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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웬디 Oct 30. 2024

여섯 번째 삶 - 일자 도라이바로 심장 찌르기

一자 드라이버를 어릴 땐 '일자 도라이바'라고 불렀습니다.

Screwdriver라고 발음을 굴리는 것보다 '도라이바'라고 하는 편이 공구의 거친 느낌을 더욱 잘 표현하고, 친근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영화 <귀공자>에서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왔지만,

기억에 또렷이 남는 것은 주인공 선호 배우님이 자신을 배반한 사람을 일자 도라이바로 심장을 찔러 살해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심장'이 가지는 의미 때문이었나 봅니다.


마음. 사랑. 설렘. 생명...


날카로운 칼에 찔려 단번에 숨이 끊어지는 게 아니라

둔한 일자 도라이바로 파내어지듯이 해서 극심한 고통을 충분히 느끼라는,

그만큼 배신자에 대한 분노가 컸음을 표현한 것이었구나 합니다.



사랑하는 엄마아빠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는데

오히려 못나게 포기나 하고,


공황장애와 시험 실패에서 도망치듯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살림도 못하고, 시어머니 기세에 눌려서는 못나게 뒤에서 울분이나 터뜨리고,


그릇에 맞지 않는 욕심을 부리다 사기를 당하는 줄도 모르고 평생 애써 모은 재산 다 잃고,

뭘 잘했다고 술 퍼마시면서 가족들 마음 아프게 하고.


그냥 과감하게 끝내는 것도 하지 못해서 일자 도라이바로 심장을 찔러대기만 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려고 어설픈 시도를 할 때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장 아파했습니다.


분노를 표시하고, "당신들 때문이야!"라고 소리를 질러봤자, 그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욕을 먹는 사람들이 더 오래 산다'는 말처럼 빙글빙글 웃으며 잘 살아가더라고요.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바위에 비린내 나는 흔적이라도 남지 않을까 했지만,

소독약으로 씻어버리고 계란 껍데기마저 무자비하게 밟아버리는 게 세상이었습니다.




마음이 여리고 아픈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무자비한 세상이 할퀴어 상처를 입어도 '내가 약해서 당한 거야'라면서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오히려 일자 도라이바로 상처를 후벼 파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안락한 삶을 살다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쯧쯧, 어쩌다 저렇게 되었대?" 하는 삶을 살아가니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내가 내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으면, 그러면 됩니다.

내가 나를 해치지만 않으면,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아물어집니다.


내 상처를 아물게 하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나에게 분명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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