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SKT 사용자입니다.
유심 정보를 도난당한 2천만 명 중 한 명이고, 예약해야만 유심칩을 교체해 주겠다고 하여 말을 잘 들은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드디어 예약 순번이 되었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센터가 8시까지 업무라고 했는데, 퇴근 후 도착하니 7시 34분입니다.
투명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대기 인원이 예닐곱 분 계셨습니다.
번호표를 뽑으려고 하니 안내해 주시는 분이 안타깝고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죄송하지만, 저희 업무 마감시간이 8시여서 접수를 더 이상 받지 못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문의 사항이 더 있어서 몇 마디 더 물어보고 있으니, 점장으로 보이는 분이 얼굴에 짜증을 한가득 뿜어내며 말합니다.
"유심칩 교체하시려면 7시 30분까지 오셔야 해요.
문의하신 그 사항은 필요 서류가 있어서 다음에 오실 때 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문장으로만 써놓으면 친절 그 자체이나, 제 몸무게 2배는 되어 보이는 분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하는 말에 언짢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
유심칩 예약 안내 문자를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혼잡할 수 있으니 가능한 평일 오전에 방문하라는 언급만 있을 뿐, 마감 30분 전 방문을 피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민망함을 뒤집어쓰고 돌아 나오며, 어차피 업무는 못 보는 상황이니 마음이라도 차분하게 하기 위해 곰곰이 상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SK라는 대기업에서 국민 2천만 명에게 피해를 주었다.
2. 내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도 없다.
3. 유심칩 교체를 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예약이 필요하고, 순서를 지키는 것은 피해자들 서로를 위한 배려이다.
4. 대리점 점장님은 SK의 실책과 아무 관련 없이, 적은 보수만을 받고 거의 의무감으로 매일 격무를 견뎌낸다.
5.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8시까지 업무를 마치기 위해 7시 30분 전까지 입장해야 함은 암묵적인 룰일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업무를 연장시키는 손님에게 약간의 짜증 정도는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싶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요청했을 때, 특히 내게 꼭 필요한 상황일 때 상대방의 거절을 쿨하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지요.
'내가 왜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면 내 속만 상할 뿐이에요.
서운함과 분노를 증폭시키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다음 기회에 집중하는 게 나에게 좋습니다. 입 밖으로 험한 말을 내뱉어서 상대방은 듣지도 않을 험한 말을 내 귀에 들려줄 필요도 없고요.
모두 다 괜찮다며 부처님이 되자는 건 아니에요.
그냥 이 한 마디에 집중하면, 솟아오르려는 서운함과 분노는 금세 가라앉아요.
상대방은 얼마든지 내 요청을 거절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