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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웬디 Dec 01. 2024

난 당신이 우리 엄마처럼 해 주면 좋겠어

시어머님은 시아버님께 참 지극정성이십니다.

생활력도 강하시고, 자녀 교육도 훌륭하게 해내셨습니다.


아이를 모두 대학 졸업을 시킨 후, 어머님은 못다 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 대학에 입학하셨습니다.

도자기 공예를 전공하실 정도로 미술적 감각도 뛰어나십니다. 집도 아름답고 아늑하게 잘 꾸미셨습니다.


음식도 빠르고 먹음직스럽게 잘하십니다.

시판 양념을 쓰지 않으시면서도, '엄마 스피드'로 뚝딱뚝딱 요리를 만들어내십니다.


그리고, 며느리는 이 모든 게 버겁기만 했습니다.

결혼 직후에는 서툴러서 못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결혼 후 10년이 넘도록 잘 해내지 못했습니다.




저희 신랑이 어릴 때에는 단독주택에 살았대요.

아버님께서 학교 선생님으로 외벌이를 하셨고, 어머님께서는 시조부모님을 모시고 사셨고요.


살림을 감당하기 위해서 어머님과 아버님께서 직접 마당에 집을 지으셨대요. 방 너덧개를 만들어서 하숙방으로 세를 주셨대요.


그렇게 알뜰살뜰 돈을 모아 작은 상가도 마련하셨대요.

형님(신랑 누님)이 예체능을 하고 싶어 하셔서, 상가에서 월세를 받아서 공부를 시키셨대요.

아마 시아버님 홀로 공무원 월급만 받으셨다면 형님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셨을 거예요.



아버님께서 젊으셨을 때에는 어머님께서 반찬을 매 끼니마다 새로 하셨대요.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은 별로 맛이 없다는 이유로요.


아버님께 로열젤리를 드리기 위해서, 집의 옥상에서 직접 양봉을 하셨대요. 규모가 작긴 했지만, 꿀이 남는 날에는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셨고요.


어머님은 지금도 상을 차리실 때, 고기반찬을 하더라도 어른들과 아이들이 각자 입맛에 맞게 먹을 수 있도록

매콤한 볶음 요리와 짭조름한 불고기를 한꺼번에 모두 해내십니다.


출처: K-turtle Restaurant


어머님은 하겠다고 생각하신 일은 꼭 해내십니다. 그냥 완료만 하는 게 아니라, 아주 훌륭하게 이루어내십니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대학교 전형을 스스로 알아보시고 입학하셨어요. 


자식보다도 더 어린 동기들과 함께 공부하면서도 학생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교수님들과 소통도 주도적으로 이끄셨대요.


대학교를 다니시던 중간에 아버님께서 암을 진단받으셔서 마지막 1학기 동안은 출석을 제대로 하지 못하셨지만요.

아버님이 암진단을 받기 전처럼 공부하셨다면, 어머님께서 졸업하시면서 우수상을 받으셨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시댁에 가면 어머님이 도자 공예 작품들로 집을 아름답게 꾸며 놓으셨어요. 때때로 자리를 바꾸고, 꽃으로 장식을 해서 분위기를 바꾸시기도 하고요.




아마 저희 남편은 세상의 모든 엄마가 시어머님처럼 뛰어날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남편 내조도 잘하지 못하고,

전문직이라고는 하는데 벌이는 영 시원찮고,

요리를 포함하여 모든 집안일에 느리고,

아이들 교육도 똑 부러지게 시키는 것 같지 않고,  

인테리어는커녕 '집의 구성 요소는 각 기능을 충실히 하면 되는 거지.'라면서 흰색과 회색만 좋아하는 마누라가

얼마나 답답하고 모자라 보였을까요?


처음에는 '차츰 나아지겠지' 했을 거예요. 그러다 아기가 태어나고 할 일이 많아짐에 따라, 오히려 더 집안이 엉망이 되는 모습에 화도 났을 거예요.


주말마다 시댁에 가서 밑반찬을 얻어다 먹으면서, 주된 요리 하나만 해서 착착 차리기만 하면 되는데

밥 하나 차리는 걸 그렇게 힘들어하는 마누라가 답답했을 거예요.


아버님께서 어머님께 늘 대접을 받고 사셨기 때문에 자신도 그렇게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악의 없이 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말처럼요.


난 당신이 우리 엄마처럼 해 주면 좋겠어.



그래도 아내 입장에서 생각했다면 어땠을.


10년이 넘게 주말마다 시댁에 가면서, 시어머님의 속도와 솜씨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마누라의 마음이 어땠는지,


'내 친구 부인들은 이렇다더라'라는 말을 들으면서 주눅 들고, 생활비가 부족해도 입도 뻥긋 못하는 마누라의 심정이 어땠을지,

  

똑같이 학원을 보냈는데도 어떤 친구는 경시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내 들은 평균보다도 낮은 성적일 때,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착잡했을지,


'네가 나한테 해준 게 뭐야?'라는 말을 듣는 아내의 마음이 어땠을지.



 

결혼을 하면, 부모님과 함께 살던 어릴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단지 '30년 가까이 다르게 산 두 사람이 삶을 같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추상적인 다름의 개념이 아니에요.

완전히, 아주 작은 것부터, 생각의 조각 하나하나 모두 다름을 받아들여야 해요.


당연한  없어요. 내가 누리던 혜택은 부모님의 사랑과 배려 덕분이었습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배려는, 배우자에게는 고통의 연속일 수도 있어요.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임을 잊지 말아요.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삶이 아닌, '우리가 함께'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결혼임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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