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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다행으로 이루어진 불행에 부탁합니다

by 위드웬디

3년 전 지식산업센터를 매수할 때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임대를 놓으면 기업으로부터 월세를 따박따박 받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저금리 시대에 인기가 높았던 지식산업센터였습니다.

2020년 이후 주택 투자 규제로 인해 지산 투자에 불이 붙었고요. 상가 투자 공부를 시작하면서 접한 지산이, 마침 분양권에 프리미엄이 평당 수백만 원씩 붙어 거래가 되던 시기였습니다.


2022년 매수 제안을 받았을 당시, 바로 얼마 전까지도 프리미엄 2억 원을 얹어주어도 구하지 못하는 호실 하나가 급매로 프리미엄 1억 원에 나왔다는 말을 듣고 다급하게 매수를 진행했습니다.

나름 입지를 공부했다면서 '거기 위치 얼마나 좋은지 나도 알지.' 하면서 운이 좋다면서 서둘러 계약했어요.


바로 한 달 전에 작은 아파트 두 채를 팔아 여유 자금이 생겼거든요. 다음에 어떤 투자를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좋은 물건을 소개받았다면서 아주 신이 났지요.


잔금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분양권이어서 제때 잔금을 치르기 위해서는 은행 대출을 서둘러해야 했어요.

제가 대표로 있는 1인 법인으로 매수를 해서, 제법 근사하게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대출이 잘 나온다는 은행의 부지점장님을 소개받아 일부러 멀리까지 찾아갔습니다.


상가 투자에 닳고 닳은 분들을 상대해서였는지 부지점장님이 친절하지는 않으셨어요.

7억 원이라는 큰 금액을 대출받아야 하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좋은 위치의 호실을 싸게 매수한다는 생각에 연신 굽실거리며 수많은 서류에 도장을 찍고 서명을 했어요.


대출이 실행되고 잔금을 치를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뿔싸, 대출 실행일 바로 이틀 전에 은행으로부터 부결 통지를 받았어요. 법인의 매출이 적어서였습니다.

이미 매도인에게 2억 원 가까이 되는 계약금을 치르고, 프리미엄 신고해서 분양계약서에 구청 확인까지 모두 받은 상태에서요.


좋은 기회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법인이 아닌 제 개인 명의로 다시 매수를 진행했습니다. 법인에서 개인으로 전매하는 형태로요. 계약서 다시 작성하고, 은행에 찾아가서 개인 명의로 다시 서류 넣고, 분양권에 시행사 도장을 다시 받는 것까지 3일 만에 해결했습니다.

은행 부지점장님이 '부결이 될지 나도 몰랐다. 놀라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라면서 이번에는 적극 협조해 주셨거든요.


혼자였다면 발만 동동 굴렀을 텐데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매수를 제안한 컨설팅 업체 팀장님께 저녁을 사 드리면서 흡족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다행으로, 취득세와 인테리어비까지 10억 원 가까이 들여서 지식산업센터를 매수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달, 미국에서 급격한 기준 금리 상승을 시작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각 나라 무역이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Pixabay


'수많은 불행 중 다행으로 살았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우리네 삶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어려움이 더라도, 결국 가장 밑바탕에 좋은 일이 자리한다면 모두 찮다는 뜻이지요.


3개월 변동 사업자 대출이었기에, 임차료와 대출 이자의 차이를 수익으로 번 기간이 6개월 정도뿐이었고, 이자를 내기 위해 계속 큰 금액을 메꾸어야 했어요.


이제 기준 금리가 조금씩 낮아지고 숨통이 트이려나 싶더니, 임차 업체가 계약이 끝나면 나가겠다고 해서 두 달째 새로운 임차인을 알아보는 중입니다.

은행 대출 만기 연장도 마냥 수월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요.


비록 지산 매수 자체는 수많은 다행으로 이루어진 불행인 것으로 보이나, 이번 만기 연장과 새로운 임차인을 찾는 일은 다행으로 끝나기를 바랍니다.

욕심과 어리석음으로 얼룩졌던 시기를 보내고, 그저 가족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으니,

하늘도 부디 평안을 선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행인 줄 알았던 불행이, 그저 지나가는 에피소드 정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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