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나무 창틀에서 나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린다구요!"
몇 달 전 층간 소음이 심하다면서 우리 동 전체를 뒤흔든 아랫집 엄마가 우리 집을 보더니 말했다.
집에 아무도 없는 평일 낮시간에 층간 소음이 있다고 관리사무소에서 연락이 와서, 도둑이 들었나 하고 기겁을 했었다.
알고 보니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학원 가기 전 잠깐 있었던 한두 시간 동안 발소리가 신경 쓰였다고 한다.
퇴근 후 저녁 시간이 되자 아랫집 엄마가 관리소장님과 함께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집 안을 쓱 둘러보더니 매끄러운 하얀 섀시가 아닌 처음 아파트가 지어졌을 때의 나무 창틀임을 발견했나 보다.
그때까지 몰랐다. 나무 창틀을 여닫을 때의 드르륵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었다.
깨끗하게 페인트칠되어 있고, 빨래를 널고 걷을 때 말고는 여닫을 일이 없어서 별 신경 쓰지 않았었다.
아랫집 엄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 집이 아니어서 섀시 교체를 하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창문 섀시 말고는 주방, 욕실, 배관 등 생활에 꼭 필요한 부분은 깨끗하게 수리가 되어 있는 집이었기에 세입자의 서러움을 크게 느끼지 않았었다.
그러나 천장에 확성기를 달아놓은 것처럼 청각이 예민한 아랫집 사람들을 두었다는 속상함보다,
드르륵드르륵 소리가 나지 않게 창문을 여닫을 때마다 조심조심해야 한다는 서러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우리 이촌동 집은 베란다 확장하고 하얀 섀시로 다 교체해서 거실에 앉으면 한강이 다 보이는데.'
라고 순간 생각했다가 오히려 더 침울해졌다.
사주에 따른다면서 시댁과 그렇게 갈등을 겪으며 겨우겨우 마련한 소중한 내 집을,
지식산업센터와 지방 오피스텔에 투자한다고 전세금과 대출금을 빼면 남는 게 없도록 만든 사람이 나였다.
내가 모두 자처한 것이었다.
벌려놓은 일을 수습할 시간에, 자책하느라고 손해를 더 크게 만들면서 2년을 보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쓸모가 있음을 알려주려는 듯,
오래 아팠던 덕에 열등감, 죄책감, 후회, 삶을 버리려는 충동 등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할 만큼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이 또한 내가 만든 바닥이구나, 하며 나무 창틀을 여닫으면서도
'이만큼이나마 여기서 살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는 게 어디인가.' 하고 감사하게 된다.
가난을 실감하게 하는 나무 창틀에서
감사함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