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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보았으니까 아픈 사람 마음을 알지

by 위드웬디

6월 말 길을 걷다 넘어져서 발 뼈를 다쳤어요.

태어나 처음으로 목발을 짚었고, 지금까지 절뚝거리 걷고 있습니다.


목발을 짚은 시간은 단 3주 정도였으나, 무탈함과 건강함이 얼마나 감사한 건지 알기에는 충분했어요.


반깁스 부츠를 신더라도 두 발로 걸을 수 있었을 때 다시 태어난 기분 정도였으니까요.

'몸이 모두 제 기능을 다 한다는 게 이렇게나 큰 축복이었다니!'하고 충격을 받을 만큼 생각의 변화를 주었습니다.

먼저, 목발을 짚으면 아픈 다리보다 팔, 어깨, 반대쪽 무릎이 훨씬 더 아니다.

다리를 다친 정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두 다리에 나누었던 체중을 한쪽 다리가 감당해야 하고 손과 어깨에 가해지는 힘이 생각 외로 요.


정형외과 진료를 볼 때 '목발을 짚으면서 몸살이 생겨서 근육이완제가 필요해요.'하고 요청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끄덕끄덕 수긍하시더라고요.


게다가 양쪽 목발을 짚으면 손도 쓰지 못하기 때문에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컵에 물을 따라올 수가 없어요. 우산도 쓸 수 없습니다.

무심코 하는 모든 움직임에서 힘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애를 많이 써야 합니다.


양쪽 목발에서 한쪽 목발로, 한쪽 목발에서 그냥 두 발로 상태가 호전되는 시점마다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양쪽 목발을 짚은 기간에는 움직임 자체도 힘들었지만, 그러한 저를 보는 시선 또한 힘들었어요.


염려해 주시고, 도움을 주시려는 따뜻한 마음도 많이 받았습니다만, 부담스러워한다는 느낌도 분명 있었습니다.

특히 버스를 타거나 계단을 오르면, 안쓰러워 하기보다는 '왜 나와서 옆사람 불편하게 해?'라는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거나 외면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그제야 버스나 지하철에서 장애를 가진 분들을 많이 보지 못했음을 떠올렸습니다.

이용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흐름을 멈추게 한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게 더욱 힘들지 않았을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서민'이라고 자주 표현하지만, 사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버거운 사람들도 있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우울이 깊어졌을 때 산책을 하며 마음 치유를 많이 했습니다.

반대로 발을 다쳐 산책과 달리기를 하지 못하니, 마음이 가라앉음을 어쩌지 못합니다.


집 안에서 스트레칭도 하고, 앉아서 복싱 섀도윙도 하곤 했지만 1시간씩 산책하며 얻는 상쾌함을 얻기는 어렵지요.


이제 반깁스 부츠도 떼는 연습을 하라는 의사 선생님 지시가 있어서, 하루 오천 걸음 정도씩은 걸으려고 합니다.

양쪽 목발을 짚을 때, 하루 걸음 수가 2~300보 정도였으니, 이만하면 큰 발전입니다.


전혀 아픈 곳이 없을 때보다 아직 아픔이 남아있는 지금, 건강함과 무탈함에 훨씬 더 감사하게 됩니다.

아픈 게 조금씩 좋아지는 걸 보며 '나아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아파보았기 때문에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며,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서사가 생겨서 감사합니다.


백영옥 작가님의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중의 구절을 크게 실감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희망이란 말은 희망 속에 있지 않다는 걸.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걸.
그 꽃에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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