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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하는 자체가 살아갈 힘을 키우는 것일 수도

by 위드웬디

학교에 다닐 때, 심하게 경쟁을 하며 다른 학생들을 끌어내리는 친구들이 참 싫었습니다.


아이가 초등 저학년일 때, 자신의 아이를 다른 아이들보다 우수하게 키우고 싶어서 눈을 희번덕거리는 엄마들이 참 싫었습니다.


그저 스스로 좀 더 나은 공부 방법을 찾아가며 해내고,

아이가 올바르고 똑똑하게 자랄 수 있게 내 나름의 방법으로 서포트하고 싶었어요.


악다구니를 쓰면서 어떻게든 자신이 1등이 되어야 한다는 그녀들을 볼 때, 심하게는 메스꺼움까지 느꼈습니다.



세상의 중심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을 멀리하며 나의 방법을 찾아가겠다고 살아왔으나, 단지 경쟁이 싫고 귀찮아서 떨어져 나왔던 건 아닌가 합니다.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애벌레 탑에서 나와 나비가 되겠다고 호언장담하고는, 나비가 되기 위해 날개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버거워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기 위해서는 혼자 떨어져 나왔다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고,

꼼짝도 하지 않고 어둠을 견디는 번데기의 과정도 지나야 하지요.

빛 하나 들지 않는 번데기 안에 언제까지 갇혀있을지 알지도 못한 채, 살을 찢어 날개를 만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은 애벌레가 탑을 쌓아 높이 오르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더 외롭고 고통스러워요.

추운 겨울에는 애벌레 탑 안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게 차라리 따뜻할 거고요.


출처: 트리나 폴러스 <꽃들에게 희망을>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애벌레 탑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단지 다른 애벌레들과 부딪히면서 높이 오르기 위한 경쟁을 하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튕겨져 나오는 게 아니고요.


저희 동네 인근 여고에서, 다른 학생들의 책과 노트를 몰래 갖다 버리는 일이 생겼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 학교 학생들이 책을 교실에 두지 않고 모두 책가방에 짊어지고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분실될까 봐.


정도를 벗어난 경쟁은 막아야 하지만, 그 아귀다툼 속에서도 버텨내기 위해 스스로 길을 찾는 학생들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한 경쟁의 존재를 인정하고 생존할 힘을 기르는 것이죠.


애벌레 탑에 계속 머물든, 빠져나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든,

무리에서 튕겨져 나와 홀로 추운 곳에서 메말라버리지 않도록 끝까지 살아남을 힘을 기르는 거예요.

경쟁이 싫다, 저것은 정말 아니다, 하면서

생존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수고로움을 얕잡아본 건 아니었는지 생각합니다.


애벌레 탑에서 빠져나와 나비가 되는 방법을 나 혼자 안다면서,

오만하게 굴었던 것은 아니었나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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