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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웬디 Dec 08. 2024

삶에서 넘어져보니 좋은 것

삶에서 넘어져보니 좋은 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정말 근사하고 나보다 훌륭한 점이 많다는 걸 실감하는 거예요.

만일 제가 승승장구하고 엄청 빛나는 성공을 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에요.


모든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강점에 경탄할 수 있는 마음.

내가 못났다고 주눅 드는 열등감과는 엄연히 달라요. 질투와도 달라요. 그저 저 사람은 저런 근사한 면이 있구나 하고 감탄하는 거예요.


삶이라는 레이스에서 넘어진 후 혼자 굴러 떨어져 나와서일까요?

누구에게나 어려운 레이스인데도 각자의 레인을 지키며 달리는 모습을, 경쟁심 없이 맑은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패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무리 실패가 성공의 씨앗이라고 해도 말의 느낌이 좋지 않아요. 사람을 눌러서 찌그러뜨리는 것 같아요.


대신 '넘어졌다'는 표현을 쓰려고 해요. 넘어진 사람은 당연히 일어나니까요. 무릎이 까지고 걷기 힘들고 넘어졌던 모양새가 부끄럽긴 해도, 다시 일어나서 가던 길 가니까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다리 아프다고 소리치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넘어지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니까요.


지금 제 삶의 가장 가난한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남편과 둘이 벌어도 생존에 필요한 고정비와 대출이자도 감당하기 어려워 매달 대출이 조금씩 더 늘어나는 상황이거든요.


흔히들 '실패한 삶'이라고 말하는 딱 그 모양새이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워진 면이 좋아요.

잘살아야 한다, 아이들을 명문대에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아요. 내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멋지고요.


바닥으로 가라앉는 동안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어디까지 내려갈지 알 수 없는 게 공포스러웠고요.  꼴이 되려고 그 힘든 걸 견디며 살았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멍충이로 볼까 하는 생각도 고통스러웠고요.

단 몇 번의 오판과 계약으로 내 삶이 이렇게 곤두박질친다는 게 억울하기도 했어요.


막상 바닥의 바닥으로 내려오 이런 삶이 그렇게까지 절망으로 가득 찬 지옥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이 나이에는 이 정도 살아야 한다'를 이루어내지 못해도 괜찮다는 걸 알았어요. 또래 아는 사람들 중에 내가 가장 가난해도, 그게 죽을 만큼 힘든 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보다 훨씬 힘든 건 자책감이었거든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해서 나에게 칼을 겨누는 마음이요.


김종원 작가님의 <나의 현재만이 나의 유일한 진실이다>를 필사하면서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못난 과거도, 보이지 않는 미래도 아닌 지금이 나의 진실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내가 몇 등인지 겨룰 필요 없다. 내 세계를 살아가면 된다. 살아갈 수 있으면 된다.'


삶에서 넘어져 바닥의 바닥으로 내려와 세상을 보니 참 좋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위로 향하는 게 좋습니다. 위로 향한 시선의 배경이 하늘이라는 게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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