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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나단 Aug 09. 2023

파퀴아오 프로젝트 2

은밀하고 위대하게 진행하리

어른들은 의욕이 넘치던 내게 일렀다.

“뜻대로 되는 것 하나 없고

사건은 피할 수 없다.”


이상하게 어른들의 말은 딱 맞아떨어진다.

비 오는 날 저녁

자전거 위에 몸을 맡기고, 고가를 달리던 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리 밑으로 미끄러져 떨어진다.

     

"다행입니다. 신경은 다치지 않아 장애는 피했네요."

척추부터 다리까지 이어진 골절과 타박상

당시 가족을 떠나 살던 나

내 의사와 상관없이 가족에게 돌아와 요양하게 됐다.


하루아침에 발 한 짝도 못 움직이고

산송장이 되어 누워있는 내가 하찮고 쓸모없어 보일 뿐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젊음의 혈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수개월 만에 어설프게 걷기 시작했고

빠르게 재활하며 주변인을 놀라게 해 버렸다.

그렇게 난 다시 사회복지사로 복귀했다.


그러나 체중은 10KG 이상 불어 너무 무겁고

온몸의 관절과 근육들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다친 척추와 다리에 약간의 긴장감만 느껴져도

내 몸은 겁을 먹고 움츠려든다.


덕분에 활동적인 움직임은 흉내도 못 낸다.     

물론 몇몇 지인들은

수개월 동안 침대에 묶여있던 날 보고

이만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하지만

나에게 전과 같은 의욕은 없다.

맘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무거운 몸뚱이가 창피하기까지 하다.

‘예전엔 가벼웠는데.....’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예전엔 나보다 큰 사람과도 맞서던 나였는데....’

  

"이런 동작, 이런 운동은 위험하니 피해야 합니다."

날 담당했던 의사 선생님

마음만은 하늘을 날고 있는

부산스러운 내가 걱정되는 듯

상황과 사례를 손으로 꼽으며 주의를 준다.


난 마음과는 다른 몸 때문에라도 그의 명령을 철저히 따른다.

하지만 재활과 맛이 간 몸뚱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지속하는 운동들은 재미도 없고 피곤할 뿐이다.

 


무기력한 삶을 연명하던 사회복지사

그 앞에 한 꼬마가 나타났다.

사실 수많은 꼬마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또래보다 너무나 작은 꼬마

왠지 어린 내가 생각난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너무 밝다.


할머니와 단칸방에 살아가는 아이의 꿈은 경찰

자신이 할머니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왠지 눈에 밟히는 아이는 배우고 싶어 하는 것도 많다.


“할머니 지키는 건 일단 어른들한테 맡기고 여기 앉아봐!”

요보호 아동의 교육이나 자기 계발을 위해

매달 보조금이 제공되는 서비스의 대상자가 선정되던 날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다급하게 사무실을 나선 나였다.


“일단 배우고 싶은 거 이번 주까지 생각해 봐

다음 주엔 또 할 게 있으니까”

하지만 다음 주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꼬마는 대답한다.

“저 복싱장 다닐 거예요!”

이 녀석 내가 며칠 전 신청서를 들고 와 흘린 정보를 듣고

집 근처 체육관까지 봐둔 듯하다.


한 번의 사건 때문에 나라를 잃은 듯

자신감과 의욕이 꺾여버린 내가

꼬마를 보고 이상하게 의욕이 생긴다.


‘예전 동경하던 필리핀 영웅이 한국에서 나오게 생겼네’

땀 냄새가 풍기는 익숙한 공간

그곳에 아이를 맡기고 나온다.

그날부로 작은 아이는 재밌다며

하나의 취미에 꽂히게 되었다.  

“저 열심히 할 거예요!”


‘한창 땀 흘리고 운동할 때 참 좋았는데...’

촐랑대는 꼬마를 보며

사라진 나의 의욕도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맘 같지 않은 몸뚱이와 협상한다.


‘때리고, 부딪히는 운동은 피하라 하셨으니 이건 괜찮겠지?’

난 동내 주짓수 체육관에 이끌렸다.

내 몸과는 이미 협상을 끝냈지만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는 일단 비밀이다.

산송장이 된 내 모습을 기억하며

걱정하던 사람들에게도 비밀이다.

 

전과는 조금 다른 몸뚱이로 방문한 곳

첫날부터 강제로 겸손해진다.

동경할만한 대상들도 다시 생겨난다.

‘이 사람들 몸도 팔 2개, 다리 2개 똑같은데 어떻게 돼먹은 거야?’

이젠 굳고 둔해져 버린 내가 흉내도 못 내는 기괴한 동작들로

내 팔과 다리, 목을 감아버리고

아직 어설픈 나를 바닥에 굴려버린다.


마법같이 날 굴리던 사람들

모두 3년, 5년, 7년을 나처럼 굴렀다고 한다.

‘허리에 감겨있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벨트들 그냥 받은 게 아니구나....’

내 허리에 감긴 깨끗하고 하얀 벨트를 보며

다시 피어나는 의욕과 함께 소박한 목표도 생겨난다.


“새로운 것을 배워왔어요.”

“관장님께 칭찬받았어요.”

“관장님 눈에 들어 생활 체육대회 준비해요.”

오늘도 꼬마는 여러 근황과 함께

고사리 같은 주먹을 뻗어댄다.

아직은 많이 어색하다.

‘요놈 봐라! 너도 아직 어설프구나!’

그런 꼬마를 보면 나까지 즐겁다.


작은 꼬마와의 만남으로

잊고 살던 의욕을 찾았다.

나의 비밀스럽고 소박하지만

위대한 목표를 은밀하게 진행해 본다.

꼬마의 의욕에 존중을 표현하며

서로가 어설프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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