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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웬디 Sep 18. 2024

만약에 그랬다면

단 몇 번의 계약으로 지난 10년 동안 일군 재산을 모두 날리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투자에 실패한 사람들이 하는 후회는 대부분 

'그때 그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훨씬 편안하게 살고 있을 텐데', 

또는 '그 투자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후에 더 나은 투자를 했다면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아서 지금은 훨씬 편안할 텐데' 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욕심과 후회에 찌들어서 살 때에는 

거의 하루 종일 아무 의미 없는 '~껄'에 속상해하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드는 생각은,


그때 그렇게 모두 다 잃었기 때문에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운 좋게도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졸업한 후

열정 가득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다가 결혼하고,

좋은 것을 많이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 보니


나는 왜 그들만큼 되지 못하고, 가지지 못했을까 굉장히 많이 아팠다.

특히 내가 충분히 가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처지로 인해 많은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검은 세력을 키웠다.


사실 그동안 운이 좋았던 것뿐인데.


드라마 <도깨비>의 은탁이처럼, 태어나기도 어려운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다행으로 겨우 살아온 건데.

(나는 역아로 태어난 미숙아였다. 응급 제왕절개가 거의 불가능했던 당시, 자연 분만으로 살아서 나온 게 기적이었다고 한다)   



잃은 게 돈이어서 다행이다.
덕분에 가족의 사랑을 지킬 수 있었고,
겸손과 감사를 새로 얻었다."



'만약에 반포 집을 팔지 않았다면 지금 진짜 강남 사모님이 되었을 텐데'는

'그때 강남으로 이사 가라는 철학관 아저씨 덕분에 감사하게도 아이들을 편안하게 키울 수 있었다.'


'만약에 매수 결정 전에 철학관에 가지 않았다면 더 좋은 집을 살 수 있었을 텐데'는

'그렇게 시어머니와 남편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지금 가정의 틀이나마 유지하며 살지.'


'만약에 지식산업센터와 지방 오피스텔 매수 계약을 하지 않았다면 그 많은 돈을 잃지 않았을 텐데.'는

'삶의 진짜 고난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나와 내 사람을 믿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데에서 온다는 걸 지금이라도 알고 사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가장 큰 갈등의 이유가 되었던 '만약에 그때 대치동에 집을 샀다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는

'그랬다면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부만 강요하는, 오만 덩어리 괴물이 되었겠지. 삶을 이렇게 반짝이게 하는 글쓰기도 몰랐을 거고.'가 되었다.


만약에 내 잘못으로 가족 모두가 힘든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든지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이토록 근사한 내 사람들의 면모를 못 보았을 것이다.


부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어깨 펴고 한껏 웃을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이토록 감사한 삶을 만끽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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