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이 모두 잘 풀렸대도, 인생은 나락이었을 듯

by 위드웬디

결혼 후 애써 모은 재산을 투자 몇 건으로 거의 다 날리다시피 하고,

그 과정에서 남편과 극심하게 다투고,

엄마가 불안과 우울로 무너지는 모습을 아이들이 모두 지켜보았고,

지금은 매달 대출 이자 수백만 원씩 갚아야 하며, 수십억 대출도 조금씩 상환해야 하는 기가 막힌 인생.


그런데도 예전에 대출도 별로 없고, 남편과 시댁에 나름 고분고분하던 때보다 나은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아줌마.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마이너스 통장 잔액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지만, '그래도 옛날보다는 살 것 같다' 합니다.


전에는 자기 결정권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의무감과 압박감 속에서 욕심이 한가득한, 우울증에 빠진 개구리였으니까요.



그때 그 집을 샀다면, 어땠을까?


시어머님이 남편 사주를 보고 오셔서 추천하셨던 그 아파트 단지의 중대형 아파트를 아주아주 무리해서 샀다면 지금 어떨까 상상을 합니다.


집주인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상속 때문에 급매로 나왔던 그 2층 아파트를 샀더라면.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가 멀다는 이유 빼놓고는 마음에 쏙 들었던 그 집을 샀더라면.


그러면 '이사하지 않고 평생 여기서 편안하게 산다'는 제 꿈을 이룰 수도 있었을 것이고, 코로나 시국에 아이들이 학교에 갈 일도 별로 없었으니 넓고 쾌적한 집에서 기분 좋게 잘 지냈을 거예요.


저희가 그 집을 매수하지 않기로 하고 얼마 후, 지지부진하던 재건축 조합이 설립되었고 아파트 가격은 2배로 뛰었습니다. 이제는 복권에 당첨되어야 살 수 있는 집이 되었어요.


당시에도 남편이 회사에서 받아온 대출금을 다 밀어 넣어야 겨우 가능기 때문에, 여유 자금이 없어서 괜스레 지식산업센터 투자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겠지요.

그러면 수십억 원에 달하는 대출 대신 순자산이 있었겠지요.


지금 상황과 똑같이 그 집을 세 주고 지금 사는 곳에 세를 얻어서 산다고 해도 하나도 기가 죽지 않았을 거예요. 대한민국에서 풍수지리가 가장 좋다는 곳에 큼지막한 내 집이 있으니까.


그러면 행복하게 살았을까?


단언컨대 그렇지 못했을 거예요.


거의 확실하게 만날 인상 쓰고,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압박을 주며, 지금 사는 동네가 아닌 엉뚱한 곳에 집을 사놓고 셋방살이한다면서 남편과 시댁을 원망했을 거예요. 행복에 겨운 줄도 모르고.


'내 집이 몇십억 짜리면 뭘 해, 나는 무너져가는 집에서 셋방살이하는데'라면서 곳에 집을 사지 못하게 한 시댁을 망했을 거예요.


남편에게는 다른 집 아빠들처럼 더 많이 벌지 못하고, 더 많이 살갑지 않고, 더 많이 건강 관리 하지 않는다고 툴툴거렸을 거예요.

남편 역시 저에게 른 집 엄마들처럼 우아하지 못하고, 다른 약사님들처럼 많이 벌지 못하고, 다른 집 아이들처럼 최상위권 성적으로 만들지 못한다고 타박했을 거고요.


언제나 그랬듯이.

비교와 남 탓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감사할 줄도 모르고.

심할 때에는 '아이들이 대학에만 입학하면..'이라면서 세상 끝낼 생각에만 빠져서.


양귀자님의 소설 <모순>의 팔자 좋은 언니에 극히 공감하면서, 밖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속 지옥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거라면서 스스로 더 지독한 지옥을 만들면서요.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은 '돈만 없다'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어찌어찌 대출을 추가로 받아서라도 아이들과 함께 굶지 않고 살고 있고,

'이래야 하느니라'라고 날을 세우시던 시어머님은 며느리가 죽기 직전까지 악화된 모습을 보시고는 성정을 많이 누르셨고,

남편과 저는 서로에게 기대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아니, 집안을 이 지경으로 만든 마누라를 쫓아내지 않은 고마운 사람이지요. 저희 친정엄마는 사위를 '부처님 반쪽'이라고 부르십니다.


아이들에게는 매일 고맙다고 말합니다.

전쟁통과 같았던 그 시간을 견뎌주어서 고맙다고요.

엇나가지 않고, 오히려 엄마를 지켜주겠다고 애써줘서 고맙다고요.


아이들이 감당하기 힘들었을 집안의 불화가 가슴속 깊은 곳에 상처로 남아서 평생 따라다닐 수도 있겠지만,

부디 잘 보듬어주고 스스로 단단한 삶을 세워가기를, 부족한 엄마가 감히 바랍니다.


우울증과 시집살이와 육아 스트레스에 질려 스스로 삶을 단축시켰을 수도 있었기에

오히려 '몇 년 후 어떻게 살아갈지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그래서 더 설레고 하루하루가 감사한'

지금이 더 낫다고 가슴을 토닥입니다.


비싼 값 치르고 산다고 농담도 하면서 오늘에 감사합니다.











keyword
이전 18화때맞춰 밥 꼭 먹고, 아프지 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