전해 듣기로 그의 장기들은
누군가에게 기증되기로 결정된 모양이다.
잠시나마 A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모든 사람에겐 소명이 있고
A의 삶에도 의미가 있었다.
A는 세상을 떠났지만 몇 사람을 살렸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난 다른 생각을 했었다.
'A로 인해 다른 생명이 살았지만
A라는 생명이 떠난 것은 변함이 없다.'
난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던
A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생각했다.
거울에 비친 지신의 모습도 인지하지 못하던 A에게
삶, 죽음, 존재의 이유와 같은 것들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어려운 개념일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의 A는 어땠을까?
두렵지 않았을까?
매일 같은 삶이었지만 더 살고 싶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지만
그것이 A의 삶과 죽음에 위로가 될까?
아직도 A의 삶의 의미는 모르겠다.
'뭐... 나부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모르니까...'
그리고 이제 허전한 공간이 되어버린
A의 공간이었던 곳을 지나친다.
'너무나 허전해....'
매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던
A를 기억하며 나는 생각했다.
'아마 매일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삶의 의미를 만들고 있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