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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위드웬디
Oct 27. 2024
다섯 번째 삶 - 나 진짜 망한 거야?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사람 취급을 받으며,
'나도 이렇게 쓸모 있는 사람이다!'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
남들 부인들은 집 사고팔아서 돈
도
잘
벌던데"라는
남편의 혼잣말이
귀에
콕
박혀 머리에서 떠나지 않기도 했고요.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듯이 운 좋게 첫 집을 사고 판 후,
시어머님의 말씀
을
따르느라고 강북으로 이사하면서
부동산 공부를 하기 시작했
습
니다.
입지, 공급 물량, 재건축 재개발, 분양권 등 모든 게 처음이었고 신기해서
책에 나온 내용과 부동산 강의 내용을 스펀지처럼 흡수했어요.
그저 '우리 동네가 좋아진대'라는 소문 하나에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줄 알았던 사람이,
경제 책을 줄을 치며 읽기 시작했고
단지별 매매가를 대강이나마 외우기 시작했어요.
내가 사고 싶은 집, 내가 살 수 있었던 집, 친구가 샀다는 집들은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기억에 또렷이 남더라고요.
제가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며 남편에게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기도 하고,
부동산 중개소에도 다니
며 동향을 전하니
조금씩 '괜찮은 사람'으로 인식을 해주더라고요.
뿌듯했어요.
나도 자랑스러운 아내가 될 수 있겠구나.
일하러 나가지 않아도 아이들 학원 편하게 보낼 수 있겠구나.
2019년 즈음은 서울 아파트 가격이 살짝 주춤했으나 아직 상승 여력이 남아 있는 때였어요.
강의 들은 바에 따르면,
집
을 많이 사놓을수록 좋은 시기였고요.
나름 공부를 했다면서 아파트 두어 채를 사고팔고, 오피스텔도 사서 임대를 주고, 경매로 작은 아파트 낙찰도 받아서 팔았습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보다 큰돈을 벌어보았어요.
결혼 예물로 해주었던 것보다 10배 비싼 시계도 사 주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투자해 나가면,
아이들 학비 걱정도 안 해도 될 거고, 노후 걱정도 안 해도 될 거고, 어쩌면 두 아이 결혼할 때 집도 한 채씩 사줄 수 있겠구나.
상상만 했던 일들이 이루어질 것 같았어요.
2021년부터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정책으로 인해 아파트를 사고팔아 수익을 내기가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주택 투자의 대안으로, '
기업으로부터 월세를 안정적으로 받으면서 시세 차익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투자처'라는 지식산업센터 투자를 소개받았어요.
매매가의 90 퍼센트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어서, 아파트보다 더 비싼 물건을 더 적은 투자금으로 살 수 있었어요.
'조물주보다 높은 건물주'가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매수를 시작했습니다.
몇 번의 매매 거래로 배짱이 생겨 9억짜리 물건을 8억 대출을 받아 사는 것도 서슴지 않았어요.
이미 욕심이 지성을 가린 상태였습니다.
'나도 능력 있는 마누라야.'
'얘들아, 엄마가 좋은 학원 편하게 보내주고, 나중에 너희 크면 집도 사 줄게.'
'우리 가족 건물 사면 뭐라고 이름 지을까?'
달걀 몇 개 가지고선, 양계장을 넘어 커다란 농장을 꿈꾸었어요.
2022년 금리가 상승을 시작하고 매매 거래가 주춤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애써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굴었고요. 살인적인 금리는 금방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나친 금리 상승이라면서 1년을 버티지 못할 거라는 전문가 예측이 무색하게, 2년이 넘도록 높은 금리는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금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고, 몇 억씩 손해 보는 가격으로 내놓아도 거래 자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아파트 값은 오르락내리락, 오히려 집값 상승이 염려된다면서 금리가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매달 월세를 넘어서는 대출 이자를 내는 것도 점점 힘겨워졌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남편의 날 선 모습이었어요.
잘하고 있다고 믿었던 마누라 때문에, 본격적인 사업도 아닌 몇 건의 투자로 그간 쌓아 올린 재산을 모두 잃는 처지에 놓인 남편을 보는 것은 공포에 가까운 일이었어요.
원래도 잘하지 못했는데, 밥을 차리며 점점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고 손을 떨고 있으니 더욱 화가 났었나 봅니다.
"잘못은 네가 다 해놓고, 왜 사람을 나쁜 놈으로 만들어!"
그러게요.
다 내가 잘못해 놓고, 뭘 잘했다고.
이미 불면증도 심해져 있었고, 매일 술에 의지해서 판단력을 잃은 지 오래였던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고 믿었습니다.
리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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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투자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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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삶을 사는 고양이의 비법
06
네 번째 삶 - 밥 먹을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07
아들과 손주에게 귀한 장어를 제대로 먹여야 한다
08
다섯 번째 삶 - 나 진짜 망한 거야?
09
여섯 번째 삶 - 일자 도라이바로 심장 찌르기
10
일곱 번째 삶 - 어떻게든 받쳐주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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